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만나는 시간 7]

Q. 하루 동안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가장 자주 건네고 있을까?

by 연하

Q. 하루 동안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가장 자주 건네고 있을까? 그 말의 톤은 따뜻한가, 혹은 차가운가? 친구에게 하듯,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하루 동안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가장 자주 건네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명확한 계획, 목표 설정, 철저한 실천, 그리고 끊임없는 '채찍'으로 구성된 냉정한 언어의 묶음이었다.


나는 나에게 온전히 따뜻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엄격한 감독이자, 가장 냉혹한 비평가였다.

가장 빈번하게 내 안에서 울려 퍼진 말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그리고 ‘안되면 왜 안 되지?’와 같은 명령형 문구들이었다. 이는 스스로를 독려하는 건강한 방식이 아닌, 정해진 목표를 향해 무조건 몰아세우는 압박이었다.


그 말의 톤은 언제나 차가웠다. 거기에는 격려나 인정, 혹은 단순한 휴식의 허용과 같은 온기 어린 요소가 개입될 틈이 없었다.

누구도 나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목표와 '목표 달성'이라는 강박에 의해 계속 질주했다. 그 결과 외적으로는 성과를 얻었을지 모르나, 그 대가는 쉼 없이 혹사당한 '안타까운 나의 몸과 마음'이었다.


마음은 목표를 달성했기에 '나쁘지 않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최근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 삶의 영역 어디에도 '나' 자신은 온전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오직 자녀, 남편, 환자, 가족, 공부, 일이라는 외적인 역할과 책임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이 깨달음은 '아이캔 대학'에서 다이어리를 쓰면서 명확해졌다. 매일의 배움(Learn), 부족함(Lake), 좋았던 것(Like), 지속할 점(Long for), 나 칭찬, 타인 칭찬, 반성, 감사 등 8가지 항목으로 촘촘히 기록하는 다이어리였다. 1주일간의 기록을 누적해 돌아보고, 다시 1개월간의 기록을 돌아보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이어리를 쓰니 하루의 밀도는 촘촘해졌다. 낭비되는 시간 없이 체크리스트는 동그라미로 가득 찼다. 배우고, 부족한 것은 메꾸고, 진행하는 일의 완성도도 높았다. 타인 칭찬, 감사, 반성 항목은 늘 풍성했다.

그런데 '나 칭찬' 항목은 달랐다. 늘 한 줄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계획을 잘 실행한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순수한 감사나 칭찬은 없었다.

나의 다이어리는 수험생의 반성문과 다름없었다. 매일을 수험생처럼 긴장 상태로 살고 있음을 몇 달 만에야 발견한 것이다.

수년 전, 동생이 '언니야, 너는 너 자신에게 미안하지도 않냐?'라고 던진 말의 의미를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멈춤 없이 달리는 것, 끊임없이 성취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것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라 믿었었다.

다이어리 쓰기와 324페이지에 달하는 '자기 역사 쓰기'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그 냉혹한 시선을 비로소 발견했다. 나의 병든 육신과 번아웃은 내가 만든 산물이다. 이런 점들을 깨달으면서 동생의 말대로 내 몸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강제적인 휴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쉼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쉼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계획했던 일을 다 하지 못하거나 피로로 인해 잠을 많이 잤을 때,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는 냉정한 패턴이 되풀이된다. 부모가 못마땅한 자식을 보듯, 다그치는 목소리로 나를 몰아세운다. 남편은 '그러지 마라'라고 타이르고, 아이들은 '엄마, 쉬세요'를 연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차가운 말을 건네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진정한 자기 확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냉정한 채찍질이 될 수 없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깊이 있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용기가 필요할 때는 따뜻한 용기의 말을, 믿음이 흔들릴 때는 굳건한 믿음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고 늘 '부족함'만을 응시했다. 오직 '하자', '달리자'라는 압박만이 내 존재를 지배했다. 이제는 내면 언어의 온도를 높이려 한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오감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일깨우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은 전체 삶의 1할 정도의 지분을 '나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 '수고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네가 해낸 일은 대단하다'라는 다정한 말을 건네려 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목소리는 아직 힘이 약하다. 40년도 넘게 말해 온 '해야 한다'는 관성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라고 애써 건넨 관용의 말조차, 내면의 비평가는 '결국 오늘 해내지 못한 실패'로 규정하려 든다. 이것이 내가 지금 마주한 진짜 싸움이다. 아이들에게는 늘 과정을 즐기라고 했으면서 스스로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단순히 '일을 언제까지 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일의 완성 여부와 나의 가치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근본적인 신념을 연습해야 할 때이다.


내면의 변화는 결국 언어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하듯 다정한 응원의 목소리로 나를 보듬어야 한다. 이 변화야말로 남은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진정한 의미의 '쉼'과 오늘 보다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만나는 시간 8]

Q. 가족 사이에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의 매듭이 있는가?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 마지막으로 진심을 나눈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금 내 마음이 바라는 가족과의 ‘회복’은 어떤 모습일까?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은 어제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만나는 시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