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쓴다.
결국 다시 병가를 냈다. 더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진 어느 날 결정을 했고 다음날 교감선생님에게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알렸다.
휴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남은 병가와 연가를 모두 끌어쓰고도 날짜가 모자라서 내년 연가까지 당겨썼다. 공무상 병가를 신청해놓았지만 언제 승인이 날지 알 수 없어서 일단은 마지막 하루까지 탈탈 털어서 날짜를 계산했다.
공무상 병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야 할 서류가 많았다. 나의 경우는 발병의 원인이 되는 직접적인 하나의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병을 얻게 되었는지 소명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내야 했다.
지난 시간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교무수첩을 복사하고 학부모와의 통화내역을 캡처하고 학부모들이 찾아왔을 때를 목격한 주변 선생님들의 목격자 진술서를 받아서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의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을 제출했는데 내가 병을 얻은 것이 업무 때문이 아니고 나의 개인적인 병력 때문이 아닌지 증명하라는 것 같았다. 화가 났다. 내가 이전에 병이 있었다면 지금의 병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것인가?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산재를 입은 노동자이지만 나는 그나마 공무원이어서 훨씬 간편한 과정으로 병가를 신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을 하다가 병을 얻었는데 병을 얻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뛰어다녀야 하는 것도 아픈 나라니. 일을 하다가 죽게 되는 경우에도 유가족들이 뛰어다니지 않으면 누가 나서서 당사자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
나의 고통이 평균적인 산재에 비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나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나는 운이 좋아서 동료들의 격려와 응원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만약 동료와 회사가 나를 외면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들도 많다 물론.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일하다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일하다가 아프더라도 회복을 돕는 시스템이 있는 사회, 그래서 일하다가 죽는 일은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학부모를 응대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다. 그래도 잘 회복해서 돌아가고 싶다. 힘든 업무, 힘든 학생, 힘든 학부모를 우연히 폭탄으로 떠안게 되는 개인들이 혼자서 버텨내야 하는 학교가 아니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학교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학교가 필요하다.
병가를 냈더니 작년 반 아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빨리 나으라는 말과 함께 이번 기회에 보수적인 우리 학교를 떠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따뜻한 조언도 해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학교가 힘들다고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 그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힘든 학교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학교에 남아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는 노력을 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나를 갈아넣으면서 고통을 참으면서 버티려는 것은 아니다. 긴 과정이기 때문에 즐겁게 가야 하고 즐겁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학교 안에는 적과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이 생각은 최근에야 하게 된 생각이다. 나는 학교가 싸움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었고 그래서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었다.
이번 휴식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더 즐겁고 단단하게 시도하고 선택하고 움직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