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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ul 05. 2021

센과 치히로와 얼굴없는 악마의 정체

Spirited Away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남의 음식을 탐한 부모가 돼지로 변하고, 버려진 유원지에 어둠이 깔리면서 치히로의 모험이 시작된다. 아름답고 알록달록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시작부터 의미심장하다. 마치 욕심에 사로잡힌 부모를 둔 아이는 악령들의 세계에 무방비로 놓이게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온 치히로는 또래 남자아이 하쿠를 만나고 한 온천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실 이 온천은 유곽 또는 성매매 업소를 의미한다는 것을 여러가지 상징으로 알 수 있다. 손님들을 여러가지 형태의 요괴로 설정하고 종업원들도 개구리, 물고기 등 귀여운 캐릭터들로 그려 동화적인 느낌을 주지만 결국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며 가슴골이 보이는 기모노입은 여자들로부터 목욕시중을 받는 곳이다. 잠깐씩 등장하는 문을 통해 비치는 기괴한 방안의 풍경도 같은 암시를 준다.




그렇게 유곽에서 일을 하게 된 치히로에게 선택의 순간이 닥친다. 손님들 틈에 섞여 들어온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의 시험이다. 가오나시는 치히로가 목욕 약재 팻말을 필요로 할 때 구하기 힘든 갖가지 팻말을 내밀며 유혹한다. 언뜻 보면 참 마음씨 좋은 손님이 따로 없다. 하지만 치히로는 이렇게 많이는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어 가오나시의 선물(?)을 거절한다. 치히로의 거절에 실망한 가오나시는 모두가 좋아하는 금을 점원 개구리에게 내밀어 유혹하고 개구리는 욕심에 따라 가오나시가 내민 금을 덥썩 받는다. 그러자 가오나시는 ‘공짜 금’을 거절하지 않은 개구리를 잡아먹어 버린다. 유곽의 다른 직원들도 가오나시의 금 앞에서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여럿이 잡혀먹힌다. 자기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욕심에 스스로가 잡혀먹힌 꼴이다.




어쩌면 얼굴도 없는 가오나시는 그 어떤 뿔달린 사탄이나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정확하게 그 욕심을 역이용해 잔인하게 배를 채운다. 힘세고 돈 많고 마법까지 부리는 가오나시, 당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는 ‘통큰 손님’이며 ‘독지가’이며 ‘능력자’이다. 사람이 잡혀먹히는 것을 보기 전까지 유곽의 모든 직원들이 노래까지 지어 가오나시를 찬양하고 모두 엎드려 가오나시의 은총을 비는 모습은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기복신앙’을 닮았다. (교회는 욕심을 없애달라고 빌어야지 이뤄달라고 빌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탄 끝판왕인 가오나시도 치히로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치히로는 자신이 꼭 필요하지 않은 팻말이나 금덩이 따위는 거부할 줄 알기 때문이다. 부모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귀할멈 유곽대표 유바바 밑에서 일하면서도 최선을 다했고, 부모에 대한, 그리고 하쿠에 대한 ‘사랑’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혹할 수 없는 맑은 상대 치히로 앞에만 서면 가오나시는 계속 작아지고 결국엔 애완견 비슷한 무해한 상태가 된다. 인생에서 우리가 만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사탄이나 악마의 정체와 약점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어쩌면 가오나시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사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래서 얼굴이 없는지도.)




결국 치히로는 가오나시의 시험을 이겨내고 ‘사랑의 힘’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모든 등장인물의 마음을 사게 되고 그들의 도움으로 부모님을 구해낸다. 요괴도, 마귀할멈도, 유곽의 창녀들과 직원들도 모두 ‘양심’이란 걸 가지고 있는 신의 피조물이며, 그 양심을 감동시키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는 사탄마귀도 아무런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그래서 욕심에 빠져 돼지가 된 부모마저 구해낼 수 있다는 세상의 비밀을 품고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리고 정체를 드러낸 사탄마귀 ‘가오나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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