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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Oct 04. 2021

천년고찰, 그리움을 품은 '낙산사'를 찾아서

[길에서 길을 묻다]


관광안내센터(i) - 낙산사 홍예문 - 의상대 - 홍련암 - 보타전 - 해수관음상 - 원통문 



양양 터미널에 내리니, 먹구름이 한가득이다.




여름 막바지부터 계속 내린 비는 9월 초에도 일주일의 3,4일은 멈추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온다하늘이 어디 탈이라도 난 건가여름 내내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지금이다.' 하며 그동안의 더위를 식히는 것인지 요즘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내 마음도 다시 오르락 내리락이다맑은 하늘을 언제 봤는지 모르겠다어딜 가도 숨쉬기가 마땅치 않은데 비까지 오니 괜스레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오늘 오후도 비예보로 벌써부터 갑갑한 마음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계속 핸드폰으로 새벽부터 날씨를 확인하며 아직은 비가 내리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서둘러 집을 출발했다시간 내서 '한번 가봐야지.' 했던 양양 낙산사는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린다. 가는 길에 웬일인지이른 아침부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비 오는데 어딜 가빨리 다녀와.' 하는 잔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그래후딱 다녀오자





낙산사 올라가는길





오전 9시쯤 버스에서 내렸는데 벌써부터 보슬비가 내린다. 정말이지, 일기예보를 신뢰할 수가 없다. 

괜히 왔나 싶었지만 이왕 온 거, 부러 비옷까지 입었는데 걸어보기로 했다. 정류장 맞은편에 관광안내센터(i)가 있어 잠시 들어가 책자를 챙겼다. 강원도 지역 책자 한 권을 추천해 주셨는데 내용은 아직 보지 않았지만 '이런 좋은 책자가 있었나' 싶다. 규모도 큰 센터에는 다양한 여행정보가 있어 들러볼 만하다. 제법 두툼한 이 관광책자가 맘에 들었다. 






양양 종합 관광안내센터, 강원도 지역 관광안내책자가 많이 있다.





양양에 있는 '낙산사'는 속초여행 오면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인데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한 동네가 됐다. 예전의 일주문은 차량 통행만 가능했고 그 옆으로 새로운 길이 생겼다. 소나무를 따라 비탈길을 올라간다.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산책로를 걸으며 새로워진 길에는 소나무마다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누가' 이 소나무를 심었는지 올라가는 내내 이름을 보며 나는 어디를 온 건지. 첫 시작인 이 길은  '꿈이 시작되는 길'이다. '누구의 꿈이 시작될까' 하는 내 자아가 올라가는 내내 반문을 하지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꿈이 시작되는 길
첫 관문인 홍예문





2005년 3월 봄, 화재로 복원이 된 지금의 낙산사는 걷는 내내 그 전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화재 후 몇 해가 지나고 갔을 때는 아직도 그을린 잔재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길이 생겨 미로를 걷는 듯했다. 나만 느끼는 건가. '사찰'이라 함은 그 안에서 주는 무언의 경건과 소위 말하는 불심이 '불자'가 아니라도 뿜어져 나오는 게 있는데 그때의 그 느낌은 나지 않았다. 






홍련암 가는길
바다가 있는 낙산사는 길이 참 좋다





비가 계속 내려  제일 보고 싶었던 '홍련암'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홍련암은 비가 많이 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빨리 걸어갔다. 이곳은 몇 번의 화재에도 피해가 없던 신성한 곳으로 바로 그 옆까지 소실됐지만 굳건히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릴 수도 있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촛불도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바다가 아름답게 보여 잠시 서서 바다를 보며 숨을 크게 쉬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어 본다. 비가 내리지만 가라앉았던 기분은 다시금 좋아졌다. 


적당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함께 왔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가족들과도 여러 번 오고 , 친구들, 회사 워크숍에서도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오랜만에 오니 더 새로웠던 걸까. 10년도 더 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저 멀리 홍련암이 보인다. 소나무, 바위, 바다, 그리고 작은 암자.
사찰 곳곳에는 '소원의 띠'가 있다. 오늘은 소원을 비는 날인가보다. 1년의 소원을 다 빌어보자.
인위적이지 않는 '여기'가 좋다.





의상대를 지나니 익숙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였다. 그 소나무 아래에는 '길에서 길을 묻다' 글이 새겨져 있다. 2007년에 쓰인 이 글귀는 친구와 왔을 때 한참을 보고 또 봤던 글인데 잊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지 않았다면 지나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너는 이 자리에 있었구나. 


