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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Oct 19. 2021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으로의 여행

[시간이 잠시 멈춘다면]

인제 시외버스 T - 자작나무 숲 (원대임도 - 3코스 - 2/5코스 - 원정임도 약 8KM) 




자작나무숲은 여러갈래길이 있다.




▶ 숲길 탐방로

1코스(자작나무 코스 0.9K / 50분) : 순백의 자작나무 숲 집중 생육지역 

2코스(치유 코스 1.5K / 90분) :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지역

3코스(탐험 코스 1.2K / 40분) : 작은 계곡이 함께 있는 지역

4코스(위험 코스 3.0K / 120분) : 천연림과 자작나무 숲이 조화를 이룬 지역

5코스(힐링코스 0.86K / 30분) : 천연림과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는 지역

6코스(하드 코스 2.24K / 100분) : 천연림과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는 지역

7코스(숏코스 1.0K /50분) : 천연림을 탐방할 수 있는 지역


 인제 천리길

▶ 백두대간 트레일





도착후, 흐린날씨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걷다보면 앞은 보이겠지.





2년 전, 새벽에 날씨가 좋아 속초에서 무작정 떠나온 곳이 '자작나무 숲'이었다. '한번 가보자' 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갑자기 그날 기분에 따라 출발했다. 작은언니, 형부와 오랜만에 신나게 달렸다. 차 안에서 즐길 간식으로 옛날 토스트와 유부초밥을 만들어 여행보다는 '소풍'을 떠났다. 편안하게 자동차로 시작된 어른들의 소풍은 중간에 잠시 멈춰 여름 끝자락에 핀 코스모스 밭에서 사진도 찍으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자작나무 숲'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시간대를 맞추기 어려워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계 탄 기분이다. 






메밀밭인가, 길을 걷다 보면 궁금함이 100%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가.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가을이 다시 찾아 온날, 마치 은하수처럼 조용히 반짝이는 자작나무가 보고 싶었다. 가끔씩 그곳의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리웠다. 흰색과 밤색 줄기 사이로 나온 초록잎은 하늘을 수놓은 듯한 풍광을 처음 봤을 때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곳을 오지 않았다면 이 기분은 모른다. 하지만, 한번 왔다면 또다시 보고 싶은 계속 생각나는 곳이다. 


깊은 산속  한가운데  나만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다. 홋가이도 '비에리 탁신관 자작나무 숲'을 겨울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낯선 곳에서 만난 눈 덮인 그 첫 모습의 초록색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작나무숲 첫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길이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으로 인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원대리 공용 미니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배차시간만 잘 활용하면 숲 정류장의 승하차가 가능하다. '인제길'의 특성은 어디를 가든 '구비구비'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번 백담사 갔을 때도 30분 정도 꼬불꼬불 올라갔는데 오늘 자작나무 숲길도 큰 도로를 지나 원대리로 들어서며 어찌나 계곡을 올라가듯 달리는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20분 넘게 스릴 넘치게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인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 





지난번 처음 방문했을 때는 러닝화를 신고 왔는데 이번엔 등산화와 바지, 얼음물 2통, 구운 달걀 3개, 사과 1개를 배낭에 넣어 간단한 점심거리를 챙겼다. 혼자 여행할 때는 시간적 여유도 없어 출발할 때 습관적으로 배낭에 채워 넣는다. 지난번엔 막국수도 먹곤 했는데 홀로족일 때는 버스시간에 맞춰 미리 준비를 한다. 






자작나무 입산안내를 꼭 확인하자.





'숲길'이라 함은 단순한 '걷기'를 연상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걷기만 하면 나오는지 알았는데 갑자기 산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걷는 내내 언니와 얼마나 구시렁했는지 모른다. 맘을 단단히 하고 출발해야 한다. 이번 두 번째는 안내도를 꼼꼼히 체크 후, 그때가 그리워 다시 온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내가 자욱한 숲길을 걷다보니 오지를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뱀나오면 어떻하지.





첫 시작은 왼쪽 원대임도(아랫길)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속초에서 7시 20분 인제로 가는 첫차로 출발했을 때 날씨가 맑았는데 미시령을 넘어 용대리로 들어서며 갑자기 날씨는 급속도로 흐려져 안개가 자욱 깔렸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날씨는 좋아질 거야.' 생각했지만 숲길을 걷는 1시간 내내 흐린 날씨에 앞이 잘 안 보인다. 평지를 지나 오르막 길로 들어섰을 때는 긍정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이 안개 낀 날씨도 제법 운치가 있다. 살짝 젖어 있는 나뭇잎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희미하지만 새벽 공기를 마시 듯 상쾌한 기분이 걷는 내내 함께 했다.


이젠  본격적인 오르막 길, 3코스다. 이 길을 올라갈 때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힐링하고 싶어 왔는데  고생을 하고 있지. 끝은 어디지.'를 얼마나 물으며 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체력이 더 저질이라 그랬다. 그래도 지금은 일주일에 4번씩 영랑호 8KM를 걷다 보니 이제 어디를 걸어도 두려움은 많이 없어졌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촉촉한 이슬에 젖은 나무와 꽃들의 냄새가 너무 좋다.





