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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Mar 29. 2024

흔적(2)

지난날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

60여 년 전에 우리 가족이 살았다는 오수의 한마을로 갔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재직 중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 소설과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버지께서도 우여곡절 끝에 퇴직을 하시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이곳 오수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언니들은 그 당시 살던 집을 알아보았다. 둘째 언니가 가까이 가서 보자고 하니 큰언니는 물러선다. 이 집에서 셋방을 살며, 너무도 많은 고생과 서러움을 받아서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지난 일은 추억으로 남게  마련이건만, 옛 기억이 아직도 이리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에도 삭지 않은 큰언니의 아픔이 그대로 내게로 다. 오빠와 언니들이 마을을 돌아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생소하기만 하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극한의 어려운 삶을 함께 살아낸 오빠와 언니들은 남매 이자 동시대를 살아온 동지들이다.  



내내 궁금했던 일을 큰 언니에게 물었다. “나를 건져 낸 데가 어디 여?” 발걸음을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여기쯤 될 것 같은 데 없어진 것 같네.” 언니 말대로 주변 어디를 봐도 하천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시멘트 포장길과 가옥 몇 채와 밭으로 둘러져 있다. 아마도 그 하천은 복개되어 길이 된 것 같다. 물에 떠내려갔다 하니, 멀리 보이는 오수천 어디쯤인가 했는데, 마을 조그만 농수로 같은 곳이었나 보다. 그렇지, 그때 큰언니도 십 대에 불과한데, 큰 물이라면 구해 낼 수 있었겠는가.


큰언니가 전하는 이야기다.

내가 4살~5살 무렵, 헝겊 조각만 보이면 빨래한다고 냇가로 나갔단다. 늘 주의하고 지내는데, 잠시 안 보여 혹시나 하고 냇가로 나갔더니, 냇물에 뭔가 빨간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동동 떠내려 가고 있었다고. 급히 뛰어들어 건져 올리니 “푸우” 하더라는.  



    

오래전,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기억에 없으니 실감이 안 났다. 그 당시 있었다는 하천은 흔적마저 없어졌지만, 떠내려가는 내가 보이는 듯하다. 그동안 언니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둥, 살려냈으니 책임지라는 둥의 농담을 하곤 했지만 정작 진지하게 감사의 인사는 안 한 것 같다. “살려 줘서 고마워요” 이제 사,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넨다. 언니는 누구든 그리했을 것이라며, 그 일이 액땜이 되어 오히려 더 오래 잘 살 거라고 등을 토닥인다. 순간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에 위로받은 듯 가슴이 울컥한다. 살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죽을 목숨이었는데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큰 언니 덕분에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살아온 흔적을 찾고 삶을 돌아보는 이 일이, 큰언니의 저 깊은 아픔까지도 들여다보고 위로하며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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