그때 이 글귀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서서 사진을 찍고 앉아서 눈을 마주치며 찍었는데 지금은 한참을 서서 보고 생각한다. 그래, 벌써 15년이 흘렀구나.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때의 감정은 '정말 멋진 말'이라며 친구와 얘기를 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나지만 이제는 이 글귀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이가 됐다. 






길에서 길을 문다, 누구 한테 물으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 관음전 앞엔 연꽃이 가득 피었다. 촉촉이 내리는 비에 젖은 연꽃과 잎은 더 초록색으로 빛났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작은 돌상에 던진 동전은 3번 만에 성공했다. 이제는 내 운도 좋을까. 별 것 아니지만 가끔씩 행운의 동전이 들어가면 괜한 운을 기대하게 된다. 보타전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해수관음상'을 향해 더 위로 올라갔다. 비는 거의 그쳐 가고 높이 오를수록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연꽃이 참 소담스럽게 올라와 있다.
다니는 길마다 소원을 비는 곳이 많다. 빠지지 않고 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상인 남해 보리암강화 보문사 그리고 이곳 양양 낙산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바다를 품고 있어 어느 곳에 가도 아름답다. '어느 곳이 제일 좋나'물어본다면 답하긴 어렵다저마다의 매력이 있고 품어져 나오는 냄새도 다르기에 직접 가서 느껴보라고 싶다온전히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오늘은 여기가 좋다.






해수관음상을 보기 위해 이제 올라가 볼까. 
소나무들은 흐린날씨에도 그 기세가 꺽이지 않는다.
저 멀리 그리움을 품고 있는 관음상이 보인다.





낙산사의 상징인 '해수관음상'에 도착했다. 사찰 내 곳곳에는 '코로나를 함께 이겨내자'는 문구와 함께 '소원의 띠'가 많이 있었는데 여기는 몇 배가 더 있어 놀랬다. 초연히 바다를 바라보는 관음상이 그리워 왔는데 둘러싸인 띠들에 좀 속상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타닥타닥' 부딪히는 소리에 마음이 더 혼란스럽다. 바람소리는 좋은데 펄럭이는 띠들도 저마다 근심을 날려버려 소원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소란한 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관음상 앞에서 잠시 서 있다 둘레를 두 바퀴 돌았다. 앞도 보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며 바람과 함께 걸었다. 비가 온 후 부는 바람은 깔끔했다. 더군다나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이니, 청량감은 덤이다. 이곳도 더불어 사는 곳이기는 하나 그래도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곳이기도 하다. 변화보다는 덤덤히 나를 맞이해주고 보듬어 주면 좋겠는데 그 마음들이 조금씩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관음상이 이렇게 작았나' 하는 생각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올라가면 큰 어른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는데, 지금은 한 없이 작아 보이니 말이다. 






걷다 보니, 비가 멈췄다. 아직은 먹구름이 관음상을 안고 있다. 
소원의 띠는 낙산사의 상징이 된건가. 해수관음상이 작아 보인다.
펄럭이는 이 소원들은 언제 이루어 질까.  





아쉬움을 품고, 마지막 길인 '꿈이 이루어지는 길'로 걸었다. 첫 발걸음이 '꿈이 시작되는 길'이었다면 끝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나의 꿈은 이제야 이루어지는 건가'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스쳐 지나가는 말하나에도 의미를 두며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 길들에 이름이 부여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걷는 내내 투덜거리며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고 있었다. 


긴 소원 돌탑길이 끝나면 비로소 이제 '원통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길을 지나면 꿈이 이루어진다니, 아직도 남은 나의 꿈을 위해 몇 번을 뒤돌아 걷고 또 걸었다. 낙산사에서도 마음의 업다운은 있었지만 아마도 오랜만에 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화마로 조금씩 변한 모습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비가 내려 홍련암에서 시작된 첫 발걸음이 다시 홍예문으로 나올 때는 중간중간의 무거운 감정들이 한결 가벼워졌다.





걷는내내 얼마나 많은 소원을 빌었는지 모르겠다
이 길만 통과하면, 오늘 빈 모든 소원은 이루어 질까.





'길에서 길을 묻다'가 주는 울림처럼, 지금의 모습으로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아직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그 답을 천천히 찾으면 된다. 사람은 모든 것에 때가 있다고 하니 나도 '그때'가 이제는 멀지 않았음에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것이다.





낙산 해변은 변함이 없다.



걷는 Tip! 낙산 주차장과 해변양방향 진입이 가능하다위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YOUR 미션!! 낙산사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 ' 대한 생각들이 많아진다잠시 잊고 지냈던 정말 '나의 '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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