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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Mar 06. 2023

살인 양의 모험

#앤솔로진 2301호 투고글

언젠가 한 번은 아무 생각 없이 타이핑 가는 대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는데 에세이 글감이 잡히지 않아 이번에 해 봤습니다.



“양 게임에 참가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2시 정각에 게임이 시작되니 캡슐 안에서 대기하십시오.”


거리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 메아리처럼 방송이 울렸다. 양 게임 참가자는 24,889명. 장소는 파주출판도시. 참가자들 저마다의 서글픈 사연들은 뒤로하자. 이제 곧 DEAD OR ALIVE의 규칙만이 존재하는 전쟁이 시작된다.


양 게임은 출판도시 1, 2단지 전역에 날뛰며 돌아다니는 5만 마리의 살인 양들로부터 살아남는 게임이다. 1호부터 24889호까지 참가자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도구를 이용해 살인 양에 대응해야 한다. 도망가든 맞서 싸우든 연합해서 양들과 전쟁을 치르든 방식은 자유다.


스튜디오에서 안내 방송을 마친 갈테는 24:00에서 멈춰 있는 카운트다운 시계와 11:49로 표시된 현재 시각을 번갈아 보았다. 이 양들은 외계인 침략에 대비해 만들어진 최첨단 초강력 살상용 로봇이다. 양과 맞서 싸우려는 시도는 남김없이 실패할 것이다. 게임 시간은 24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은 3시간도 안 돼 전멸할 것이다.


이 살인 양들은 10년 전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 궤도로 날아드는 거대 물체를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오인한 정부가 우주방어 8개년 계획으로 국민들의 허리와 목을 졸라서 걷어낸 세금으로 만든 살상 무기다. 거대 물체가 적의를 품은 외계인의 침략선이 아니라 금속 혜성이며 지구에 접근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날아오던 혜성과 부딪혀 소멸할 거란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살인 양 8만 기가 생산된 후였다. 정부는 발표를 망설이며 우주방어 계획을 10개년으로 수정해서 몇 년 더 뭉개 보려다 8개년 계획 종료 시점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공표했다. 과학자들이 혜성의 정체를 직접 밝히겠다고 목숨 걸고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여론은 화약고처럼 일시에 불타올랐다. 오로지 후세가 살아갈 지구를 지키기 위해 8년 간 소득의 50%를 우주방어세로 떼이며 온갖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과 경제 공황과 아무튼 그런 것들을 감내하던 대다수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속셈학원부터 경로당까지 사람이 모인 곳마다 대통령과 장관들의 암살 계획이 공공연히 논의되었다. 벼랑 끝에 몰린 대통령은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중국과 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모색하다가 가짜뉴스를 조작한 게 딱 걸렸다. 그러자 전국적인 불화살 시위가 일어나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불화살을 맞고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대통령 파면이 확정되기까지 전국이 들썩대며 초상을 치렀다.


새롭게 꾸려진 정부는 우주방어세를 국가재건세로 이름을 바꾸고 소득의 30%로 낮췄다. 어떤 이들은 그나마 숨통이 트인 걸로 입을 다물었지만 어떤 이들은 전면 폐지하라며 다시 들고 일어났다. 10만 기나 되는 로봇 살인 양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였다. 살인 양을 사겠다는 나라도 없었고 전부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고심하던 중 청와대 비서실의 젊은 행정 인턴 한 명이 양 게임 아이디어를 냈다. 다른 어떠한 아이디어도 없었던 관료들은 잽싸게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내고 아이디어를 낸 인턴 갈테에게 양 게임 프로젝트 총괄을 맡겼다. 아낌없는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물 흐르듯 준비되었다. 그리하여 상금 총액 100억 원, 참가자 25,000명 모집 공고가 떴다. 참가 신청 사이트는 오픈 5초 만에 서버가 다운되었다.


스튜디오 화면에 참가자들의 시작 위치가 지도 위에 빨간 점으로 촘촘하게 표시됐다. 출판도시 1, 2단지 전역에 1호부터 24889호까지 랜덤으로 위치가 배정되었다. 참가자들은 센터 안에 설치된 24,889개의 캡슐에서 텔레포트를 기다리고 있었고, 양들은 이미 출판도시 곳곳에 비활성 상태로 놓여 있었다. 갈테는 다시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현재 시각 11시 59분. 1분 뒤에 양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 시간은 총 24시간. 나눠드린 손목시계의 숫자가 0분 0초가 될 때까지 살아남으시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양은 유기 생물체를 발견하는 즉시 공격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준비한 무기나 장비를 활용해 자신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양을 공격해 손상을 입히거나 파괴해도 무방합니다. 모두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10초 전 카운트다운과 함께 텔레포트가 시작됐다. 출판도시 곳곳에 참가자들의 신체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MRI 스캔 이미지를 쌓듯 생성되었다. 정수리에 난 머리카락 한 올까지 텔레포트가 완료됨과 동시에 사방에 12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양들이 일제히 활성 모드로 전환되었다. 566호를 비롯한 1,000명가량은 양과 코앞에서 마주보는 위치에 배정된 탓에 텔레포트가 완료되자마자 머리통이 날아가 죽었다. 19385호를 비롯한 3,000명가량은 양 인근 허허벌판에 배정된 탓에 10초를 넘기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 5분이 지났을 때 남은 참가자는 14049명이었다.


