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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케가와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 (ステンドグラス美術館)

[일본 소도시 여행_시즈오카_빛이 스미는 공간 속으로]

by 지금도바다

여행에는 성당, 사찰, 유적지, 미술관 투어가 절반이상을 차지할 만큼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볼거리가 있지만 현재는 어딜 가도 먹거리, 즉 먹방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특색 없는 자랑하기에 바빠졌다. '여행'의 정의는 없다. 정답도 없다.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그래도 몸은 움직일수록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 나는 먹는 것보다는 걷고 보고, 또 느끼는 여행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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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소도시에도 미술관이 많다. 찾아보면 우리나라 보다 분야별로 더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비 내리는 날, 그리고 그림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가려고 3~4일의 일정을 미리 뺐다. 유럽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이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에 있다는 정보를 얻고 열차에 올랐다. 옛 모습을 보존한 가케가와성과 니노마루 다실등 에도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다. 날씨 탓일까,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은 너무나 조용했다. '사람들은 다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말인데 텅 빈 거리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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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케가와성에 도착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바퀴를 둘러보고 혹시나 해서 공사하는 안내판을 번역해 보니, 내년 5월까지 공사 예정이다. 안내책자에는 1994년에 천수각을 복원했다는데 얼마나 됐다고 다시 공사를 하지? 부실공사였나? 홈페이지를 다시 찾아봐도 통합 입장권의 안내만 있을 뿐 공사는 언급조차 없다. 고베의 히메지성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꼭 보고 싶었는데 시간만 버렸다. 갑자기 기운도 빠진다. 보고 실망하는 것보다 찾던 곳에 들어가지 못할 때의 상실감은 더 크게 온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투자했는데 이제 남은 건 미술관 관람뿐이다. 여기는 열었겠지. 사방 어디를 봐도 굳게 닫혀있는 문을 보며 기운이 빠졌다. 비탈길을 내려가 작은 빛이 나오는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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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기증받은 70여 점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19세기 영국빅토리아 시대가 중심이다. 시간대, 날씨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신비한 미술관, 오늘은 많이 흐린 날이다. 밖에서 비추는 빛이 어두워서인지 스테인드글라스가 묵직했다. 쓸쓸함이 내 속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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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까지의 이야기가 있고 제사장, 천사 등 검정 테두리 안에서 빛의 각도에 따라 저마다의 색깔로 성스럽고 다부진 모습들로 잔잔하게 다가왔다. 오타루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미술관을 간 적이 있다. 실제 19~20세기 영국 교회에서 사용했던 창을 가지고 와 전시를 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는데 닮은 듯 다른 전시를 보니 눈이 호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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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마지막 전시실에는 만드는 과정의 소개가 있다. 먼저 스케치를 하고 유리를 결대로 쪼개 테두리를 감싸고 색을 칠하는 작업으로 스테인드 글라스는 완성된다. 유리가 조금만 엇나가도 다시 작업을 해야 할 만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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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경계가 없다. 하지만 강약의 힘조절과 한 번만 어긋나면 처음부터 해야 하고 빛까지 고려해 명암을 넣는 작업은 쉬운 게 아닐 텐데 볼수록 경이롭다. 빨리 보면 15분 만에 끝낼 수도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지만 천천히 성서이야기에 따라, 빛의 각도에 따라,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림만 보고, 또 여기의 공간만을 본다면 감동을 더해 오랜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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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여행이란,

예상치 못 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지만 그 버려진 시간에 나를 돌아보며 배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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