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1시간 넘게 하마마쓰까지 열차를 타고 버스로 40분을 더 가서야 도착한 곳은 칸잔지 로프웨이였다. '하마나코'를 속초 영랑호로 생각하고 걸어볼까 했는데둘레가 약 114km로 너무나 큰 호수였다.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로프웨이가 필수다. 동심을 부르는 놀이동산 하마나코파루파루를 시작으로 꽃의 정원, 온천, 유람선, 로프웨이등이 호수 주변에 모여있다. 전망대를 좋아하는 나는 오래된 로프웨이를 타고 먼저 하늘로 향했다.
안에 나무 의자가 보였다. 앤틱이라 부르기에는 좀 촌스럽다. 1970년대를 연상할 만큼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불현듯 의자의 나이도 궁금해졌다. 1960년 12월에 문을 연 로프웨이는 칸잔지역에서 오쿠사야마역을 잇는 723m 길이의 노선으로 엔슈철도에서 운영한다. 재밌는 건 '일본 최초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로프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의 냄새는 그냥 풍기는 짬밥이 아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의자에 친근감이 생겼다. 요즘은 모든지 빨리 변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기 바쁜데 이곳이야 말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위로 올라갈수록 넓은 호수는 짙은 감청색으로 변했다. 보트도 타고 배도 다니는 호수는 눈에 다 담지도 못한다. 전체 호수 둘레에서 100을 뺀 14km로 알고 여기를 걸으려고 했으니 헛웃음만 나온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하마나코 주변에는 사이클도 많이 탄다.누군가와 함께라면 탈 수도 있었겠지만 초보자라 패스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자전거를 30대에 배워 한 동안 일산호수공원을 누볐었는데 좀처럼 다시 타게 되질 않는다. 다시 탈 수 있을까. 넓은 호수에 욕심이 생긴다.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에 내리면 '오르골뮤지엄'과 '전망대'가 기다린다. 막상 올라오니 강풍으로 확 트인 호수 감상이 어려웠다. 옹색한 걸음으로 360도를 회전하며 경치만큼은 최고인 호수를 한 바퀴, 두 바퀴를 돌고서야 내려왔다. 규모에 실망한 마음을 붙잡고 '오르골 공연장'으로 입장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 12월의 주제는 '성탄절'이다.
큰 오르골에 동전을 넣으니 징글벨이 흥겹게 울려 퍼지고 레코드판을 돌리니 또 다른 음악이 나왔다. 역시, 크리스마스는 유쾌함과 따뜻함이다. 좀 더 웅장함을 기대했는데 돌리는 게 전부였다. 생각해 보면 오르골은 연주자가 필요 없다. 그 울림통에서 구멍사이로 음악이 나오는 건데 공연이라는 말에 잠시 혼돈했다. 영롱한 떨림의 소리를 들으니 눈이 펑펑 내리는 느낌은 나지만 뭔가 어설픔이 묻어났다. 오케스트라처럼 여러 개의 오르골로 멋진 연주를 했으면 어땠을까, 단조로움에 나는 눈을 감고 웅장한 상상의 연주를 시작했다. 홋가이도 오타루에 가면 수많은 오르골소리에 홀려 마음이 뺏기고 감성도 녹아드는데 여기서는 느낄 수가 없었다. 오타루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마음을 푹 담근 곳이다. 다음 여행은 오타루로 갈까. 흔들리는 열차를 타고 벌써 마음은 달려간다.
처음 가는 곳은 낯선 기대감이라는 게 있다. 평소 변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소소한 오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세월의 흔적만큼 현재도 함께 공존하면 어땠을까. 여행은 그 나라, 지역에 따라 보이는 것,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한 만큼 존중으로 마음을 정리했다.빛바랜 레이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매력은 단아함과 우아함 그리고 웅장함은 어디에 내놓아도 멋진 그림이다. 블라인드도 아니고 커튼이라니 시간여행에 정점을 찍었다. 창문 옆에 앉아 달달한 초콜릿 소스와 생크림이 듬뿍 뿌려진 팬케이크와 은은한 향이 퍼지는 다즐링 한 잔 마시고 싶어 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