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네디 Aug 18. 2023

두 내외(內外)

타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급기야 인적조차 불안했다.

전기적 신호로 변환돼 흐른다 할지라도 또렷이 들리는 소리는 필시 음성이나 진배없기에 전화통화 마저 꺼렸다.

과거의 나를 불러내 그와 대화하기에 바쁜 까닭이었다.

살며 저지른 모든 종류의 실수와 불찰이 집약된 어느 한 시절을 타이르고 성찰하려면 그래야 했다.

고통과 상처를 원만히 치유할 목적으로라도 철저히 그래야 했다.


낯선 땅에 머물길 바랐고 그래서 연고 없는 익산의 한 모텔을 골랐다.

한 때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인파로 넘쳤던 유흥가라 했지만, 어느덧 기가 쇄하고 메마른 분위기에 코로나 초기의 서리까지 내려앉아, 세속을 피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해우소로 바람직한 공간이었다.


계절도 내 마음의 한기(寒氣)와 조화로운 초겨울.

도착한 순간 이미 영혼과 육체의 안락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명당.


내선으로 전화해 '청소해야 는 거 아니냐', '음료수 필요하지 않냐'는 주인 내외의 물음에 곧 연락드리겠다 하고 핸드폰으로 거절 문자를 남기는 식으로 서신으로 대화하고픈 심정을 은연히 밝히니 눈썰미 있던 내외는 고분고분 헤아려주었다. 제일 꼭대기층에 지내며 고요히 혼자이고 싶었던 나를 배려했음이 분명한 것이, 그 세월 내내 같은 층에서 인기척 느끼지 못했고, 나로 인한 소리 외에는 멀리 새울음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게 뭔가를 전해주고 싶을 때에도 그저 문손잡이에 걸어 작은 노크 한 번 없이 문자로 알렸다. 동지에 팥죽도 그렇게 맛볼 수 있었다.

내 언젠간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할 내외는 당시 내 삶을 그대로 읽고, 그렇게 살게 해 주었다.


편의점 내외도 내 좋은 기억 안에 살고 있다.

봉투 필요하냐고 묻길래 고개 끄덕였고, 며칠 되풀이 하니 그새 눈치챈 듯 이래로 내 고요 속 안정에 호응해 주었다.

처음엔 내 침묵에 맞대응으로 으레 그런 줄 알았건만,   

정신 팔릴 데 없이 단조롭게 사는 자(者)가 방에 마스크를 두고 편의점 앞까지 갔다가 문 앞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되돌아 가는데, 급히 뛰어나와 우악스럽게 비닐 포장을 찢고 새 마스크를 꺼내 씌워주며 '추워 빨리 들어와'라고 말하는 60대 여인의 부산함은 선의였을 테고, 비빔밥이 싸고 맛있길래 며칠 연이어 사 먹으니, 하나 남은 걸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도시락 집으려는 내게 건네주는 70세 노인의 융통성은 배려였음이 참이리라.


상서로운 기운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와닿지 않았던 착란의 인생 조각.

번뇌는 어제까지로 갈무리하라며 오늘 새로운 시작을 나긋이 응원하던 두 내외.

이전 04화 똥과 된장, 복수와 축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