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경쟁심이란, 어떤 기준에서의 서열에 서기 위해 남을 짓밟으려는 경쟁심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경쟁심뿐 아니라, 긍정적 효과를 위한 경쟁의식을 갖는 것에도 좀 뒷전인 것 같기도 하다. 함께 하면 도움이 되고 동기부여가 더 되니 좋고, 거기서 상대가 더 좋은 결과를 낸다면 어쨌든 사회적으로 둘이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거니 좋은 거다 정도의 마음이다.
나는 내가 받아들일만한 이유 없이는 잘 행동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와 연결되어서인지, 어려서부터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굳이 1등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굳이 남을 이겨서 내게 실질적인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게 필요한 상품이 걸려있다던지, 그걸 못하면 내 인생의 중요한 것이 바뀐다던지...) 그걸 타기 위해 1등을 하려고 하겠지만, 세상에는 그럴만큼의 매력적인 보상이 많지 않다.
학교에서든 사회생활에서도, 등수에 들지 않으면 정말 안 되는 경우 제외하면 대략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했다.
그래서인가. 중학교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인상 깊고 그때 그 장면, 엄마의 목소리까지 기억난다.
"너는 조금만 악바리같이 하면 1등을 할 텐데 그런 게 없니."
맞다. 1등을 하면 좋은 이유가 내겐 없었다. 나는 그저 미대에 가려면 어느 정도 성적은 있어야 했다고 들어서 그 정도까지만 내 목표였다. 대략 열심히 공부하면 5등 안에는 드는데 그러면 되었다. 그리고 그 정도 등수에 들기 위해서는 그저 열심히 이해하고 달달 외우면 되었지, 옆 친구를 밟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1등을 하려면 뭔가 배배 꼬아놓은 문제까지 맞춰야 하는데 그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는 미대를 가기 어려운 학교에 다니게 되어서, 딱히 가고 싶은 학과가 없어진 나는 대학교 입학에 대한 목표를 잃었고, 단지 사회적으로 대학은 가야한다고 해서 대학 들어갈 만큼만 공부했기에 딱히 경쟁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대입에 내신이 필요 없었고, 그래서 수능 점수 대략 몇 점을 목표로 공부했지 옆 친구들이 라이벌인 적은 없었다. 그저 아무 데나 가면 되었고, 간다면 경영학과를 가고자 하였다. 광고디자인이라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마케팅 또한 디자인만큼 창의적인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였고, 경영학과는 아무 대학이나 다 있으니. 대학만 가면 돼. (사실 안 가도 돼...)
그래서인가,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스포츠도, 내가 참여하는 것은 내 몸이 뛰고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의의를 두어 즐기는 것이지, 보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굳이 다른 팀을 이길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승부욕 같은 것이 없거나 현저히 적다.
물욕도 거의 없어서, 요즈음 어디서 상품 걸고 이벤트해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서인가, 질투심도 없다!
내가 어떤 것에 질투를 느껴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하고, 아니 어떤 감정이 질투심이 뭔가 좀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 이렇게 보니 나 무슨 초월자거나 삶의 의욕상실자 같애.
그래서인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음의 상태를 잘 공유하는 편이다.
내 상태에 대해 남이 보지 말길 바라는 부끄러움이 있지만, 부족한 점을 보고 조언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에 다른이도 힘을 받아 계속하던걸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보를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이걸 보고 누군가 따라하기를 그리고 더 발전적인 무언가를 하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해서 굳이 내가 안 해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많은 이들이 해서 나는 이제 다른 새로운 것을 해도 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런데 나에겐 나만의 내게 적용하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 그 기준에못미치면 내놓지 못하는 편이다. 내 기준에서 만족하면 다른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건 괜찮은데 내 기준을 괜히(?) 내가 설정해 놓아서 세상 좀 힘들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은 기준을 좀 낮춰도 될 것 같은데 내리는 것에는 좀 ... 고통이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내려지기를.
어렸을 때, 많은 이들은 이와 다르게 자신이 하고 있는 과정을 알리지 않고, 그걸 끝내면 알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중간과정을 다 드러내는 내가 바보같았고 전략적으로 그런건 공유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공유하는데 시간과 에너지 드는데 그런 관점에선 자기 손해일 수도 있다. 공자님맹자님을 내가 짧게 이해한 바로도 여기저기 떠벌리지 말고 묵묵히 하다보면 세상이 알아준다고도 하였다.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뭐 있어보여야할지, 좀 무게는 없어보일지라도 남들이 날 보고 더 잘 하게 아이디어와 힘을 주는데 의의를 둘지에 대해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나 같은 사람 보면 매우 반갑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한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이렇게 했다고 보여주는 편이다. 이에 마치 사진 찍자고 할 때 내 얼굴 보일 때의 부끄러움과 비슷한 부끄러움이 있지만, 나 이거 완벽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과정을 말로 설명하곤 한다.
기준을 다르게 만들면 등수도 달라진다.
등수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누군가가 만든 것이고, 나는 어떤 제도를 시행하는데에 그 기준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걸 따르는 입장일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이 시대에 사회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했다.
좀 다른 기준의 사회에서 살았더라면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었겠지. 우리들 모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어렸을 때에는 그래, 좀 사회를 알아가기 위해 그 틀에 좀 맞춰 살아줬지만
이젠 안 그래도 되니 성인이 되어 좋은 여러가지 이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마음껏(물론 또다른 제약이 있지만) 그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보며, 아 저런 기준을 세웠구나 하고 유심히 보기는 한다만, 굳이 그 서열에서 상위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매우 적어졌다. 그리고 어떤 기준이 있는 일에는 되도록 참여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하려면 벌써 머리부터 아프고 한숨부터 나옴.
그리고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성인들,
아니 십대 이십대,아니... 어린이들에게
기준은 우리 모두 잘 살기 위해 누군가가 잠깐 만든 것뿐이야. 거기에서 1등이 되는 건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 중에 잠시 몇 사람일 뿐이야.
우리는 다른 기준에서 또 필요한 사람들이고, 기준이 없는 어떠한 곳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최고의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야.
여기에 우리 각각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기준이 있어.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느라 경쟁하고 힘쓰지 말고, 자기 자신에 집중해.
라고 말해보고 싶다.
돌고 도는 에너지
이는 이 세상은 하나라는 관점과 맞물려 있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순환하고, 자원도 정신세계의 어떤 것도, 무형적인 것도 유형적인 것도 모든 에너지는 순환한다. 지금 내가 주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받고, 어떠한 기준에서 서열 1등이었어도 기준이 달라지면 서열은 바뀐다.
그니까 괜히 허무한 경쟁하고 나중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지말고 굳이 경쟁하고 싶으면 자신이 기준을 만들어 자신과 경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