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조급함 너머에서 드는 생각들
20대의 나는 성경의 시편 139편을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좋아한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불안하고 막막한 삶을 이겨낼 힘이 필요했다.
나의 적성이 무엇인지, 어떤 곳에 취직해야 하는지 고민과 씨름을 거듭하던 시기였고, 스물 넷에 전역하고 나서 스물 여덟의 끄트머리에 취직에 성공하기까지, 마치 길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취직이 확정되었을 때, 기쁘고 행복한 마음보다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이 터널이 끝난다는 감사, 30대 중반까지 취직이 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막연히 상상하며 들었던 막막함이 현실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
그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내게 크게 와닿았던 성경 구절은 시편 139편, 시편 23편이었던 것 같다.
139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절 주님, 주님께서는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절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절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절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내 생각을 다 아신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큰 위로였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얼마나 간절했는지. 주님은 이미 다 아시는구나.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구나. 사실 고시 공부나 취업 준비 과정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고시 합격, 취업 성공 말고는 어디 나가서 내가 이렇게 노력했고,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다고 제시할 만한 것이 없다. 그저 시간만 흐르고, 나이만 드는 시기다. 아무런 눈에 보이는 결과도 없이. 그것이 사람을 정말 피말리게 한다. 20대라는 빛나고 소중한 시간을 낮에는 신림동 강의실, 밤에는 독서실 골방에 틀어박혀 보내고 있는데, 이 시간이 내가 만족할 만큼 혹은 세상이 인정할 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순간.
수많은 경쟁자들과 함께 강의실과 독서실을 오가면서, 때로는 함께 밥도 먹고 스터디도 하면서도, '이 중에서 합격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라는 고민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을 괴롭게 하던 시간. 이런 과정 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데, 그 마음을 주님이 “알아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5절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절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7절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8절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 내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절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10절 거기에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은 나와 함께해주셨다. 이 구절을 읽으면 백령도에서 군 생활하던 시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운전병이었던 나는 수송반 선배들과 차량 관련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백령도에서 막 공군 부대를 창설해 운용하던 우리 부대가 첫 겨울을 맞이했을 때, 난방 연료가 부족했다. 옆 동네 해병대 부대로 탱크로리를 몰고 가서 연료를 받아왔고, 누군가는 부대 연료저장소 꼭대기에 올라가 뚜껑을 열고 주유캡으로 연료를 옮겨 담아야 했다. 나는 막내였고, 30분 가량 그 주유캡을 들고 있었다.
한겨울이었고, 눈이 오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사다리는 미끄러웠고, 선배들은 차량 옆이나 사무실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조용히 부대 뒤편에서 주유캡을 꽉 쥐고 주님을 찾았던 것 같다. 그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했고, 몸도 마음도 춥고 힘들던 그 순간 큰 위로를 받았다.
그때도 나는 시편 139편을 좋아했고, 그날 이후로 139편을 다시 읽으면 백령도 눈 내리는 겨울날 유류 탱크 위에 홀로 서 있던 나의 앞뒤를 감싸주시고 손을 얹어주신 주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굴을 때리던 겨울바람도 생생하지만, 동시에 나의 삶을 붙들어주시던 주님의 강렬한 손길도 기억난다. 이 말씀은 고시 공부라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순간에도 나를 붙들어주었다.
11절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절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13절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절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절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절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절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절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내 삶이 막막하고 깜깜하게 느껴져도, 이미 나의 삶을 계획하고 인도하고 계신 주님의 섭리를 떠올리면 마음에 잠잠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20대를 버텨왔고, 이제 나는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입사 5년차 대리다.
30대가 된 나는 더 이상 밥벌이를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막연히 공공기관의 근무 환경은 워라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기관은 10년 연속 경영평가 최고등급을 받는 기관이었다. 이런 결과는 사람을 갈아 넣으며 최선을 다해온 선배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고 그 대열에 합류한 나도 정말 치열하게 일하며 살아왔다.
고만고만한 밥벌이를 하며 저축하고 투자하며 살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는 똑똑하고 집안 좋은 동기들이 많다. 로스쿨을 가 김앤장 같은 10대 로펌에 들어간 친구들, 치과의사, 회계사가 된 친구들,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친구들도 여럿 있다.
