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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Sep 27. 2021

'하슬라 아트 월드 뮤지엄' 그리고 그 옆 '정동진역'

[정동진은 나의 그리움이다]

하슬라 아트 뮤지엄(조각공원/현대미술관/피노키오관) - 정동진역 - 강릉역



엄마와 아기코끼리, 어디를 가고 있을까





흐린 날 오전, 강릉행 버스를 탔다. '비가 오지 않겠지' 지난번 동해 여행을 갔다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돌아오는 길, '정동진역'을 지나다 보니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정동진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에 우산을 챙겨 버스를 탔다. 속초에서 1시간 걸려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정동진행'버스를 타기 위해 남대천으로 이동했다. 정류장에 앉아 주민분들과 45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하슬라 뮤지엄'이다.





무심코 뒤를 돌아다보면 내가 지나 온 길이 보인다.





흐린 날씨지만 왼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역시 좋다. 정류장에 내려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큰 곰을 만난다. 무섭기보다는 귀엽다. 미리 예약한 티켓을 찾기 위해 먼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 조각공원을 가려는데 막혀있어 다시 들어가 확인하니 "'나가는 문'에서 표를 찍고 들어가시면 됩니다."라는 황당한 안내를 받고 막상 찍으니 '삑'소리를 내며 통과가 됐다. 아니, 그럼 문구를 변경하거나 미리 공지를 해야지, 시작부터 삐꺽했다. 


2003년도부터 조성이 됐다는 하슬라 안내문을 찾고 잠시 눈을 감았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친구와 정동진에 올 때마다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는데 그때 '하슬라 뮤지엄'이 '동명락가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세워졌다. 아마도, 오픈하고 몇 달 되지 않은 따끈따끈 할 때 처음 이곳에 찾아왔을 것이다. 그때도 계속 나무를 심었 작품들은 몇 개 없는 큰 돌들이 많았던 공원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도 통일된 느낌으로 동해바다를 정원삼아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뮤지엄'으로 변신했다


처음 친구와 왔을 때는 사방이 탁 트인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맞닿아  '천국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을 만큼 첫눈에 반한 곳이다.





여기는 나뭇가지 하나도  작품이 된다.





오후 비예보로, 야외 '조각공원' 관람을 먼저 시작했다. 곳곳의 작품들과 함께 소나무 정원도 있고 해시계도 있어 발품을 부지런히 해야 꼼꼼히 볼 수 있다. 3만 평이 넘어 2시간을 보아도 부족할 만큼 상당한 운동량이 소모된다. 끝인가 하면 다시 나를 반기고 가끔씩은 쉬어가라며 의자들도 있어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하슬라'가 나쁘지 않다. 가끔씩 알록달록한 건물을 보며 '무채색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오히려 포인트가 되는 어울림이 제법 우아하다. 


오늘은 강릉에 오랜만에 오는 새언니와 함께 동행했다. 날씨가 좋았으면 했지만 그래도 이 멋진 곳을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하다. 예술은 내가 보는 대로 느끼면 되니까, 내 마음속에 있던 천국을 다시 한번  경험해 볼까.





나무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알록달록함이 포인트다.





'천국의 계단'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 들어섰다. 이곳 최대의 장점은 '바다'. 만약, 배경이 바다가 아니고 숲 속이라면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시작부터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다. 첫 만남철근으로 꾸며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작품이었다. 특히, 유리와 만나니 그 빛은 생동감으로 넘쳤다. 뜨거운 햇볕이 없는 날인데도 자연광으로 인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철 파이프'가 주는 차가움의 은은함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걷는 내내 이 첫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최대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으로 걸어가며 바다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이 뮤지엄을 다니다 보면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에 대한 해설은 거의 없다. 현대 미술관에도 작품명과 작가명이 간혹 있을 뿐 코멘트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뭘 상상하든 초현실주의가 가능하고 나만의 미술관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랜선 여행이 부쩍 늘어 어디를 가자고 해도 서로의 부담감이 있어 말하기 꺼려지는데 오늘은 동행자가 있으니 지금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체감의 행복은 이미 마음 가득 올라왔다.





강원도는 이 구비구비 길이 어딜 가도 이어져있다. 이 데자뷔는 언제 보아도 멋지다.
내가 생각하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여기가 제일 맘에 들었다. 잠시 작품을 감상해 볼까.
차가운 철이 바다와 나무와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으로 본 새로운 풍경이다. 어디에 또 이런 곳이 있을까. 사진으로는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차분히 바라보니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져 있다. 어딘가 나를 닮은 구석이 있다.  