486호는 어둡고 비좁은 곳에서 12시 사이렌을 들었다. 그가 배정된 곳은 자동차 트렁크 안이었다. 잘됐네. 486호는 빼꼼이라도 문 열어볼 생각일랑 하지도 말고 그곳에서 최대한 버티기로 작정했다.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며 눈을 감고 양 게임에 신청할 때를 떠올렸다. 공고를 처음 봤을 때 그는 25,000명의 참가자가 모두 살아남을 경우를 계산해 보았다. 100억 나누기 25,000은 40만. 24시간을 버티면 최소 40만 원을 받는다. 이득이다. 못 버티면 죽는다. 그것도 이득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터져버린 서버를 뚫고 참가 신청을 완료했다.


“으어으! 깜짝이야!”


찜통 속에서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트렁크 문이 철컥 열리며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훅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며 한낮의 태양빛이 얼굴 정면으로 내리쬐었다. 486호는 질색하며 소리쳤다.


“아, 닫아!”

“나와, 이씨! 여기 뭐 있어?”

“아무것도 없어!”

“여기 총 같은 거 있지?”

“아, 없다고오! 나 여기서 쉴 거라고오!”

“쉬긴 뭘 쉬어, 미친놈아!”


그의 목엔 5910 번호가 달린 전자 목걸이가 감겨 있었다. 5910호구나. 이 목걸이는 번호표이자 게임 이탈자를 막기 위해 출판도시 밖으로 나가면 터지는 폭탄이었다. 25,000명의 신청자 중 111명이 이 목걸이 때문에 사전에 게임을 포기하는 바람에 최종 참가자가 24,889명이 된 것이다. 486호는 그저 ‘밖으로 안 나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트렁크 자리를 두고 5910호와 아웅다웅하는데 주차장 바깥 도로에서 매해해해해- 양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스팔트 도로에 내리쬐는 햇볕이 가루처럼 반짝이는 가운데 새하얀 털이 복실복실한 양 한 마리가 노란 중앙선을 밟고 서 있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멀뚱히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세상 무해했다. 그러나 5910호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미친 사람처럼 바로 옆 건물로 달려 들어갔다. 살인 양을 처음 본 486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살인 로봇이라고? 그냥 귀여운 양인데?


그때 양의 두 눈에 빨간 불이 켜졌다. 눈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부채처럼 펼쳐지며 486호가 있는 주차장 전체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다 486호의 허리춤에서 뚝 멈추더니 넓게 펴진 레이저 빛이 섬뜩하게 그의 배꼽 한 점으로 모였다.


어… 어쩔 건데, 그래서.


양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철걱철걱철걱철걱 기계 관절 굽이치는 소리와 파닥파닥파닥파닥 땅을 차는 발소리가 돌풍처럼 불어 닥쳤다. 생김새와 맞지 않게 비현실적으로 입을 쩍 벌리는데, 그 안은 복슬복슬한 외양과 달리 복잡한 금속 장치로 가득했다. 고전적인 덫의 형태를 띤 금속 이빨 표면이 태양빛을 쨍그랑 반사했다. 486호는 기겁하며 트렁크 문을 잡아내려 닫았다. 그와 동시에 콰쾅 와장창 소리가 나며 차체가 우그러졌다. 트렁크 안의 공간이 순식간에 절반 부피로 쪼그라들었다. 486호는 구겨진 철판에 밀려 고개는 젖혀지고 허리는 뒤로 꺾이고 다리는 엉켜 버렸다. 다시 말해 몸이 딱 C자가 되어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 번 더 들이받으면 바로 죽겠다 싶었는데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고요했다. 양이 그냥 주차장을 떠난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양도 꽤 피를… 아니, 뭐래.


철판이 꺾이고 갈라진 날카로운 면이 자꾸만 등을 파고들었다. 손을 등 뒤에 대놓으려 했지만 위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팔꿈치 아래를 최대한 까딱거려 보았지만 잡히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낮의 열기로 트렁크 안은 점점 찜통이 되어갔다. 486호는 땀으로 흠뻑 젖어서 연신 펴지는 허리를 바뜩 꺾어 댔다. 찜 쪄지는 기분과 산소가 고갈되는 느낌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공간이 없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목이 뒤로 젖혀져 있어 손목시계를 보거나 공간을 둘러볼 수도 없었다.