나와 그 친구들의 사회적 계층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아마 부의 격차도 더 벌어질 것이다. 사는 지역, 집안의 살림살이, 2세들이 받는 교육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각자가 누리게 될 사회적 평판도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속한 조직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업무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치열하게 일하겠지만, 전문직 친구들의 부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말씀 구절이 필요했다. 나의 조급함과 불안함이 더 커지기 전에 그 근원을 찾고 싶었다. 그 근원은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이었다.
취업 준비 시절 사서 읽었던 김영봉 목사님의 책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에는 목사님의 겸손한 고백이 담긴 챕터가 많다. 그 중 소개된 시편 131편은 139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아주 짧다.
1절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2절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3절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지금부터는 김영봉 목사님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고자 한다. 내가 잊지 않기 위해, 또 독자도 이 좋은 글을 함께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문>
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경험한 후에 고백한 기도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1절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었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분수에 넘치는 생각과 행동을 말합니다. 신이 아니면서 신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교만과 오만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도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는 것" 혹은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을 말합니다. 다윗도 저처럼 결핍 의식으로 젊은 날을 살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그러한 분투를 멈추고 하나님의 품으로 향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신체적 질병 때문일 수도 있고, 관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결핍 의식을 가지고 분투했는데, 그 결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갈 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만족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만족과 안식을 얻고 나면, 그동안 살면서 뭔가가 결핍되었다고 느꼈던 것이 속임수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채워진 것을 감사하고 축하하고 나누고 기뻐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전과 같이 열심히 일하지만, 전과는 다른 목적으로, 전과는 다른 태도로 일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이어 갑니다.
2절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젖먹이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자주 보채고 웁니다. 하지만 젖 뗀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어머니의 품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평안을 누립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찾은 자신의 영혼이 바로 그렇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편을 읽는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3절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다윗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은 다른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고백을 한 후에도 다윗은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다만, 전에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제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자족하고 만족할 만한 영적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서두르거나 닦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해 가며 살아갑니다.
중략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결핍 의식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 땅에서 결핍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분노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우리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을 찾으십시다. 하나님의 품을 찾아 그분 안에서 만족하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에 눈뜨십시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문제는 그분을 떠나 우리 스스로 살아가려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결핍을 발견하고 그 결핍을 채우려는 무한의 허덕임에 빠지게 됩니다. 그 무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 안에서 만족과 안식과 위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 본문 끝 -
작은 성취감. 오늘 하루 운동을 끝냈다거나, 주짓수 수업을 듣고 나오며 “오늘도 나는 조금 더 강해졌다”고 느끼거나, 메일과 공문을 깔끔히 처리했다는 만족감. 이런 것이 나를 즐겁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나의 결핍을 다 채우지 못한다. 인간은 교만하고, 우리 마음에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멍은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비로소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한때 교회 친구들과 함께 하루동안 감사한 것 세 가지를 카톡방에 나누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 끝에서도 억지로 감사한 것을 찾다 보면, 주님이 내 삶에 얼마나 세심하고 깊이 개입하고 계셨는지 새삼 깨닫게 되고 마음이 감사로 충만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지금의 나도 감사한 것이 많다. 과분한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내가 사고친 것들을 늘 함께 수습해준 사무실 선배님들, 한파주의보와 대설경보가 내려진 뉴욕 맨해튼에서도 따뜻하게 쉴 수 있는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 내가 주님을 찾을 때마다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삶의 방향을 세밀히 잡아주시는 주님의 섬세하심에 감사한다.
사람은 죽을 때 자신이 이루어놓은 어느 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빈손으로 떠난다. 인간은 길어야 100년을 살고, 한 세대만 지나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두 세대가 지나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잠시 왔다 가는 존재이고,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과분한 것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경쟁자를 짓밟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안절부절하는 것이 인생인가? 그런 삶이 정말 행복을 줄까?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겠다. 이미 필요한 것을 다 주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신 주님께 감사할 것이고, 앞으로도 나의 삶을 인도해주실 주님께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