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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Mar 16. 2023

난 기꺼이 망가지고 있지 않나

잘못된 우선순위에 터져버린 삶


짱구의 한 장면이 있다. 장난감 상자가 꽉 찬 걸 본 짱구 엄마가 짱구에게 상자 위로 넘치는 장난감을 버리라고 한다. 짱구가 한 선택은 아무 장난감도 버리지 않고 상자안에 테트리스 하듯 장난감을 채워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그만 로봇팔을 마지막으로 꽂아넣는 순간 상자가 터지며 장난감이 와르르 흘러나온다.



회사를 다니는 7년 동안 줄곧 ‘생산성‘에 집착했다. 매순간을 생산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생산성이란 돈이든, 프로젝트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회사에 도움이 되고 팀에 도움이 되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휴식이란 아무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이었다. 비는 시간은 외국어 공부, 부업, 인간관계로 끼워넣었다. 주변에서는 걱정의 말들 뿐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걱정들이 들리지 않았다.


내 인생은, '짱구의 장난감 상자'와 같았다. 빈틈없이 채워진 시간 속 나의 몸과 정신은 기꺼이 망가져갔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고 나의 아픔은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망가진 날 마주하는 게 무서워 외면해 온 것 같다. 그러다 마주친 괴롭힘은 날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장난감 상자를 터트린 짱구는 마냥 귀엽지만 안타깝게도 난 귀여운 5살이 아니다. 난 장난감 상자를 터트리지 않고 비우고 정리하는 법을 배웠어야 할 어른이다.



휴식을 위해 퇴사를 했지만 날 돌보는 법을 전혀 몰랐다. 할 수 있는거라곤 병원을 다녀와 침대에 누워 울면서 천장을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취미도, 기력도, 삶의 의미도 없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내 인생의 ‘생산물’은 ‘나 자신’ 그 자체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2개월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자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햇빛을 보고 요리를 해먹고 책을 읽어봤다. 내가 너무 이질적이었다. 어색한 친구와 노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나와 친해지는 연습을 조금씩 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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