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을 하면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자랑하고 싶은 상장 같은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학기 초 동아리를 편성하는 기간에 내가 개설한 철학토론반에 너무 적은 학생이 신청하고 옆자리 국어선생님이 개설한 독서반에 너무 많은 학생이 신청한 일이 있었다. 두 반 다 이대로 개설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학생들에게 동의를 구해 두 반을 통합한 뒤 적당한 인원수로 쪼갰다. 그 과정에서 편한 선생님과 함께 (공교롭게도 나와 국어교사 모두 학생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교사였다)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그 해의 까불이들이 두 반에 모두 몰려와 있었고 이대로는 두 반 다 운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와 국어교사는 협의하여 까불이들을 한 반(까불이들과 노는 일이 크게 두렵지 않았던 내가 맡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철학토론반의 인원 수가 독서반의 2/3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분배였다.)으로 몰기로 했다. 토론에도 독서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까불이들은 한 번의 설득에 모두 동의하여 철학토론반으로 모였다.
원래는 꿈이 크게도 철학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싶어 개설한 반이었으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아 한 시간 동안 신문기사를 돌려읽고 찬반 토론을 하고 나면 두번째 시간에는 앗쌀하게 노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학생들은 괜찮은 딜이라고 생각했던지 반항하지 않고 토론에 참여해 주었다. 토론 시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 듣고 보는 기사 내용에 흥미를 갖기도 하고 나도 처음 들어보는 참신한 견해들을 쏟아내고 말장난을 하기도 했지만 나름 진지한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과정에서 양 극단의 생각들이 서로 조금씩 섞이기도 하고 매번 잘 모르겠다며 아무 말도 않던 학생이 한 마디씩 자기 생각을 보태기도 하는 과정을 보며 ‘역시 토론이 짱이야’라는 생각을 굳히기도 했다.
노는 시간에는 ‘앗쌀하게’ 놀기로 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의자를 타고(농담이 아니다) 복도를 달리기도 했고 다같이 우르르 운동장에 나가 놀기도 했다. 너무 신나게 놀다가 사고가 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학생들을 쫓아다니다가 의자를 탄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까불이1을 마주치기도 하고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까불이2를 발견하고 달려가기도 하느라 나에게도 바쁜 시간이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동아리 시간 구글 설문지로 동아리 활동 평가서를 받아보았다. 마지막 시간도 역시나 신나게 놀고 헤어진 후에 교무실로 돌아와 설문지를 정리하다가 짧고 굵은 답변들 사이에 눈길을 사로잡는 한 답변이 있었다.
질문: 동아리 활동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답변: 선생님의 선함
이 답을 한 진현이는 과묵하고 체격이 좋은 학생으로 큰 사고를 치지는 않으나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수업이나 학교생활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아 선생님들을 다소 힘들게 했던 학생이었다. 동아리 활동에서도 늘 소극적인 모습으로 뒤에 빠져 있다가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진현이가 이런 답변을 하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너무 기뻤던 나머지 설문 화면을 캡처해서 SNS에도 올리고 사진도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 뒤로 6~7년이 지나는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운이 빠질 때마다 캡처사진을 다시 꺼내 보며 위로를 받았다.
내가 애쓰는 걸 학생들이 알아주는구나. 학생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헛된 시간들이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 그때의 내 태도들이 어땠는지 떠올리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은 어떤 상보다도 기쁘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