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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Jun 29. 2023

“그곳은 단 두 사람만의 군대였다”

<나무 위의 군대> 연극 리뷰

**극의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줄거리를 기술하는 것은 큰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연기와 무대 연출 등으로 주는 현장감은 따라올 수 없으니까요**


마곡에 위치한 LG아트센터 U+Stage 에서 공연하고 있는 <나무 위의 군대>를 보고 왔다. 이 연극은 1945년 4월부터 1947년 3월까지 2년 동안 일본의 패전을 모르고 오키나와의 한 나무 위에서 지낸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출연진은 3명, 상관과 신병, 여자이다.  상관의 역할은 더블 캐스팅이고, 상관과 신병 중 신병의 역할을 손석구가 맡아 화제가 된 극이다. 최희서가 맡은 여자의 역할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보러 가기 전 어떤 역을 수행할지 가장 궁금했다.


여자는 극에서 여성의 역할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데 무대를 거닐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몸짓과 함께 전달한다.

캐스팅보드, 캐스팅 보드 사진이 공연 전과 후가 바뀌는 것 같은데 일찍와서 바뀌기전에 찍고, 바뀐 뒤 찍지못하고 들어갔다가 다시 찍어서 결국 같은 사진만 찍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무대는 오키나와의 카쥬마루(ガジュマル) 나무 위에서 살았다는 실화처럼, 거대한 나무가 세워져 있다. 뒤편에는 달같이 아주 커다랗고 동그란 조명이 들어오는 벽면이 있는 심플한 구성이다. 2년 동안 나무 위에서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무대의 90% 정도를 나무가 차지한다. 무대의 전환은 특별히 없으며, 다채로운 조명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카쥬마루 나무 출처- 오키나와 여행 정보 사이트 (http://okinawatravelinfo.com/ko/feature/201509gajumaru/)

카쥬마루는 뽕나무과의 나무로 오키나와뿐 아니라 하와이, 인도, 동남아시 등 열대, 아열대 지방에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카쥬마루의 다른 이름을 들으면 조금 낯이 익는데, 호텔 이름으로도 있는 "반얀트리"라고 한다. 뿌리가 줄기나 가지로부터 뻗어져 나가서 점점 영역이 넓어져  "걸어 다니는 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다 성장하면 높이 20m까지 자란다고 하니 성인 남자 둘이, 뻗어져 나간 줄기나 가지로 충분히 가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옛날에 저 비주얼의 오래된 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을 법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키지무나(キジムナー)'라는 정령이 산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무 위의 두 남자 이야기는 그들과 나무만이 아는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는 나무의 정령 같기도 하다. 무대는 사진 속 카쥬마루 나무를 그대로 옮긴 듯 보이며, 전쟁이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할 트리하우스 그 자체였다.


극은 내 예상보다 유머가 많았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유머러스하지 않으면 무겁디 무거웠을 듯하다. 여담이지만, 여자의 나레이션이 내가 어릴 때 봤던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에 나오는 나레이션 같이 느껴졌다.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 여자 나레이터가 "용사는 도망쳤다" 혹은 속마음을 대신 나레이션해주었다.

내가 극을 보러 갈 때 항상 너무 진지함을 안고 가서인지, 이번에도 극을 보며 자연스럽게 웃는 것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손석구의 캐스팅은 아무래도, 신병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함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진 듯하다. 그렇지만 <나의 해방일지>, <범죄도시 2> 등에서 보여주는 손석구가 가진 날카롭고도 무서운 면, 어두운 면 등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우람한 체구이기에 신병의 성격은 몇 번의 순박한 웃음을 들은 뒤에야 왠지 안심할 수 있었다.


극을 보러 가기 전에는 크게 두 가지가 궁금했다. 먼저, 나무 위에서 2년 간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생존적인 측면에서였다. 두 번째는 어떻게 2년간 패전을 모를 수 있었는지.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이 실화에 대한 피상적인 것이었다. 극은 총 3단계로 느껴졌는데, 교전으로 나무로 올라가게 되고 나무에서 생존의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초반, 나무에서의 생활이 안정기에 들어서는 중반, 그리고 그 이후부터 패전의 소식을 알게 되는 후반이다.


초반은 전우가 죽어가고, 적의 총탄이 날아오는 상태의 극도의 흥분과 긴장감 속에 있다. 둘 뿐이었지만 남겨진 상관과 신병 사이에는 명령과 복종으로 엄격한 군법의 위계 속에 있다. '나라'를 지켜야 하는 본토의 상관과 나고 자란 섬과 이웃과 친구를 지키기 위한 신병은 나무 아래 적군과 아군이 뒤섞인 시체더미에서 올라오는 냄새와 전쟁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나무 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나무 위의 생활이 시작된다.


