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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Sep 23. 2022

모든 힘을 쏟아 버리고 나면 드러나는 마음

아들의 자전거 - 변화 05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기를 즐긴다. 다리는 바쁘게 움직이지만 생각들이 풍경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좋다. 그러다가 머물러 맴도는 생각이 생긴다. 고개를 돌려도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대체로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해결책을 못 찾던 고민들이다. 잘 떨쳐지지 않으면 최고 속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리다 보면 떨쳐진다. 혹시라도 떨쳐지지 않고 고민이 계속된다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자전거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저 속도가 있기에  오르막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나아가다 보면 어떤 운동보다 빨리 숨이 턱까지 찬다. 쉬면서 오르는 게 안된다. 오르막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다 보면 금세 솔직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맴돌던 생각이 솔직한 말로 툭 뱉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화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정도는 드러난다. 그래서 답답한  괜히 오르막을 오른다.   

말과 다른 눈빛, 말과 다른 손길이 있다. 대체로 몸의 말은 입의 말보다 더 솔직하다. 그런데 몸에 힘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몸의 말이 입으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예의를 차리기보단 솔직한 말이 툭 뱉어진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사람의 판단이 조금은 수월하다. 몸이 힘든 순간이 많다 보니 본심이 쉽게 드러나는 것 같다.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주변 사람이 추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나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휩싸이면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기를 권한다. 오르막에서 떠오르는 생각, 뱉어지는 말을 확인해 보면 좋겠다. 욕같이 정제되지 못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말이라도 괜찮다. 나의 솔직한 마음부터 알아야 답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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