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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un 22. 2023

걸어야만 볼 수 있는 시즈오카 전망대

[일본 소도시 여행_시즈오카_녹차, 녹차, 녹차밭 그리고 여기]

녹차 박물관을 나와 역까지 걷는 내리막길은 움직이는 시즈오카 전망대다. 이 꼭대기라면 야경도 멋지지 않을까. 멀리 보이는 불빛도 매력적이겠지만 맑은 하늘을 보며 싱그러운 초록을 느낄 수 있는 지금도 눈 부시다. 




겨울이라 5시면 어두워지져 조금 빠르게 걸었다.  도로 옆에 보행자 길이 있다. 내리막길은 걷다 보면 무릎에 통증가 온다. 연일 걸어 다녀 오른쪽 무릎이 많이 부어올랐다. 이번 여행을 하며 제일 걱정을 했는데 여지없이 신호가 왔다. 밤마다 찜질과 마사지를 하고 파스로 마무리를 했는데 한 번 아팠던 무릎은 좀처럼 낫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이 제일 젊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도 이 시간을 즐기고 있음에 감사하며 구석구석을 눈으로 바쁘게 담았다.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니 힘들어도 이 여유로움을 느끼 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여행을 할 때 가끔씩은 나약해진 자신을 붙잡아야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어디를 가기보다는 제주 올레길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는 감정이 내려간다. 장기전일 때는 더더욱이다. 젊었을 때 시간은 느리게 가지만 늙을 때 시간은 겁나게 빠르다. 하루, 일주일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고개를 들면 한 달, 일 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여행 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체감은 한 달 이상의 체력이 소진됐다. 





빠르게 걷고자 했는데 자꾸 걸음이 멈춘다. 녹차밭도 좋았지만 꽃들이 정말 많다. 갑자기 나팔꽃이 나오기도 하고 들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일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소박한 춤을 춘다. 

나는 여행이 좋다. 

걷고 보고 멈추고, 다시 걷는 투박한 여행을 좋아한다. 

처음 시작은 유명한 장소를 찾고 먹거리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간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도 내 마음속의 열망들은 멈추지 않에 혼자 갈 때는 느림에 더없이 익숙하다. 잔소리 없고 눈치도 필요 없는 편안함을 언제부턴가 즐기게 됐다. 





카나야역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다. 계속 쉬지 않고 박물관과 정원을 다니다 보니 지금쯤 쉼이 필요했다. 

전망 좋은 곳에 'coffee'간판이 있어 들어갔는데 주문한 메뉴는 아이스크림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크림을 얹고 체리로 장식했다. 90년대 아이스크림 장식이다. 일본스럽다. 물은 따뜻한 엽차로 궁합이 맞다. 동네 마실을 나온 듯, 나이 지긋한 여 주인장과 친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카페 의자에 앉아 마주한 전망은 생각보다 멋지지는 않다. 이 카페를 들어오기까지에는 많은 생각이 있었다. 빨리 걸어 시내에 있는 '사와야카 햄버거'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 저녁을 먹을지 아니면 카페에서 쉬고 마트에 가서 초밥을 사 먹을지 결정을 해야 했다. 햄버거 맛이 궁금했지만 나는 휴식을 택했다.





4시가 넘으니 어둑어둑 해지며 길가 가로등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졌다. 걷는 내내 오른쪽으로 펼쳐진 녹차밭, 그리고 시즈오카 전경을 보며 어느 곳의 전망대보다 좋았다. 돈도 들지 않고 냄새도 맡고 만질 수도 있는 자연 그대로를 보고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조차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이지만 걸으면 1시간 남짓 하다. 지금도 그때 걸었던 그 기분이 생각날 만큼 너무나 상쾌했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맑은 날 걸었으니 다음에는 비 오는 날 걷고 싶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안개까지 있다면 분명 다른 기분이 생길 것이다. 





장기간 여행에 지치기도 하지만 혼자 있다 보면 외로움에 익숙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시기가 있다. 

여행은 이렇게 넉넉함 마음을 아낌없이 베푼다.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여기 오길 잘했다. 

그리고 걷길 잘했다. 

걷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초록향기가 멈추지 않는 곳, 아름다운 길을 만났다.





나에게 여행이란,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걷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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