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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Sep 21. 2023

아빠표 수제비

일요일 메뉴

오늘은 무얼 먹을까. 매일 매일 고민하는 일이다. 저녁거리만 고민하면 되는 평일보다 더 많은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주말엔 종종 간단한 점심 메뉴가 인기이다. 특히나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 음식으로 메뉴를 정한다.


"엄마 그 한국 도우(dough) 음식 해주세요. 국물이 들어간 도우 말이에요."

"아, 수제비? 감자랑 밀가루가 있나 봐야겠다."


한국말이 서투른 아이들은 수제비 단어가 생각이 안 날때마다 '도우'라고 한다. 수제비도 만들기 싫을 때는 라면을 해 먹는데 수제비는 아이들도 톰슨씨도 좋아하는 메뉴이다. 묵은 김치가 있다면 아이들용으로 만들고 남은 국물에 김치와 간장양념을 얹어 살짝 매운 김치 수제비를 만들기도 한다. 


수제비를 만들 때마다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준다. 나의 아빠 이야기다. 

"엄마가 어릴때 너희 외할아버지가 수제비를 자주 해 주셨어. 일요일마다 해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어. 수제비는 원래 단단한 반죽을 만들어 손으로 떼어내서 만드는 음식이야. 칼로 자르면 칼국수이고. 근데 너희 외할아버지는 손에 반죽을 묻히지 않고 떼는 거야. 나도 재미있어서 어릴때 정말 많이 했단다."


아빠의 손 힘이 나에게는 없는지 젓가락으로 떼어 떨어뜨리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버터 나이프를 쓴다. 같은 원리이지만 다른 모양이다. 

주걱과 버터 나이프로 수제비 반죽을 뗴어내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면 특이한 것일까. 아이들도 이렇게 손에 묻히지 않고, 약간의 반죽을 주걱에 올려 버터 나이프로 일정량을 국물 속으로 툭툭 떨어뜨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자주 도와 준다. 수제비를 넣고 운 좋게 만두가 있으면 만두 몇알도 넣고 계란을 풀어 마무리하는데, 멸치육수로 낸 수제비를 참 좋아한다.


주말과 상관없이 늘 새벽 일찍 기상하는 아빠는 성당을 가는 일요일이면 좀 더 서두른다. 10시, 오전 미사에 가기 위해서이다. 우리집에서 성당에 가는 일은 샤워를 하고 제일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꺼내어 입고 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릴때는 부모님만 일요일 미사를 다녀오셨기 때문에 토요일 어린이 미사를 이미 다녀온 나는 늦잠을 자기도 하고 하였는데, 중학교때부터는 부모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 간단한 식사를 하고 성당에 다녀오면 점심 시간이 다가온다. 평소에는 요리를 잘 안하시지만 일요일마다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주셨다. 어느 광고에서나 들었을 법한 '오늘은 아빠가 요리사!' 라며 아빠의 특별식을 만들어주셨다. 아빠의 특별식은 늘 멸치 육수를 베이스를 둔 '잔치국수', '수제비', '떡국' 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는 면류와 국을 좋아하신다. 어린 나는 뜨거운 국물 요리를 식당주인처럼 차려내는 아빠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만드는 이 세가지 음식 중에 그나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수제비이다. 수제비를 만드는 아빠의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고, 직접 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보았던 노란실리콘이 달린 빨간 주걱에 약간의 손반죽을 올리고 젓가락으로 툭툭 털어 내는 것이 마냥 신기하였다. 아빠가 만든 반죽은 찐덕찐덕 하여서 손으로 만지만 손에 잔뜩 묻어 씻어야만 하는 물의 양이 많은 부드러운 반죽이었다.그 당시에는 자세히 잘 몰랐지만, 수제비는 큰 냄비에 물과 멸치를 넣어 육수를 진하게 만든 뒤에 감자, 파, 소금, 간장과 마늘을 넣고 미리 만든 밀가루 반죽을 조금씩 넣으면 되는 음식이었다. 아빠는 내가 먹을 수제비에는 간장으로 맛을 낸 후 계란을 잔뜩 풀어 만들어 주셨다. 하지만 매운 음식 뿐만 아니라 김치를 좋아하셨던 아빠는 냉장고에서 익은 김치를 꺼내 김치 국물을 수제비 한그릇에 잔뜩 부어 드셨다. 가족들에게 주고 남은 분량을 긁어 모아 김치국물까지 부어 만든 칼칼한 수제비를 드시며 엄지척을 내 보이셨다.


"아빠가 해 주니까 어때? 맛있지?" 

"응, 아빠 근데 수제비에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그냥 밀가루, 야채 조금, 멸치육수만 있으면 되...그리고 아빠의 손맛이 들어가지 "

"정말 맛있어요!"


아빠가 해 주는 수제비는 재료에 대한 부연설명이 특별히 없다. 냉장고 재료에 따라 당근이나 애호박등 야채만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일요일에는 홍합을 넣은 해물 수제비가 되기도 하였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나는 항상 맛있게 먹었다. 


김치와 홍합을 넣어 칼칼하게 만든 수제비







주말 오전 기분 좋은 냄새에 잠이 깼다. 안방까지 버터향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나를 깨우러 왔다. "엄마! 아빠가 파이클렛pikelet 구웠어요. 엄청 많이 구웠어요. 내 파이클렛은 미키 마우스 모양인데, 형아는 바퀴만큼 커요. 우리 빨리 먹으러 가요!!!" 평소에는 요리를 자주 못하는 톰슨씨라 주말에는 가족을 위한 요리를 종종한다. 오늘처럼 빵을 굽거나, 베이크빈과 해시 브라운을 더한 토스트 조식을 만들어 준다.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말 아침식사 만으로도 들뜬다. 


아빠가 만든 파이클렛

우리집 아이들은 톰슨씨가 만든 파이클렛 pikelet (뉴질랜드식 핫 케이크)을 좋아한다. 아빠인 톰슨씨가 주말 아침 요리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사랑한다. 주말 아침마다 아빠가 해 주는 아빠표 특별식을 기다린다.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파이클렛과 곁들이는 과일, 생크림, 잼을 챙기거나 오렌지 주스를 갈아 만든다. 아빠가 음식을 만들 때마다 그 옆을 서성이며 보조를 자청한다. 내가 어릴때 그랬던 것 처럼 아이들은 아빠와 아빠표 특별식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아빠표 특별식은 오랫동안 식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아빠표 수제비: 수제비 반죽(물 0.7컵, 소금 0.25 티스푼, 밀가루 2컵, 계란1), 멸치육수, 원하는 야채(애호박,감자, 당근, 양파 등), 마늘 0.5 티스푼, 소금, 후추, 간장

1. 수제비 반죽을 물을 넉넉히 부어 잘 섞어 만든다.
2. 멸치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3. 육수가 끓는 사이에 야채를 다듬고 그 외 원하는 옵션 재료(해물)를 준비한다. 
4. 육수가 적당히 우러나면 맛을 더하기 위해 멸치액젓이나 참치액을 넣어도 좋다.
5. 야채와 마늘을 넣고 익었을 때 수제비를 주걱에 올려 젓가락으로 밑으로 떼어 떨어뜨린다.
6. 파와 고추등 입맛에 맞게 넣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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