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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봄봄 Nov 09. 2021

집에 가고 싶다.

우리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우리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2020년 12월 31일 둘째 봄봄이가 태어났다.

임신 30주 5일 만에 1602g으로 태어나버렸다. 


봄봄이는 하이플로우를 달고 호흡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였다. 계속 수액도 맞고 있었고 호흡이 나빠졌을 때는 스테로이드제와 항생제도 들어가야 해서 발이나 팔에 라인도 계속 잡아야 했다. 봄봄이가 움직이기도 하고 내가 안으면서 라인이 빠지거나, 오래 잡고 있어 붓거나 해서 라인도 계속 찾아야 했다. 봄봄이가 아직 아기여서 혈관을 찾기 힘든 데다 중환자실, 병실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잡을 수 있는 혈관도 없고... 혈액검사도 계속해야 하고... 그때마다 봄봄이는 숨넘어가듯 울고...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냥 계속 원인도 모르고 치료도 안되면 봄봄이 마음이라도 편하게 집에 데려가고 싶었을 정도였다. 중환자실 갈 고비도 몇 번 있었다. 또 그럴 때는 차라리 중환자실에 내려가서 치료를 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대로 이제까지 중환자실에 갔다 오면 건강한 모습을 봐서 그런지... 답답한 병실 생활이 계속되니 그런 철없는 생각도 자꾸 들었다.      


교수님도 주치의 선생님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지만 치료가 잘 안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중환자실에서부터 얘기가 나왔던 이비인후과에서 전신마취 후 수술장에서 기도 쪽을 한번 봐야 될 것 같다 하였다. 저번에는 의사선생님도 나도 전신마취 부담 때문에 고민했었지만 이번에는 해야 할 것 같았다. 

4월 6일 이비인후과 진료실에서 먼저 코로 한번 기도를 살펴보았는데 기도가 많이 좁아져 있다고 했다. 단지 그 원인이 원래 좁아져 있는 건지 아니면 봄봄이가 왼쪽 팔에 혈관종이 있었는데 혈관종이 팔 말고도 기도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기 때는 작았다가 점점 커지면서 기도를 막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수술장에서 자세히 보고 무엇이 되었든 기도가 많이 좁아서 약으로 치료가 안된다면 기관절개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 기관절개술이 뭐예요? 그때까지 난 기관절개술이 뭔지 몰랐다. 



기관절개술    

성대 하부 기관에 절개를 하여 코나 입이 아니라 절개 구멍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여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수술



설명이 부족하다. 감은 오는데 잘 모르겠다.     


주치의 선생님은 기관절개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그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니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어린아이들이 기관절개술을 한 이야기들을...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가래를 계속적으로 빼 줘야 하고, 기관튜브 쪽 소독도 매일 해야 하고., 특히 소리가 안 나오고... 아니야 기관절개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수술장에서 봄봄이의 상태를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혹시나 기관절개를 해야 할까 봐.. 의사선생님의 그럴 수도 있다는 그 말에 그날 이후 계속 걱정이 되었다. 빨리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음 주 화요일이 가장 빠른 스케줄이었다. 


이번 주 주말은 신랑이 봄봄이를 돌보기로 했다. 첫째가 많이 불안해하고 있고 나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 피곤하고 힘들었다. 장기전이 될 수도 있으니 잠깐 집에서 쉬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신랑이 일찍 퇴근 해 병원에 오고 봄봄이 상태와 약먹는 방법, 체크해야 할 사항등을 다 알려주고 집으로 갔다. 일요일 오후에 다시 와야 했기에 금요일 집에 가면서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밖으로 나갔다 병동으로 돌아오면 다시 코로나 검사결과를 보여줘야한다.). 첫째 하원 시간에 맞춰 가고 싶어 계속 서둘렀다. 버스에 내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데 첫째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10분만 있음 첫째를 볼 수 있다.. 다행히 거의 딱 맞게 도착하였다. 어린이집 버스 차량이 도착하고 첫째가 버스에서 나를 발견하고 씨익 웃는다. 정말 좋았다. 첫째는 엄마 이제 언제가?를 계속 물어보았다. 두밤만 자고 가야 한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면서도 밤에 잘때마다 안 가면 안 되냐고 우는데... 나도 정말 아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왔지만 그게 잘 안되었다. 이틀 동안 밤에 잠도 푹 자고 첫째랑도 열심히 놀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이틀이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4월 11일 일요일, 봄봄이는 여전히 호흡은 안 좋지만 다행히 컨디션도 괜찮다고 하였다. 첫째를 친정엄마한테 다시 맡기고 헤어지면서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이번에는 진짜 봄봄이랑 같이 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래 이번에는 진짜 같이 와야지...’ 나한테도 다짐을 하고 다시 봄봄이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이틀 동안 고생했을 신랑이랑 교대를 하려 하는데 봄봄이의 호흡이 안 좋아 보였다. 신랑은 오전까지 괜찮았는데 지금 이런다고 하였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분유도 잘 먹었다고 했다.    


아니다... 상태가 나쁘다. 평소에 호흡이 안 좋아졌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마침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는데 오전에 봤을 때랑 너무 달라졌다 하였다. 신랑을 집으로 보내고 계속 지켜보았지만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라인까지 막히고 발이 부어있어 새로 라인을 잡아야 했다. 애는 숨넘어갈 듯 울고 라인은 못 잡고... 호흡은 더 나빠지고.. 결국 중환자실 의사선생님들이 왔다. 내려가야 하나 버틸 수 있나... 내려가면 봄봄이가 고생할게 뻔하고 병실에 남아있자니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나도 모르겠다. 의사선생님들도 계속 결정을 못 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안되겠는지 중환자실로 가기로 하였다... 아... 이렇게 또... 왜... 자꾸... 다 싫었다. 한 달 넘게 입원을 했는데도 애가 저렇게까지 나빠질 때까지 의사들은 뭐 한 건지... 애가 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지...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 똑똑한 의사들인데 왜 치료를 못하는 건지... 다 원망스러웠다. 난 또 뭐 하다가 애를 중환자실로 가게 하는지... 언제쯤 이런 생활이 끝날지... 앞이 안 보였다.     


중환자실에서는 다행히 기관삽관은 안 해도 될 것 같고, 괜찮아지면 언제 병실로 올라갈지 모르니 이중 병실을 잡고 있어보라 했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하루 이틀 있어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난 중환자실 처치 끝나고 봄봄이 잘 있는 거 보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집이 가까우니 병실에 올라오면 바로 올 수 있으니 하루 정도 이중 병실만 잡고 있겠다고 했다. 봄봄이를 또 중환자실로 들여보내고 난 병실로 올라와 능숙하게 짐을 다 싸고 기다렸다 봄봄이를 보러 갔다.     


한숨과 눈물만 났다. 그래도 기관삽관은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중환자실에서 있으면서 수술장에 가서 확실히 기도가 어떤지도 보고 그래서 치료도 잘 받기를 바라면서... 이번에도 난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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