둘은 적군의 야영지를 때때로 살피고, 총기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지원군을 기다린다. 그러나 정해진 식량이 부족해지고 이윽고 생존의 문제가 닥친다. 극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둘"이서 "2년"을 버틴 현실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정해진 식량은 둘이 소비하는 것보다 하나가 소비할 때 더 오래갈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이기심이 피어오른다. 무기는 도처에 있고, 누구 하나 더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전쟁상황이기에 누군가의 살의는 긴장감을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혼자만 있었다면 "2년"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선다던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고집이 세고 명분을 중시하는 상관에게 신병은 순박한 웃음과 착한 성미로 어르고 달랜다. 상관은 그 나름대로 신병의 그런 모습이 신경에 거슬린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기심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극한의 상황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서로 썩 잘 맞지는 않은 상대지만, 되도록이면 충돌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적의 야영지에선 한차례 하룻밤을 꼬박 새울정도로 음악소리가 크게 울리고, 춤을 추는 이들이 목격되었지만 이들은 패전은 상상도 못 한다. 적의 야영지 쓰레기 더미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고, 초반보다 풍족한 삶으로 안정기에 들어선다.


그러나 몸이 편안해지고 둘을 짓누르는 커다란 적을 향한 긴장이 덜해지면, 숨겨왔던 조그만 불만과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는 왜 싸우지 않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있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신병이 이야기했던 이런저런 추억의 배경인 섬이 점차 적의 야영지로 덮여간다. 그는 내 친구와 가족, 이전에 누리던 것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눌러 담아왔었다. 그러나 술은 이 모든 걸 터트린다. 나무 위 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충돌이었다.


나무 위에서 두 번의 계절이 지나간 뒤, 신병이 항상 뒤지던 식량 창고를 뒤지던 중 쪽지를 발견한다. 전쟁이 끝났으니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나무 위의 생활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한 신병은 흥분으로 가득 차 상관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 상관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으며,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뒤이어 이 모든 게 사실이라 해도, 패전을 모르고 2년 동안 나무 위에 숨어있던 겁쟁이로 여겨질 수치심이 엄습했다.


물리적으로 가장 생명을 위협하던 전쟁이 끝났지만, 모순적으로 이 둘은 죽을 위기에 처했다. 대의명분을 내세운 전쟁이 가려주던 모든 추악한 행동과 감정이 드러남에 상관은 견딜 수 없다. 그리고 2년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전우애는 온데간데없고, 이 모든 걸 아는 신병은 사라져 줘야 한다. 두 사람은 나무 위에 있었던 모든 감정을 토해낸다.


둘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나라’를 지켜야 하는 본토의 사람과 나고 자란 ’ 고향’이 전장이 되어버린 사람의 입장은 엄연히 달랐다. 상관은 ‘대의’라고 내세운 것을 위해서는 하나의 ‘고향’따위는 지워져도 어쩔 수 없었다.


신병 역시 한 명의 국민이었지만, 그보다 나고 자란 내 땅과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나무 위에서 언젠가 신병은 자신이 친구의 신발을 찾아준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친구의 신발을 밤늦게 까지 찾아 주었고, 그 근방에 있던 다른 친구가 이를 지켜보다 밤늦게 집으로 초대해 밥을 주었다는 일화였다. 신병은 지켜보기만 하고 함께 찾아주지 않은 다른 친구를 탓하기보다, 밥을 차려준 '친절'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둘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이기에 나무 위의 생활은 가능했다. 상관은 마음속 깊숙이 대의뿐이고 패배가 자명한 전투에서 도망치고 싶어 나무에 올랐다. 신병이 살아남았던 마을 친구를 함께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그를 제지했고 그렇게 둘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신념뿐이고 고지식한 상관에 대해 신병은 ‘대의’라는 것을 내세워 일으킨 전쟁인 주제에 이를 막으려 온 적들로부터 ‘고향’을 지켜주어 고마워했다.


극을 보기 전 떠올린 두 가지의 피상적인 궁금증은 관극 후 실제 전쟁의 무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목적이 무엇인가. 전쟁이 수반하는 생존, 신념, 대의, 수치, 이기심을 통해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지구 한쪽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일면이 이렇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것 없다. 달력을 보니 한반도의 전쟁의 상흔을 입힌 6월이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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