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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네디 Aug 07. 2023

인사는 중요하다

맥도널드 가는 길, 그 녀석

내가 사는 Somewhere on Bocobo street Malate Manila Philippines에서 가장 가까운 맥도널드 매장은 콘도에서 나와 우측으로 63m 걷고 좌회전해서 67m,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직선거리를 따지면 92m 밖에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주로 이용하는 시간은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 사이, 근래 내 정신적 생산 활동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시간대다.



대형 쇼핑몰 정면이긴 하나 사실 이 길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결하다.

나같이 필리핀 왕 바퀴벌레에 기겁하는, 여고생처럼 연약하고 순수한 마흔 후반의 남자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술 취해서 시비 거는 필리핀 양아치들, 보도 위에서 노숙하는 가족, 구걸하는 사지멀쩡 거지들.

하필이면 24시간 편의점에 24시간 맥도널드가 인접한 길이라 늦은 밤에도 환한 것이, 그들 때문에 눈살 찌푸려지고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긴 고심 끝에 설치한 맥도널드 앱의 다양한 할인 메뉴로 새벽 허기를 달랠 수 있고, 원두커피도 마실 수 있기에 불안을 감수하고 용기 내어 매일 들른다.


그 녀석은 지난주에 처음 만났다.

외국인만 보면 달려들어 돈 달라고 손 내미는 다른 꼬꼬마들과 달리 녀석은 날 보고 그저 빙그레 웃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난 절대 구걸하는 자에게 십 전 한 푼 주지 않는다. 10년 이상 필리핀에서 살아오며 굳힌 소신이자 다짐으로, 외국 관광객이 지날 때마다 이제 막 3, 4살 된 자식들을 떠밀어 구걸하게 하는 일부 못된 필리핀 홈리스 부모들 꼴이 못마땅해 나 혼자라도 그들을 계몽시켜 자력갱생을 이끌려는 취지였다.  

그래서 그 녀석이 싫지 않았다.

유난히 말라 보이길래 없는 살림에 맥머핀 하나와 선데 뭐시기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주고 배꼽 인사를 가르쳤다.

이 나라 물가로 만원이 넘는 금액이요 요행으로 여겨질 고품격 새벽 간식을 들고 잽싸게 앉을자리를 찾아 떠날 만도 하건만, 녀석은 내 교양수업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떠나는 나를 향해 봉지를 든 손마저 배꼽에 올리고 정중히 인사하는 녀석.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녀석과 일용할 양식을 나누고 인사받았다.


2023년 8월 3일 새벽......


비 맞고 걷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도 우산이 필요하겠다 싶을 정도의 젓가락 비가 내리던 새벽에 또다시 출동했다.

콘도에서 나와 우측으로 63m 걷고, 좌회전하자마자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녀석.

녀석은 우산이 필요하겠다 싶을 정도의 젓가락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늘도 구슬피 울고, 그 녀석도 애처로이 울고 있었다.

다만 하늘도 소리 내지 않았고, 그 녀석도 소리 내지 않았다.

단지 눈물을 마구 쏟아낼 뿐이었다.

오늘은 조금 싼 걸 먹더라도 그 녀석에게 스페셜 메뉴를 안기고, 눈높이에 맞는 짧은 위로라도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높이는 순간, 눈물을 훔친 오른손을 내리며 그 방향으로 몸을 틀어 날 확인하는 녀석.


그리고 그 녀석의 배꼽 인사.


인사는 중요하다.

인사는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의 인사는 시늉이자 형식에 그치는 껍데기지만

누군가의 인사는 성의며 진심이다.


다시 흐르는 눈물을 재차 훔치며 어떻게든 맑은 시야로 날 또렷이 보려는 녀석.

눈물 흘리게 한 일을 잠시 망각하고, 비워진 그만큼을 성의와 진심으로 채워 건낸 녀석의 배꼽 인사.


누군가의 인사는 시늉이자 형식에 그치는 껍데기지만 외로운 사람은 그 조차 따뜻하게 느끼니

인생 가장 추운 계절을 외로이 겪고 있는 오늘의 나에게 그 녀석의 성의, 진심 충만한 인사는 내 가슴 오래 머무를 훈풍을 일으켰다.


인사는 중요하다.

인사는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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