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 달빛도 교교하다. 고즈넉한 시골 냇가에서 텀벙거리는 물소리가 정적을 깬다. 한편에서는 남자들이, 여기 큰 바위 쪽에서는 여자들이 물놀이를 한다.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물장구를 치며 유쾌한 환호성을 지른다. 놀기 좋은 장소를 남자들이 양보한 것 같다. 하기야 한 마을에 사는 친구이거나 친척들이니 무언 중 장소가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적,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아랫마을 후천 냇물로 수영을 배우러 갔다. 달 밝은 날을 맞춰 친구와 약속을 한 것이다. 부모님께서 길숙이 친구에게 수영을 배운다 하니 허락해 주셨다. 전기도 안들어오는 산골에서, 문화생활이라고 무엇하나 배울 수 있는 게 없으니 수영 경험이라도 해보라고 허락하신 것 같다. 후천리의 냇물은 홍곡리와 세심리 방향에서 흘러 들어온 지류가 만나 제법 큰 냇물을 이룬다. 이 냇물은 적성강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나간다. 수영을 하는 곳은 냇물이 마을을 끼고돌며 곡선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지점이다. 제법 물도 깊고 폭도 넓으나, 물살이 흐르지 않는 듯 순해서 밤마다 수영을 한다고 친구가 자랑을 했던 곳이다.
친구는 이 냇물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익숙한 냇물이긴 하나 그래도 어스름 달빛이라 조심스럽다.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냇가와 접한 마을길을 건너고, 크고 작은 돌들과 모래가 섞인 두둑을 지나니 작은 냇물이 가로막는다. 물이 얕은 곳으로 건너 큰 바위 위로 올라갔다. 냇물 가운데에 있는 큰 바위의 위엄은 달빛 아래에서도 당당하다. 바위 위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어두운 마을의 불빛이 아스라하다.
겉옷을 벗어 바위에 걸쳐 놓았다. 수영복이라고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속에 입고 왔었다. 살살 물속으로 들어가니 모래가 발을 간질인다. 사람 몸이 어떻게 물에 뜰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첫날은 물속에서 동동거리기만 할 뿐, 끝내 물에 뜨지 못한 채 친구집으로 자러 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물놀이까지 하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고 배도 꼬르륵거린다. 친구어머니께서 시원한 물을 떠다 미숫가루를 탄 음료를 주셨다. 끼니로 먹을 양식도 귀한 때에 곡식을 미숫가루로 만들어 간식을 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감사했다. 허기지던 차에, 얼마나 맛있던지 그냥 들이켜 한번에 마셨다.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더 주끄나?” 하신다. 얼른 마시던 미숫가루 주발을 내밀었다. 어머니께서 아예 미숫가루 음료통 째 주셨다. 그날 밤, 얼마나 곤하게 잤는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깰까 봐 살금살금 나왔다. 상큼한 아침공기에 심호흡이 저절로 나왔다. 신작로를 걷다가,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풀잎에 맺혔던 여름 이슬들이 튕겨 신발과 발목을 적셨다. 집 대문에 들어서니 아버지께서 마당에 나와 계셨다.
“으흠,”
아버지 헛기침에 지레 놀랐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나, 내가 늦게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침 일찌감치 오지 말고 해 뜨거든 오니라.”
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일해야 되는데 늦으면 야단맞을까 봐 더 자고 싶은 것도 참고 일찍 나서서 오는 길이었다. 어젯밤 놀기까지 했으니 오늘 더 열심히 일할 결심이었다. 친구는 친구대로 어머니께 지청구를 들었다고 한다. 정님이는 벌써 일어나 갔는데 너는 아직도 자느냐고. 참, 속 모르시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왜 ‘해 뜨거든 오니라’ 하신 건지 의문으로 남았었다. 세월이 좀 지나 생각해 보니, 과년한 딸이 이른 아침이슬을 쓸고 다니니 행여나 동네사람들 구설수에 오를까 염려를 하신 게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의 깊은 헤아림이셨다.
다음 날도 수영을 배우러 갔다. 달이 기울고 어두워서 더 할 수가 없을 때까지 며칠 갔던 것 같다.
“어휴, 답답 혀어. 야, 이렇게 물속에 머리를 박고, 걍 엎드려~"
"힘을 빼랑게, 그런다고 안 빠져 야~”
그러면 몸이 자연히 뜬다고,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은 내 등짝을 치며 수십 번을 반복해 말했다.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물속으로 꼬르륵 빠지고 물을 먹는데 어떻게 엎드리라는 것인지 나도 답답했다. 그래도 그사이 수영(?) 실력이 늘었다. 일단 몸이 물에 떴다. 점점 물에 대한 공포를 이기고 개헤엄과 개구리헤엄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것이 수영이라는 것이었다. 수영을 배우러 갈 때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친구어머니는 미숫가루에 감자, 옥수수도 삶아 주셨다. 어쩌면 수영보다도 그 맛에 더 반했는지도 모른다.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캠프를 가게 되었다. 캠핑에서 의례 하게 되는 것이 수영 프로그램이다. 학생들 체험용 수영장이니 깊은 곳이라고 해봐야 나의 가슴에 닿을 정도였다. 학생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후천에서 배운 대로 수영을 한번 해 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엎드리고, 몸의 힘을 빼고, 양팔을 젓고, 두 다리는 첨벙 대고.’ 굳이 영법이름을 붙인다면 평영이라고 할까... 시골 냇물에서 배운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숨이 차서 더 이상 헤엄칠 수 없을 때까지 첨벙 대다가 멈춰 섰다. 귀가 멍한 것이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아득하게 박수소리,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하, 왜 제자리에서만 허우적거려요.”
“왜 자꾸 오른쪽으로 가요, 하하.”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보니, 그리 열심히 갔는데 3~4m쯤 온 것 같다. 그것도 앞으로 직진도 아니고 오른쪽으로 비켜서. 내 달밤의 수영 실력은 그렇게 한바탕 유쾌한 웃음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래도 물에 뜨고 전진할 수 있는 것만도 가슴 벅차게 뿌듯했다.
무엇이든 어릴 적 해본 경험이 언젠가는 쓰임이 되어 돌아온다. 자신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었다.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이후 수영을 배우고자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사선으로 나가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았다. 더구나 속도도 나지 않으니 수영장 라인에서 다른 수강생들의 진로를 막게 되어, 라인을 잡고 한쪽으로 비켜주어야 했다. 나 자신에 대한 무기력과 남에게 민폐가 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이마가 물에 닿기만 하면 깨질 듯 아파왔다. 그야말로 머리를 물속에 박고 엎드려야 몸이 뜰 것인데. 어쩔 수 없이 수영 배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요즘 프랑스 올림픽에서 하는 수영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몸이 물과 일체가 되어있다. 물고기 꼬리가 노니는 것 같이 힘차고 우아하다. 생존수영 정도라도 배우고 싶던 것마저 포기한 나는 수영선수들에게 존경심을 듬뿍 담아 응원을 보낸다. 저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을지, 가히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이제는 무릎마저도 시원찮으니 수면에 이마를 대지 않고 할 수 있는 물속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