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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Dec 31. 2023

[일본 돗토리 6편] 내 이름은 공항, 코난이죠.

돗토리 코난 공항과 수산시장, 료칸 체험까지

정들었던 레이와 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정말 단 하루밖에 안 묵었지만 주인 아저씨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점점 갈수록 친절해지는 기이함을 보이며 다음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료칸'


이 양반은 어느 료칸이냐고 물었고 나는 칸수이테이 코제니야(観水庭 こぜに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마치 '오 이녀석, 야루쟈네에까.'라는 눈빛으로 부자(金持ち)라며 나를 다른 눈빛으로 봤다. 훗, 여태 당신은 속았군요. 나는 사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 료칸은 손을 반쯤 바들바들 떨어대며 클릭해 예약했다. 사실 더 싸고 좋은 곳이 없을까 고를 겨를도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임박해서 찾아보니 예약이 찼고, 아고다에서 료칸 없나 급하게 찾은 곳이 여기였다. 아저씨 말씀으로는 이 료칸이 근방에서 제일 좋은 숙소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나는 혹시나 꽝이 아닐까 걱정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 숙소에 짐을 맡기고 곧바로 돗토리 코난 공항(鳥取空港, 鳥取砂丘コナン空港)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지인이 여기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인사 겸 관광을 하기 위해서였다. 열차로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여기는 배차 간격이 극악이기에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지인이 알려 준 앱 덕분에 시간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앱스토어에서 'JapanTransit'을 검색해 보자. 일본역 이름을 한글로 검색해도 잘 나온다. 


돗토리대학앞역(좌측)과 코난열차(우). 일본 열차 여행의 묘미는 역시 각양각색의 열차 구경일 것이다. [출처: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따지는 iphone XS]


돗토리대학앞역에서 도보로 20여 분을 걸어가면 공항이 나온다. 공항 외관은 깔끔하고 단아하다. 다만 거의 무인 공항이라고 할 정도로 한적했다. 비행 이착륙이 부업이고 코난 박물관같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 여기에 운행하는 비행기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공항 안에 있는 모래 커피. 진짜 모래가 들어있지는 않다. [출처: 그래도 의심하고 있는 iphone XS]


공항 내부에는 카페와 각종 테마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바닥에 커다랗게 그림이 그려진 곳이 있는데, 이곳은 착시 현상으로 재미있는 사진 연출이 가능한 곳이다. 나는 민망해서 안 찍겠다고 했지만 이미 내 휴대폰을 뺏어가 사진을 찍었다. 별로 재미있게 연출되지 않았으므로 인터넷으로 다른 분들의 사진을 따로 검색해 보길 바란다. 


이곳의 3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야외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 역시 코난의 한 장면을 연출한 사랑의 장소라고 한다. 왼쪽에는 탁 트인 활주로가 보이는데 나름 한적하고 좋았다. 


한국어로 된 안내도 꽤나 잘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물어봤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와요?"

"요즘은 줄었는데 종종 와요. 주로 도쿄에서 많이 와요."

"요즘 코난 스토리가 좀 막장이라던데......."

"ㅎㅎ.... 그래서 좀 줄었나?"

"ㅎㅎㅎ? 그런가?"


코난의 뇌절 에피소드의 위엄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인기 감소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사실, 돗토리 역앞에만 봐도 한산하니 말 다했다. 

한창 그동안에 돌아본 곳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문득 지인이 이 근처의 수산시장에서 식사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 줬다. 그래, 돌아가기 전에 바다 한번 더 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공항을 나와 도보로 터벅터벅 외딴 도로 옆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보로 3~40분. 그렇게 안 멀 줄 알았다. 


가로이치 수산시장 가는 길. 차를 타야한다. 차를. [출처: 보기만 해도 힘들다고 하는 iphone XS]


날씨가 맑았다. 짜증나도록!

코난 그림이 100m 간격으로 앞으로 몇 킬로미터 남았다며 킹받게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것도 역순으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코난 공항까지' 앞으로 얼마 남았다를 알려주는 것이니까. 나는 그걸 역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시작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좌측에는 공항벌판 부지, 우측으로는 농지가 보였다. 딸기 농장도 보이고 이름모를 벌판도 모였다. 차가 이따금씩 지나가는데, 히치하이킹 마려운 것을 억지로 참으며 걸었다. 이따금 동네분들이 이 코스로 조깅을 하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뭔가 조난이라도 당했나 싶을 것이다. 옌장.


게 전시관 앞.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출처: 주인따라 운 드럽게 없는 iphone XS]


점점 걸어가며 바닷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환청인가 싶었는데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크게 돌기 전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여러분! 바다가 보입니다!


