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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월급으론 부족했던 것들에 대하여

대기업 다니는 내가 사이드잡을 하는 이유

by 그래도한나
“대기업 다닌다며? 그럼 돈 걱정은 없겠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조금은 어색하게 웃는다. 겉으론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닌다는 건 분명 큰 축복이지만, 그게 곧 ‘모든 게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비,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 미래를 위해 쌓아야 할 자산, 나 자신을 위한 시간과 여유까지 생각하면,월급은 늘 빠듯했고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기준에선 ‘성공한 직장인’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은 매뉴얼대로 굴러갔다.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반복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가치를 더하고 있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도 내 이름은 묻혔고, 좋은 결과가 나와도 ‘그저 그런 성과’로 남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대체 가능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내가 빠져도 돌아가는 구조 안에서 그저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더 이상 회사 하나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이드잡을 시작했다.


퇴근 후 내 시간을 조금씩 떼어내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내게 준 가장 큰 가치는 돈이 아니라 ‘내가 만든 무언가’라는 성취감이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계속 바뀔 수 있는 조직의 일원이었다면, 사이드잡 속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였다.

내 감정, 내 기준, 내 시간대로 움직이는 일은 오랜만이었고, 그만큼 나를 회복시키는 힘이 컸다.


조금씩 수익이 생기자 자존감도 따라 올랐다. 더는 회사에서 모든 걸 얻으려고 하지 않게 됐고, 당연하게 참아야 한다고 여겼던 일들에 대해서도 선을 긋게 됐다.

“내가 꼭 이 회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는 단순한 반항심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힘이 되어주었다.

사이드잡이 가져다준 건 경제적인 보완뿐 아니라 감정의 균형이었고, 회사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게 되자 본업에서도 오히려 더 건강한 태도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애착과 집착은 다르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물론,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건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회의가 길어져 퇴근이 늦어지고, 예정해 두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미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중생활이 내 삶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느낀다. 회사는 생계를 책임지는 기반이지만, 사이드잡은 내 자존감을 지켜주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 이 회사가 내게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할 때, 나는 이미 나만의 기반을 하나쯤 만들어두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근을 두 번 한다.

낮에는 생존을 위해, 밤에는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갈증이 존재하고, 그 갈증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간다.

내게 사이드잡은 ‘돈을 더 벌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책임지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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