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자전거 - 변화 04
할머니 제사에 듣는 자전거 이야기
제사라는 행위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년에는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어머니 제사를 계속 준비하게 된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여러 과정의 시간을 통해 어머니를 생각하고 제사를 올리며 가족들과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너무 빨리 잊히는 게 무서워 제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데 기억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든다. 하물며 아들인 나도 이렇게 빨리 잊어가는데 가족들은 당연하다.
제사가 끝나고 제기들을 넣으며 어머니의 일기장을 꺼내 본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한주가 멀다 하고 읽고 또 읽던 그 일기를 이제는 제삿날에나 한 번씩 읽게 되었다. 어머니는 마흔이 넘어 책에 빠지시더니 엄청난 독서를 하셨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행여 일기장을 못 가지고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메모지에 짧은 일상을 적어 와 일기장에 다시 옮기셨다. 감정을 절제하고 일상만 짧게 기록한 글이지만 가족만이 알 수 있을 감정이 숨어 있다. 아마도 나중에 그 일기를 읽을 가족들의 마음이 행여 다칠까 조심조심 추려 쓰신 것 같다. 그 일기에서 잊고 있던 자전거에 관한 기억을 찾은 적이 있다. '아들과 한강에서 2인용 자전거를 탔다'는... 일기는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게 맞다.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께 자전거를 가르쳐 드리지 못했다. 딱 한번 한강에서 어머니와 2인용 자전거를 빌려 탔었다. 일기를 읽고 나서는 2인용 자전거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는 2인용 자전거를 딱 한 번밖에 못 탄 것이 마음 아픈데 생전에 어머니는 자전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와 2인용 자전거를 탔다고 말했던 것 같다.
잊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물건을 떠올리다가 나중에는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제사도 그렇지 않을까? 자전거는 큰 덩치 탓인지 쉽게 그리 되는 물건 같다. 추억이 많이 담기는 물건. 이번 제사에도 아들의 첫 자전거를 밀어주던 할머니를 이야기했다. 아들이 할머니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전거로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