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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Sep 26. 2023

그리움을 머금은 곳, 일본 3대 사구'나카타지마'

[일본여행_시즈오카 소도시 여행_바다를 보다]

시즈오카 마지막날 오후, 좀 더 색다른 여행지를 찾아 일본 3대 사구 중 한 곳인 '나카타지마'로 떠났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별다른 설명이 없고 사진을 찍어 올린 것도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돗토리, 치바의 구주쿠리 해변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사구(砂丘)라는 글귀 한 줄에 마음이 끌렸다. 괜찮겠지, 가보자. 사구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출발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 가끔은 지친 나에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갈까'할 때 그래도 '가보자'하며 나를 일으켜 걷게 한다.





반신반의하며 하마마쓰역에서 버스를 10분 탔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걸렸지, 가까운 거리였다.

사구가 있으면 바다는 덤이요, 나에게는 일석 이조다. 위치는 시즈오카현의 하마마쓰의 남쪽 태평양에 인접한다. 입구에 도착하면 위로 모래가 높이 솟았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의 소실을 막기 위해 울타리가 양쪽에 설치됐고 그 가림막에 대한 안내문도 있다.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면 왜, 경사가 있는지 궁금했을 텐데, 번역기가 참 신통방통하다. 사구는 동서로 4km, 남북으로 600m 길이다. 위로 오를수록 발이 더 푹푹 빠져들어갔다. 천천히 걸었다.





꼭대기에 오르니 넓게 펼쳐진 사구가 보였다. 여기가 끝이라 생각하며 눈앞에 가득 찬 모래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사구는 내 상상을 뒤집었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는데 '아차', 내 이마를 쳤다.


내 인생도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단단해졌는데 사구도 닮은 걸까?

바람에, 비에, 눈에, 덥고, 춥고를 반복하며 얼마나 긴 세월을 견디었을까?

특별한 형태는 없지만 모래알이 모여 넓은 사구를 이룬 공간을 보며 자화상이 생각났다. 재밌다. 아래로 내려가 사구를 걷다 보니 물결모양으로 무늬가 있다. '풍문(風紋)'이라 불리는 사구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바람에 의해 모래에 생기는 무늬로 파도를 닮았다. 강한 바람에 풍문이 만들어진다는데 여지없이 오늘도 강풍이 거칠게 불어온다. 파마한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엉키고 고개도 들기 힘들었다. 사구에는 모래만 있는 건 아니다. 사구를 지나면 자갈밭이 있고 그 마지막에는 바다가 기다린다.   





물수제비를 뜨는 세 자매는 뭐가 좋은지 한 번에 돌이 퐁당 빠져도 까르르 웃고 있다.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큰언니는 대장이 되어 동생들을 계속 독려했다. 아빠가 뒤에서 카메라로 담는 찰나의 모습에 어렸던 그 시절 내가 소환됐다. 나는 가족들과 바닷가를 간 기억이 없다. 큰 오빠와 열 살 터울로 오빠와 나의 세대는 좀 달랐다. 그래도 가족인지라 함께 아등바등 살았지만 감성의 추억은 남아있지 않다. 어린아이들을 보니 그때 못 했던 가족 여행이 생각났다. 여기 개들은 무슨 호사인지 작은 푸들부터 덩치가 큰 골든레트리버까지 견종도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주말이라 가족나들이가 유독 많았다. 마라톤 복장으로 조깅을 하고 바다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피크닉 온 가족들 사이를 둘러보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이제 우리 형제들만 남은 낯설다면 낯선 땅에서 여행을 온 나는 여기서도 혼자였다.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생각났을까? 희한하게 넓은 곳에서는 가족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엔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내 옆에 있다. 바다를 엄마 품속으로 생각하고 어디든 여행을 떠나면 먼바다라도 찾아다녔다.

새로운 바다를 만날 때마다 엄마도 여행을 함께 즐기리라.


음악을 크게 틀었다.

이어폰도 필요 없다.

파도 소리에 노래는 나비의 날개 짓만큼 작았다. 흥얼거리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좋을 걸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일찍 떠나셨다. 사무치게 오늘은 그리운 날이다.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내다 여행을 떠나면 유독 엄마가 생각나고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있으니까.





나에게

바다가 그렇다.

넋두리를 들어주고

엄마를 만나게 해 주고

끝없이 넓은 바다로 나를 품어주는 언제나 내편

속 시원하게 울어보라며 때론 파도를 거세게 치고,

비바람에 태풍도 휘몰아치며 나의 아픔을 함께 해주는 바다.


나도 언젠가는 

엄마와 함께

바다에 남고 싶다.





여행이란?

내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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