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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Sep 16. 2024

학생과의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어느덧 사춘기 학생들과의 나이차가 30여 년이 나게 되었다. 나름 학생들과 소통을 잘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자신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때는 급식시간(급식시간에 늘 많은 일이 일어난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새치기를 하려는 학생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너 몇 반이야?"

"3반이요."

"뻥치지 마 뒤로 가!"

"여기 서있기만 할게요~~"


이런 식의 실랑이가 이어지던 중, 남학생 R과 C가 갑자기 앞으로 걸어와서 급식판을 꺼내려고 했다.

"R! 새치기 안돼 뒤로 가!"

보통의 학생들은 여기서 앙탈을 부리거나, 읍소를 해보거나, 억지를 부리는 등의 행동을 한다. (슬프게도 바로 말을 듣는 학생은 거의 없다. 바로 말을 들을 학생이라면 새치기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R과 함께 급식판을 꺼내려던 C는 내 말을 듣고 뒤로 갔다. C는 평소 혼자서는 새치기를 하지 않는 학생이다.)

그런데 R은 나에게 성질을 부렸다. 황당해진 나는 R에게 새치기를 하면 안 된다는 훈계를 했는데 R는 불손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며 "네네네네네네~~~"라고 했다. '나는 반항하기로 마음먹었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나는 R과 C에게 한 마디 더 주의를 주고 적당한 줄에 끼워 넣은 다음 다른 학생들을 지도했다.


새치기 적발 작업이 끝나면 밥을 다 먹고 나오는 학생들이 식판을 잘 정리하는지 지도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설거지하는 사람의 고통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학생들이 적다 보니 잔반처리통과 다 먹은 급식판은 항상 어지럽고 음식물이 너저분하게 흘려져 있다. 최대한 질서를 지킬 수 있게 학생들을 도우면서 R이 밥 먹고 나오면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R은 작년에 수업에서 만났던 학생인데 매사에 반골 기질을 보이기는 했으나 학교 규칙을 무시하지는 않는 학생이어서 나름 성숙한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반항 모드가 된 건지 궁금해진 나는 밥을 다 먹고 나오는 R을 불렀다.

"R아 잠깐만 일로 와봐"

R은 내 쪽으로 오지 않고 반대편으로 걸어가며 "싫어요"라고 여전히 반항적인 대답을 날렸다.

"야~ 5초만!!"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R을 불러보았지만 R은 고개를 흔들어대며 떠나버렸다.

잠시 후 C가 나오기에 C를 불렀다.

"C야 잠깐만 일로 와봐"

"네?"

"R 왜 저러는 거야?"

"쟤 원래 자기 일에 간섭하는 거 싫어해서 그래요."

"응? 근데 새치기 잡는 건 자기 일에 간섭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별로 쟤가 잘못한 상황도 아니에요"

"왜?"

"새치기하려고 한 게 아니고 앞줄에서 밥 먹고 있던 애랑 얘기하려고 가면서 식판 집은 거예요."

"그래... 알았어 고맙다."


공손한 C와의 대화는 나에게 더 큰 의문점을 남겼다.

나의 상식으로는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서 이동한 거라면 급식판은 잡지 말아야 하고, 혹시 의도와 달리 새치기로 보이게 된 상황이라면 교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 게 예의에 맞는 것인데,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 R은 둘째치고 C마저도 크게 잘못한 상황이 아니며 교사가 오해한 것이고 R은 간섭을 당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이다.

내가 꼰대인 건가? 상식의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하는가? 앞으로 학생들과의 소통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여러 의문을 남긴 사건이었다.... 그 뒤로 R에게 다시 말을 걸진 않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평소처럼 인사했다. R은 데면데면하다.

어쨌든 R은 간섭을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고 나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동일하기 때문에 앞으로 R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더라도 친한 척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같은 상황이 와도 어쩔 수 없이 R에게 훈계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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