소나무 정원과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며 마지막으로 저기 '웅덩이'를 보자며 내려간 곳은 나중에 알고 보니 최영옥 작가의 '해시계'였다. 처음 접하는 '대지미술'도 생소하지만 자연과 조화된 무한한 예술적 추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주 오름 정상에 서 있는 듯했는데 아래를 보니 큰 파이프가 있어 계단을 내려갔다. 힘들어 안 갈까 했었는데 어떤 부녀가 먼저 내려가서 "와아~!" 하는 소리에 바로 실천했다. 참 재밌는 곳이다. 어떻게 둥근 철 파이프로 이런 다양한 해석을 풀어냈는지 감탄이 마지막엔 나올 수밖에 없다. 빛과 자연, 재료인 철 파이프,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벽한 예술이 탄생했다. 예술을 모르는 나로서도 다른 영감이 떠오를 정도로 꿈틀거리던 에너지가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춤을 추고 있다.  






해시계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
꼭 안을 들어가봐야,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 진짜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쉼도 할 수 있고 풀밭에 앉아 벌레들과 얘기도 할 수 있다.





2시가 훌쩍 지난 늦은 점심은, 사치스럽게 바다를 보며 커피 한잔과 피자,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었다. 혼자라면 간단히 먹는데 오랜만의 동행이라 가끔씩은 이런 즐거움도 있어야지. 비가 내리는 창문을 보니 여행 온 기분에 흠뻑 더 졌어 들었다. 식사 후, 다음 코스인 내부의 현대미술을 관람했다. 강렬한 색과의 만남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어디든 작품의 무대가 되는 독창적인 시선으로 어떠한 틀에도 구애받지 않는 말 그대로인 현대미술을 만났다. 갑자기 여기 작가의 세계관이 궁금해졌다. 예술은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 아마도  평범함보다는 복잡한 사고로 이 시간들도 지나고 있겠지.






늦은 점심, 브런치로 근사하게 바다보며 커피한잔!
전체적인 조화가 다니는 내내 편했다.
강렬함에 내 눈까지 붉게 되는건 아닐까.
의미보다는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게 중요하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이 기분들은 뭘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산다.

이 감정들을 끌어내기 위해 선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나도 이런 사고를 갖고 싶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위, 아래, 옆, 때론 불쑥 튀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상처도 나고 아물기도 하는 시끌벅적한 감정을 갖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글을 쓰고 싶다.






현대미술은 작품의 주제, 재료, 장소 어는 것하나 꾸며짐 없이 자유롭다.





마지막 '피노키오관'을 끝으로 '심곡 부채길'을 걷기 위해 부지런히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걷지는 못 할 것 같다. 아쉽지만 콜택시를 불러 바로 정동진역으로 갔다. 오후 5시 54분 강릉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 넘게 남았다. 


계획대로 된다면 진정한 여행이 아닌 걸까. 저녁부터 내린다는 비는 이른 오후부터 내리더니 지금은 폭우가 쏟아진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그리움을 가득 품고 있는 정동진역은 비가 내리니 더 좋다. 둘만 있는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로 된 대합실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었다. 이런 호사를 언제 누리겠는가. 비가 오는데 바로 앞은 바다가 있는 이곳이 내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언니는 이 멋진 역에서 비 구경도 좋다며 급하지 않는 여유로운 여행에 만족했다. 같이 온 보람이 있다. 아쉽지만 날씨 좋을 때 '부채길'은 다시 걸어야겠다. 오래전 심곡항에서 정식 유람선도 아닌, 고깃배를 타고 한 겨울 새우깡을 뿌리며 기러기들과 만났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여행은 떠났을 때 몇 배로 다가오는 낯선 곳의 우연함, 설렘과 그리움, 기쁨이 공존한다. 첫 여행지가 아직도 생각나고, 어디를 가든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때가 제일 좋았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지금이 좋다. 여기의 감정도 내 여행 목록에 차곡차곡 저장되는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한순간 한순간이, 이제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정동진역' 지금, 아무도 없다.
'정동진'은  내 안에 그리움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역사 안, 대합실은 멋진 카페다.
'강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떠남엔 역시 여운이 남는다.






비 내리는'정동진'도 만나기 흔치 않다. 여행은 넘치는 것보다는 무언가 부족할 때, 아쉬움이 남을 때가 좋다. '잠시 후, 강릉행 열차가 도착합니다'라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은 내 마음을 벌써부터 설레게 한다.






'하슬라'의 핫스폿, 간담이 서늘하지만 사진 한 장 찍었다.




여행 TIP! 강릉에서 정동진으로 갈 때, 기차를 타고 가면 바다도 보고 시간도 절약된다. 하슬라 아트 뮤지엄은 사진만 찍는 곳이 아닌 예술을 보고 느끼는 곳이다. 시간을 적어도 4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

YOUR 미션!! 동그라미 포토존에서 감성적인 사진을 찍어보자. 스릴 있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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