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지 Sep 19. 2022

나만의 장소

아들의 자전거 - 변화 01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만의 장소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30km를 달려야 도착하는 심복사라는 절에 있다. 몇 년째 나를 다독이는 장소로 삼고 있는 곳이다. 평택호 자전거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인데 평일에 방문하면 거의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한적한 곳이다. 스님들이 정성으로 연못과 숲을 가꾸어 놓았는데 가만히 머물다 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장소로 삼기에는 다소 멀기도 하고 편한 의자나 자판기 하나 없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면서 비밀스럽게 그곳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들은 시큰둥. 그런 공간의 소중함을 공감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는 나이인 듯했다. 한 시간 넘게 자전거를 달려온 아들은 시원한 음료나 간식을 파는 에어컨 있는 카페로 어서 이동하자 했다.

혼자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사람들은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선뜻 어떤 곳을 특정하기는 어려워한다. 아들이 그런 장소를 정성스럽게 찾으면 좋겠다. 그런 장소에 시간이 반복되어 쌓이면 그곳을 찾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그곳을 다시 찾을 미래의 나를 만나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런 소중한 만남이 흔한 카페나 가까운 공원에서도 쉽게 이뤄진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런 가치 있는 만남을 아무런 노력 없이 얻는 것도 뭔가 정당하지 못한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처럼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자연 속에서 조용히 기다려야지 그런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아들과 집 근처로 라이딩을 갔다가 은행나무 고목 아래에서 쉰 적이 있다. 잊은 줄 알았던 아빠의 심복사 연못 얘기를 갑자기 꺼내서 무척 놀랐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자기만의 특별한 장소로 삼기에 이곳이 어떻냐고 묻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