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업무를 하면서 불안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본질적인 원인은 아마 다양하겠지만 계기가 된 것은 흔히 말하는 ‘진상 학부모’였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학부모, 늦은 밤 시간에 대뜸 전화를 걸어 법 조항을 읊는 학부모, 아침 출근 시간에 불쑥 나타나 면담을 하자는 학부모.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상황이 예고없이 일어났고 나는 지은 죄도 없이 욕을 먹거나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학부모가 누구이든 간에 진심으로 대하면 어려울 것 없다는 경험적 신념을 가졌던 것은 그저 운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대고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결국 몇 달간의 병가를 내야 했고 새로 얻은 병은 쉽게 낫지 않아서 2년 넘게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고 있다.
불안증이 신체화로 나타나 시도때도 없이 통증에 시달려야 했던 나는 예전의 일상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달라진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상담도 받으면서 겨우 회복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예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가장 큰 계기였던 ‘진상 학부모’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에도 그들과의 만남이 힘들었지만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너무 힘들어 동료 교사들, 가족, 친구들에게 그들에 대한 험담(나도 살 길이 필요했다..)을 한 적도 있으나 사실은 그때에도 그들을 진심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원래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이성을 잃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의 사고 패턴은 대체로 비슷하다. ‘내가 볼 때는 내 아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이런 일로 징계를 받고 생기부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생겨야 한다니, 혹은 내 아이가 이런 피해를 입었는데 이대로 두면 가해자가 제대로 징계를 받지도 않을 것 같고 내 아이가 회복되지도 않을 것 같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학교에서 하자는 대로 해서는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내가 나름대로 변호사든 뭐든 찾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부모들일 뿐이다. 그때 나는 어쩌다 보니 그 싸움의 상대가 되었을 뿐이고. 그들도 내가 나쁜 사람이라거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함과 화를 어디에다 풀어야 하겠나. 학교를 대표하는 ‘학폭 담당 교사’를 만나 말할 수밖에 없다.
학교를 온전히 믿어주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에 대한 결과가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교를 믿고 항상 예의바르게 말씀해주셨고 자녀의 피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속상했음에도 답답한 진행 상황을 받아들여주셨던 피해자 학부모 A, 그럼에도 제2, 제3의 피해가 발생하자 결국 그 분도 변호사를 찾았다. 그동안의 관계가 있어 화를 내지는 않았으나 강경하게 바뀐 태도는 말하지 못한 분노와 실망이 얼마나 클 지 상상하게 했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거의 3년 동안 이어진 피해가 있었다. 동일한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여러 번의 학폭 신고가 있었으나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매번 작은 징계만 주어졌고 가해 학생의 태도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를 믿고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졸업 직전에도 다시 한 번 피해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학부모 B는 학교를 찾아와 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오히려 그 학부모를 응원했다. 내가 그였다면 아마 그렇게 오래 기다지리도 못했을 것이고 진작에 학교에 찾아와 화를 쏟아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피해를 입고도 피해 상황을 어른들께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학업을 중단해버린 학생이 있었다. 1년여가 지나서야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형사 고소, 학폭 신고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찾아 자녀를 도우려 했다. 이미 학교를 떠난 아이였기에 기댈 곳이 없었던 어머니 B는 학폭담당교사였던 나에게 크게 의지했다.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라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1년이 넘는 지리한 싸움은 맞폭으로 이어졌고, 가해자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 주고 받았던 문자 등을 빌미로 피해 학생도 작은 징계를 받게 되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출입할 수 없게 된 아이였기에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징계를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너무 힘들어 본인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던, 이야기라도 이렇게 속시원히 할 수 있어 감사하다던 어머니 C를 나는 정말 도와준 것일까. ‘왜 이 지경이 되도록 학교에서는 몰랐는가, 학교가 미리 알고 대처했다면 우리 아이도 나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분노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C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피해를 입고도 약자가 되어야만 했던 그들에게 학교는 제대로 된 의지처가 되지 못했다. 학교를 믿고 아이를 보냈었을 텐데.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며 청소년기를 잘 보내기를 기대하며 보냈을 텐데. 결국 남은 것은 학업중단, 맞폭으로 인한 징계, 정신과 진료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학교는 피해자의 회복을 돕기 위한 조치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상담기관, 대안교육기관에 연결해 준 것, 억울한 사연을 들어준 것, 징계를 가볍게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그것이 회복을 도왔을까. 어머니 C는 그나마 작은 고마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학교가 우리를 신경쓰고는 있구나 하는. 하지만 피해 학생에게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피해 학생은 결국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놀고 때로는 사고도 치다가 졸업을 할 동안, 피해 학생은 집에서 은둔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아무도 모르는 먼 곳의 대안교육기관을 찾았다. 그 곳에서는 적응을 했을지,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지 이제는 알지 못한다. 결국 돕지 못한 어머니 C에게 너무 미안해 더 이상 연락하지 못했고 학교로부터 받을 지원 절차가 모두 끝난 그도 더이상 나에게 연락해오지 않았다.
나를 아프게 했던 ‘진상 학부모’들과 학부모 A, B, C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모두 같은 상황에 처했고 분노와 절망의 마음을 학교를 향해 표현했는가 아닌가만 다를 뿐이다. 학교를 믿을 수 없었고 자녀를 지켜야 했던 부모의 행동에 대해 누가 욕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