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역, 소담한 월화 거리(月花街)

[강릉 옛 거리 명주동 골목길]

by 지금도바다

강릉 터미널을 떠나기 전 시간이 남아 관광책자를 보니 새로운 낯선 거리가 있다. 옛 강릉역 자리에 보행자길'월화 거리'가 조성됐다. 핫플레이스라는 그 문구보다 '옛 기찻길'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그 철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낭만 감성을 자극시켰다.



월화거리의 시작



속초에서 6시 55분 첫차를 타고 도착해 신영극장 정류장에 내리니 바로 월화 거리의 출발점이다.

2KM 남짓인 거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른 아침이라 출근길과 겹쳐 정류장은 북적 거리지만 오랜만에 사람 구경하니 이것도 좋다.

도시 여행의 시작은 역시 패스트푸드다.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으로 충전 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WOLHWA STREET' '월화 거리' 다양한 표지판들이 있다



'월화'는 신라시대 김무월랑의 '월' 박연화 부인의 '화' 사랑이야기가 담긴 길이다.

말 나눔터 공원부터 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벽 출발로 무거웠던 몸이 바람을 타고 풍겨져 오는 꽃냄새에 머리가 맑아졌다. 폐철교를 따라 조성된 2.6KM의 산책로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옛 역 주변으로 철길 왼쪽은 아직도 개발이 되지 않아 기와집들이 남아있어 옛 모습의 거리를 보는 재미도 있다.



옛 강릉 기찻길이 있던 자리



걷는 길에는 감성을 수놓은 듯 글귀가 내 마음속을 벌써부터 녹인다. 잠시 앉아 커피 한잔을 해도 좋다.

때론 글을 보면 오히려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속초 사잇길을 걷듯 안정감에 글귀가 쏙쏙 눈에 들어왔다. 오전 10시가 되니 풍물시장의 상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연다. 건너편 중앙시장은 사람들로 요란한 소리를 낸다. 시장에서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보고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른쪽은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큰 시장이지만 왼쪽은 낡은 집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골목길이었다.

하지만 내 눈과 발은 벌써 그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말이 듣고 싶다



나는 여행할 때 골목길 걷는 걸 좋아한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표정, 가게, 살림집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가는 인생의 파노라마가 보인다.

내 삶과도 닮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가 걷는 동안 함께 하며 생각을 잠시 멈추고 집중하게 된다.

철길 옆 좁은 길, 구불한 길은 걸을수록 더 재미있다.

들어가면 끝일 것 같은데 다시 큰길이 나오고 다시 다른 길로 들어서 20분 넘게 신나게 걸었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여기쯤인가 해서 다시, 거리로 나왔더니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참 예쁘다.

좀 더 부풀리면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이 떠올랐다.

더 계단이 옆으로 둥글게 뻗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올라가며 '픽'웃음이 나왔다.

뜬금없이 로마라니, 배낭여행의 추억이 소환됐다.

그 계단에 앉아 달달한 초코 젤라토를 먹었는데 언제 다시 갈 수나 있을지.

계단은 바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걸을 수 있다.

어렸을 때 했던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오르내렸던 게임도 생각나고 '땅따먹기'놀이도 떠올랐다.

어느덧 나도 그 리듬에 맞춰 추억의 길을 걷고 있다.



높이 오르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확 트인 시내 전망이 보이고 뒤로는 남대천과 사이에 길게 뻗은 도로가 꽤 운치 있다.

남대천을 이어주는 월화교는 중간에 유리로 되어 있어 스릴은 덤이다.

입장료도 없는데 바닥이 유리라니, 곳곳에 재미도 숨어 있다.

아래 남대천은 가끔 걷거나 차로 지나쳤던 곳인데 위에서 보니 '강릉 시내'가 참 아름답다.

저녁에 야경을 봐도 참 좋은 공간이다.

다리를 건널 때 먹구름에 가렸던 해가 가는 길을 밝혀주듯 쨍쨍하게 높이 올랐다. 이제 더 가볍게 걷자.



걷다보니, 날씨가 좋아졌다



다리를 지나면 철길 사이로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나란히 있다.

쭉쭉 걸어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다.

걸을수록 점점 더 옛 모습이 나온다.

저기 보이는 터널로 들어가면 과거로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기차를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언제로 갈까.

나는 엄마와 함께 했던 남아 있는 몇 개의 퍼즐 조각 같은 순간과 내 찬란했던 20대로 가고 싶다.

그때가 지금, 격하게 보고 싶고 그립다.

철부지처럼 걱정이 없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유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좋았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엄마를 만나고 싶다. 이제는 희미함만 남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젊은 모습이 남아있다



터널을 지나 더 걸으면 길의 마지막인 부흥마을이다.

다시 유턴해 과거로의 여행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명주길을 향했다.

명주 거리는 남대천에서 20분 정도 걷는다. 가구골목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시나미 명주'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시나미''천천히, 느리게'를 뜻하는 강릉 사투리다.

이 길은 걷다 보면 왜 천천히 걸어야 하는지 보인다. 빠르게 지나치다 보면 보지 못하고 스치는 길이 있어 다시 그 골목을 걷게 되고 또 걷게 된다. 지도에 있는 몇 곳을 찾다 보니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다.

초입엔 카페가 있고 걷다 보면 작은 그림부터 무지개 벽화까지 다양하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옛 골목길에서 체험도 하고 공연도 어우러지는 곳인데 지금은 대부분 멈춰있다.



명주길은 천천히 걸어야 그 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밀의 화원'이라는 홍제동을 가기 위해 다시 길을 걷다 너무 태양도 뜨거워 입구에서 조금만 오르다 멈췄다. 막상 도착한 홍제동은 아파트가 서 있고 별다른 설명이 없어 다니기 불편했다.

아마 이정표가 있었다면 더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긴 하다.

아침에 도착해 쉬지 않고 6시간을 넘게 돌아다녔는데 오랜만의 도시 여행이라 힘든지 몰랐다.

강릉의 유명 여행지도 좋지만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이 길들도 다시 보인다.

언제부터 걷기 좋은 길이었던가.

고향은 서울이지만 마치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처럼 애착이 가는 도시다.

그만큼 많이 찾았던 강릉인데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났다.

다음에 이 길을 걸을 땐 누군가와 손잡고 걸어보고 싶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함께 즐기고 싶다.



화창한 날, 강릉을 다시 한번 걷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