아.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참가 안 했지.


486호는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생을 되뇌며 괴로워하다 수무룩 잠이 들었다.


훅 찬 공기가 느껴져 486호는 눈을 떴다. 곧장 별이 잔뜩 수놓인 아름다운 밤하늘이 보였다. 등과 종아리에 까실한 매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누군가 구겨진 차체를 어찌어찌 해서 트렁크 문을 열었다.


“살았어, 죽었어?”


486호는 5910호를 어이없이 노려보며 단전에서부터 호흡을 끌어올려 대답했다.


“죽었다.”

“그럼 닫는다.”

“아아! 살려줘. 으윽….”


5910호가 예민하게 도로 쪽을 홱 쳐다보더니 넌덜머리를 냈다.


“에이씨, 또야. 몰라, 알아서 나와.”


5910호가 다급하게 사라지는 모습에 486호는 축축한 뒷머리가 쭈뼛 섰다. 삽시간 붉은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허공에 레이저 빛의 막이 펼쳐지며 검푸른 별밤 아래 주단처럼 깔렸다. 그 빛이 몸에 와 닿는 순간 486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몸이 바닥에 철퍼덕 떨어지며 철걱철걱철걱철걱, 푸다다다다다 소리가 진동과 함께 울려왔다. 486호는 등이 갈리는 고통을 느끼며 발을 굴려 차 바닥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콰쾅, 우콰쾅! 5910호가 용케도 펴놓은 트렁크를 양이 이번엔 완전히 뭉개버렸다. 486호는 땅바닥에 누워 들썩 올라갔다 쿵 내려오는 차체 밑면을 아찔하게 쳐다보았다. 차 밑으로 앙증맞은 양의 발굽이 보였다.


다시금 붉은 레이저가 차 위아래로 생물체를 스캔했다. 486호는 무릎을 굽히고 종아리를 허벅지 아래 밀어 넣어 간신히 모면했다. 잠시 서성이던 살인 양은 다시금 푸른 초원을 뛰노는 아기 양처럼 발랄한 뜀박질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매해해해해- 소리가 멀어지다 사라졌다. 저 귀여운 발굽이랄지 해맑은 울음소리야말로 이 게임에서 가장 킹받는 대목이었다.


486호는 차 밑에서 나와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돌아다니는 양들이 매해해해- 우는 소리에 또 부아가 치밀었다. 486호는 상체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5910호가 피신했던 건물 입구로 달려갔다. 건물 전면의 커다란 현관 유리문은 잠겨 있었고 안쪽에 온갖 집기가 머리끝까지 쌓여 있었다.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보았지만 다른 입구는 없었다.


5910은 어떻게 들어간 거야?


가장 가까운 다른 건물은 적어도 200m쯤 떨어져 있었다. 2차선 도로 바로 맞은편에도 건물이 있었는데 쭉 뻗은 도로 위로 어디가 근원지인지 모를 양 울음소리가 파동처럼 떠돌았다. 이따금 멀리서 붉은 불빛이 번쩍이며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486호는 한기를 느끼며 유리문 앞에 웅크려 앉았다. 그때 머리 위에서 매해해해해- 울음소리가 들렸다. 486호가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보았을 땐 복잡한 금속 장치가 얼굴 전체를 덮치고 있었다.


스튜디오 화면에서 마지막 남은 빨간 점이 사라졌다. 갈테는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마지막 생존자 486호의 사망으로 양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게임 시간 12시간 49분 53초. 안타깝게도 시즌1은 참가자 전원이 살아남는 데 실패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금은 시즌2로 이양됩니다. 시즌2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갈테는 마이크를 끄고 헤드셋을 벗고 모든 촬영 장비를 OFF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튜디오를 나가 불 꺼진 복도를 걷는 구둣발이 점점 철걱철걱 해체됐다 재구성되며 양의 발굽으로 변했다. 꼿꼿이 서있던 허리는 앞으로 굽어지며 두 손도 양 발굽으로 변해 바닥을 짚었다. 입고 있던 옷과 머리카락은 올올이 섬유가 풀리며 복슬복슬 새하얀 양털로 바뀌었다. 양이 된 갈테는 발랄한 뜀박질로 건물을 빠져나와 철걱철걱철걱 관절 굽이치는 소리를 내며 푸다다다다 출판도시의 2차선 도로를 내달렸다. 사거리에서 기다리던 살인 양 무리가 눈에서 노란 레이저를 쏘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지구를 침략하러 온 그들의 모험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이 즉흥적인 이야기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 당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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