오른쪽 작은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돌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자작나무 초입인 나무계단이 나온다. 그때부터는 힘든지도 모르고 얼굴과 몸은 360도로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사진 찍기 바쁘다. 처음 봤을 때는 저절로 동공이 커지며 엔도르핀은 급상승한다. "와아!!" 하는 감탄사가 올라가는 내내 끊이질 않는다. '세상에, 너무 멋지다. 그래서 이렇게 쉽게 네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니?' 하며 미워했던 내 마음을 사과까지 했으니 말이다. 계단이 끝나지 않길 마음속으로 빌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숲 속 교실과 인디언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잠시 앉아 자작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려 내리는 나뭇잎 비를 기다릴 수도 있고 오롯한 바람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감고 잠시 마음의 시간을 멈추어도 좋다.






역시, 언제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흰색, 초록색, 밤색의 조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언제 와도 좋은 기운을 주는 곳이 있다. 계속 그 자리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와주는 곳, 여행을 하다 보면 내 마음을 뺏기는 그런 곳이 있다. 1년에 한 번, 아니 5년에 1번을 와도 삐치지 않고 조용히 내 옆에서 기다려 준다. 가끔 서운한 게 있으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서운함을 내비치고 다그치기도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을 걷다 보면 움츠렸던 마음의 감정들이 하나, 둘씩 튀어나와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춤을 춘다. 춤을 추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오늘은 버스 배차로  5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 있다는 설렘에 마음속의 텐션은 벌써부터 요동치고 있다.





오늘은, 숲 속 여행을 즐기기엔 최적의 날씨다.
올라오면, 숨을 크게 쉬고 잠시 앉아 소리를 들어보자.
나를 잠시 잊을 수 있는 곳, 그래서 걷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잠시, 자작나무 의자에 앉아 다음 코스를 위해 숨을 고르며 숲소리를 들었다. 지난번엔 여기서 멈췄지만 아직 더 걸을 수 있는 열정이 충분하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치유와 힐링코스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더 자연에 가까운 자작나무를 보는 재미가 있다. 갑자기 느껴지는 허기에 비탈길을 오르며 배낭에서 꺼낸 사과 8조각으로 수분을 보충했다. 얼마나 꿀맛인지. 치유 코스 중반쯤 걷다, 앞이 보이지 않아 길을 포기하고 내려왔다. 안쪽 숲길을 걸을 때 경고문구 '벌과 뱀 조심'이 계속 나왔기에 욕심부리지 않았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건, 설렘도 있지만 두렵기도 하다.
점점 깊이 들어 갈수록 흙냄새가 짙게 난다.





다시 전망대길로 올라갈 때 갑자기 환한 빛이 나무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언제부턴지 날씨는 '맑음'으로 변했다. 그 빛으로 자작나무는 더 환한 몸짓으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그 모습 그대로 웃고 있었는데 앞만 보고 걷다 보니 모르고 있었다. 보는 내 마음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여기 살고 있는 나무들은 따뜻함에 더 좋았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있는 계단을 오르면 쉼터도 있고 1년 후 받는 편지 '스토리(story) 우체통'이 있다. 자작나무를 닮아 '흰 우체통인가.' 나도 모르게 엽서를 들고 의자에 앉아 '나에게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내용은 잘 살아보자는 시시콜콜한 얘기다. 1년 후 도착할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벌써부터 내 삶이 이 엽서 한 장으로 그 후가 궁금해진다.





1년 후 받는 편지, 우체통에 쏙 넣었다. 나한테 배달될 엽서를. 





내려오는 길은 반대인 임정원도로 걸었다.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고르게 잘 정비가 됐지만 흙과 돌, 비탈길로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아침에 올라갈 때는 안개로 앞이 잘 안 보일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날씨가 맑아 푸른 하늘에 구름, 흙, 나무의 어울림에 흠뻑 빠져 힘든지도 모르고 걸었다. 가까운 동네 뒷산을 내려가듯 여기저기를 보며 오랜만에 여유롭게 걸었다. 


위에서 보는 풍광은 날씨가 더해져 경비행기를 타고 여기를 날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타보지도 못 했는데 갑자기 가볍게 날아 이곳을 담고 싶다. 아래는 자작나무가 있었지만 위에는 아직 소나무들이 많이 남아있다. 훌쩍 큰 소나무들도 함께 공존하는 곳, 걸을수록 여러 갈래 길이 나오기에 잠깐씩 사진만 찍고 떠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구석구석 걷고 잠시 눈도 감고, 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들으며 나를 잠시나마 온전히 쉬게 하고 싶은데 버스시간에 재촉하는 발걸음이 아쉽다. 하지만, 또 오면 되지. 눈 오는 날, 다시 한번 올게. 아직도 흔들리는 자작나무 소리가 내 귓가에 머물러 소리를 전한다. 






내려올때 쯤, 날이 정말이지 감쪽같이 갰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설악산이겠지. 정말 너라는 산은 어딜 가도 있구나.

여행 TIP! 대중교통 이용 시, 터미널에서 마을버스 이용 가능 시간을 체크 후 입산 안내를 확인한다.

걷는 TIP!! 적당한 산행길로 등산화는 필수다. 가볍게 간식거리와 물도 챙기면 좋다.

YOUR 미션!!! 1년 후에 받는 편지 '스토리 우체통'에 나에게도 좋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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