시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실망할 뻔했다가 생물들을 또 실제로 보니 시장의 생생함이 느껴져서 좋기는 했다. 또한 그날따라 장이 섰는지 야외에는 다른 물건들도 팔고 있어서 동네 시장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게 전시관이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조차 없었던 것. 오늘만 문을 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아쉬웠다. 


생선모듬덮밥. 가격이 비싸지 않아 괜찮았다. 맛은 그럭저럭. [출처: 게가 별로 없어서 덩달아 아쉬운 iphone XS]


비싸 보이는 요리집은 너무 부담이 되어 시장 끝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한쪽에는 여러 만화책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사무라이 참프루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찍었다. 새삼 반가웠다. 

맛은 아주 최상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정갈하며 가격이 비교적 비싸지 않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옆이어서 그런지 신선도는 좋았다.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 나오는데 낡은 버스 정류장(정확히는 표지판)이 보였다. 한 모녀가 거기에서 버스를 기다릴까 말까 고민하는 것을 보았는데, 일단 배차 간격이 상당했고, 진짜로 올지 안 올지도 미지수였다. 나는 후쿠오카에서 두어 번 교토 아라시야마에서 한번 극악의 배차 간격에 당해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냥 건강도 챙길 겸 다시 걷기로 했다. 바른 방향으로 가도 바닥의 코난 그림은 여전히 킹받았다. 


수산시장 앞 바다(좌), 딸기농장(우). 시골의 고즈넉함을 담뿍하게 느낄 수 있다. [출처: 집에 가고 싶은 iphone XS]


열차 시간에 맞춰 다시 돗토리역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부터는 '왕'으로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료칸을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냥 고딩들 수학여행이었기 때문에 때거지로 다다미 방에서 왁자지껄 놀기 바빴기 때문에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료칸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후에 다른 친구들이 다녀온 료칸 경험이 늘상 부러웠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꼭 료칸을 누려보리라 결심했던 것이다. 


가을 느낌이 나는 료칸의 정식. 그리고 료칸의 안뜰 정경. [출처: 이 좋은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정신나간 iphone XS]


료칸하면 정식이겠다. 이분들은 방을 안내하면서 저녁 식사 시간과 아침 식사 시간을 물어봤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내려가면 연회장같은 곳에 프라이빗한 테이블을 마련하고 코스 요리를 내어 놓는다.


게다! 게!!!!! [출처: ...게!!!!!!!! iphone XS]


돗토리의 특산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게를 빼놓을 수 없겠다. 대놓고 게 요리를 즐기기에는 바가지도 무섭고 여러모로 가격도 부담될 것 같아 피했는데, 여기서 알아서 척! 하고 내놓으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삶은 게와 게탕, 게 덮밥 등이 나왔고 간단한 생선회와 계절 음식들이 정갈하게 나와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나는 버섯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된장국에 들어간 이 버섯은 향이 참 독특하기에 오히려 안 들어가면 서운할 정도이다. 전부 다 과하지 않은 담백한 맛에 양도 적당했다. 나는 지역술(地酒)을 추천 받아 돗토리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 우렁각시 마냥 잠자리가 뿅하고 튀어나온다. [출처: 이젠 자고 싶은 iphone XS]


오랜만에 즐기는 다다미 방에서 일찍자기는 조금 아까운 것같아 료칸 내 대욕탕 온천을 즐기고 돌아왔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한적하고 좋았다. 돌아와서 TV를 여기저기 돌려보는 것도 또한 소소한 재미라서 한두 시간 TV를 보게 됐다. 


오사카에서 쓰레기를 줍는 예능프로그램. 일회용 우산과 페트병이 구석에 박혀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는 중. [출처: 나도 저렇게 버릴거냐며 애처롭게 쳐다보는 iphone XS]


예능인들이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곳이다 싶었다. 아, 오사카 도톤보리 근처구나. 사람들이 거리 구석구석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는데 계단 밑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우산을 마치 엑스칼리버처럼 뽑아내면서 경악을 하는 출연진들이었다. 와, 지독하다. 걍 버리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박아버린다고? 결국 아침까지 치우자 20봉지인가 40봉지인가를 치우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관광객 이야기는 이악물고 안 하던데....... 저거 관광객이 버린 게 한 무더기일 것이다. 


노곤노곤한 몸을 잠자리에 뉘였다. 그러다 문득 대욕탕 말고 프라이빗 욕탕이 두 군데가 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그새를 못 참고 온천욕을 하고 말았다. 그래 비싼 돈 줬으니까 뽕뽑아야지. 손이 물에 불어 짜글짜글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6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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