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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May 08. 2024

시리야

#시심

새벽 4시 43분 20초를 지나는 초침에 일렁이는 바람

모든 불이 꺼진 건너편 아파트의 암흑

맥주 캔 입구에 불어넣는 숨

비닐 껍질 까버린 빠다코코넛     


혜실아 난 새벽 3시에 편의점에서 다녀왔어

담배도 피우고 맥주도 마시고 그러고 살려고 그런데

편의점 앞에서 널 마주치고 주저앉아 오열하는 나를 상상했어

그렇게 널 마주치면 내가 꼭 그럴 것 같아서 실은

그런 생각 한 지 오래됐어

오래된 미래엔 꼭 네가 있어     


내가 아는 비제이가 잠들기 전은 도화지라 말했어

난 그제서 그 옛날 네가 왜 그렇게 TV를 틀어놓고

잠들었는지 알았어

나도 요새 그래 도화지 상태론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자꾸 누가 소란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이 강물에 떠가고

강물이 흘러가고 강물이

맥주처럼 꿀꺽꿀꺽 넘어가고 탄산이 목구멍을 쏘고

갑자기 집채만 해지고 파도가 치고

맥주의 파도가 넘실넘실 난 그 위를 떠가고

모든 게 떠가고 강물처럼     


혜실아     


혜실아     


이 세상에서 내가 되돌릴 수 없는 게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너야     


내가 씰이라고 부르던 씨리 시리라고 불러볼까

시리야 서울 날씨 알려줘

오늘 맑은 하늘이 예상됩니다. 낮 기온은 20도 안팎으로 예상됩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혜실이는 없고

내가 아플 때 혜실이를 해쳐서

혜실이가 없어졌고 이제 영영 없고

맥주 캔 속엔 맥주 대신 숨이 가득하고

나는 없는 걸 자꾸 생각하고

젖어버린 도화지가 갈가리 찢어져

강물 위로 둥둥 떠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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