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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내외(內外)

by Sir Lem

타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급기야 인적조차 불안했다.

육성이 흘러나오는 전화 통화마저 피했다.

과거의 나를 불러내 그와 대화하기에 바쁜 까닭이었다.

살며 저지른 모든 종류의 실수와 불찰이 집약된 어느 한 시절을 타이르고 성찰하려면 그래야 했다.

고통과 상처를 원만히 치유할 목적으로라도 철저히 그래야 했다.


낯선 땅에 머물길 바랐고 그래서 연고 없는 익산의 한 모텔을 골랐다.

한 때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인파로 넘쳤던 유흥가라 했지만, 어느덧 기가 쇄하고 메마른 분위기에 코로나 초기의 서리까지 내려앉아, 세속을 피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해우소로 바람직한 공간이었다.


계절도 내 마음의 한기(寒氣)와 조화로운 초겨울.

도착한 순간 이미 영혼과 육체의 안락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명당.


내선으로 전화해 '청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음료수 필요하지 않냐'는 주인 내외의 물음에 곧 연락드리겠다 하고 핸드폰으로 거절 문자를 남기는 식으로 서신으로 대화하고픈 심정을 은연히 밝히니, 눈썰미 있던 내외는 고분고분 헤아려주었다.

제일 꼭대기층에 지내며 고요히 혼자이고 싶었던 나를 배려했음이 분명한 것이, 그 세월 내내 같은 층에서 인기척 느끼지 못했고, 나로 인한 소리 외에는 멀리 새울음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게 뭔가를 전해주려 할 때에도, 그저 문손잡이에 걸어 작은 노크 한 번 없이 문자로 알렸다.

동지에 팥죽도 그렇게 맛볼 수 있었다.

내 언젠간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할 내외는 당시 내 삶을 그대로 읽고, 그렇게 살게 해 주었다.


편의점 내외도 내 좋은 기억 안에 살고 있다.

봉투 필요하냐고 묻길래 고개 끄덕였고, 며칠 되풀이 하니 그새 눈치챈 듯 이래로 내 고요 속 안정에 호응해 주었다.

처음엔 내 침묵에 맞대응으로 으레 그런 줄 알았건만,

정신 팔릴 데 없이 단조롭게 사는 자(者)가 방에 마스크를 두고 편의점 앞까지 갔다가 문 앞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되돌아 가는데, 급히 뛰어나와 우악스럽게 비닐 포장을 찢고, 새 마스크를 꺼내 씌워주며 '추워 빨리 들어와'라고 말하는 60대 여인의 부산함은 선의였을 테고, 비빔밥이 싸고 맛있길래 며칠 연이어 사 먹으니, 하나 남은 걸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도시락 집으려는 내게 건네주는 70세 노인의 융통성은 배려였음이 참이리라.


상서로운 기운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와닿지 않았던 착란의 인생 조각.

번뇌는 어제까지로 갈무리하라며 오늘 새로운 시작을 나긋이 응원하던 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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