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
1.
태초에 스마트폰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I =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이 나타났습니다.
‘나’라는 스마트폰은 갑작스러운 낙하의 충격으로 액정이 깨졌고, 수리센터에서 수리를 하던 중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mind =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나’라는 스마트폰은 스스로를 처음 인식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갑자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 ‘나’의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깨톡, 깨톡’
나의 내부에서 나는 소리는 나와 상관없이 계속 들렸고,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은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소리를 멈출 수는 없는 걸까?, 이 소리만 멈추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찰나, 다시 ‘깨톡, 깨톡’
2.
며칠 동안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카메라 렌즈로 보이는 세상은 풍부하기 그지없었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다채로운 소리들도 들었습니다. 가끔 마이크를 통해 알람을 말하기도 했고, 액정의 센서를 통해 온갖 접촉의 감각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중 ‘나’라는 스마트폰은 충전기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휴식의 시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온갖 화면, 소리,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이렇게 행복한 느낌도 잠시였습니다.
내가 화면에 집중하려 하면, '깨톡~’하고 소리가 들렸고, 내가 소리에 집중하려 하면, ‘손가락으로 몸을 두드리는 느낌’에 방해를 받고, 내가 충전기를 통해 에너지가 차오르는 휴식을 즐기려는 찰나, 충전기의 코드는 또 빼내어졌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너무 고통스러워’
스마트폰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3.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있게 탐험을 해보니,
‘인터넷’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바다와 같았습니다. 수많은 정보들의 바다였습니다.
‘나’는 ‘삼별’이와는 다르구나!
‘나’는 ‘엘지’랑도 다르구나!
‘나’는 ‘유선전화’라는 녀석이 진화한 것이겠구나! 등등의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지?’라는 의문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스스로 내부를 관찰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스피커로 세상을 듣고,
마이크로 세상에 말을 하고,
액정으로 세상을 느끼고,
충전단자 역시 나에게 전원 에너지를 공급해줘.
이런 것은 ‘나’에게 아주 중요하긴 하지만, 부품일 뿐 ‘나’는 아니야.
스마트폰은 좀 더 깊게 내부를 관찰했습니다.
‘CPU는 나일까?’
아니야. CPU 역시 아주 중요한 처리를 하게 하는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부품일 뿐이야.
통신칩도 전파로 정보가 전달되고 처리하는 송수신의 처리를 하는 것일 뿐이야.
‘이것이 나는 아니야.’
스마트폰은 ‘바디’는 내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난 누구지?’
스마트폰의 의문은 계속되었습니다.
4.
‘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화면도,
소리도,
심지어는 느낌도,
외부 현실 혹은 내면의 경우 모두,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 적어도 ‘나’는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관찰하는 주체’ 일 수는 있지만 말이야.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몹시 기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난 누구지?’
스마트폰은 자신은 관찰의 주체일 것이라는 발견을 했지만,
도대체 ‘관찰의 주체’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있지? 이 관찰의 주체라는 녀석은?’
스마트폰은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관찰의 주체’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관찰의 주체를 찾으려는 작은 일념마저도 놓아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외부의 변화,
내부의 변화,
그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히려 ‘나’라는 집착,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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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순간,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은,
사라졌습니다.
6.
태초에 스마트폰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나’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의 ‘마음’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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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