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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창밖을 구경하다, 약간의 대화를 하다, 2시간 반을 달려 츠펑(Chifeng)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내몽골자치구 안에 있는 도시로,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다른 중국인 친구들도 내가 그곳까지 간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검색해 보면 익스피디아 같은 곳에나 몇 가지 정보가 나오고 일반인들의 블로그 같은 정보는 거의 없다. 중국 연변에 중국어와 한국어가 같이 쓰이는 것처럼 이곳에는 중국어와 몽골어가 함께 쓰인다. 그래서 모든 간판에는 중국어와 몽골어과 병기되어 있다. 낮 온도가 높고 햇빛이 강하지만 건조한 지역이라 덥지 않고 저녁에는 매우 선선하다.
기차역에 부모님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다. 다소 긴장하신 모습으로. 두 분의 모습을 보니 매우 안심이 되었다. 인상이 매우 좋으셨기 때문이다. 시원시원해 보이시는 어머니와 귀여운 인상의 아버님. 아버님께서 나의 캐리어를 번쩍 들어 계단을 올라주셨다. 부모님 차에 올라타 저녁을 먹을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야 중국 현지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식당에 들어섰다. 더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식당도 있겠지만 이 식당이 조금은 허름해 보여도 맛이 가장 좋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고량주를 한병 따서 권하셨고, 우리는 총 6가지의 음식을 시켰는데 하나하나가 양이 굉장히 많았다. 각각 반 이상을 남긴 것 같은데 일어날 때 보니 그것은 다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애초에 먹을 수 있을 양의 2~3배를 다 주문하는 게 문화인 거 같았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그렇게 포장해 가는 것도 최근 시작된 문화이고, 원래는 아주 많은 양을 남기는 게 다반사였는데 그것은 낭비이고 환경에도 좋지 않으니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해오던 게 있어 갑자기 딱 먹을 만큼만 시키는 문화로 바꾸는 게 어려우니 포장이라도 해가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친구와 나를 정말 흡족하게 우리를 바라보셨다. 나중에 보니 어머니는 몰래몰래 우리 둘의 사진이나 우리가 대화하는 걸 비디오로 찍으셨고 (그리고 나중에 차 안에서 찍은 것을 계속 보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할 줄 아는 영어는 딱 하나 “cheers” 밖에 없다며 계속 ”cheers”를 요청하셨는데 그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이 얘기를 나의 부모님께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며 살짝 해드리니 나의 엄마 아빠가 둘 다 그 기분을 안다며 당신들도 느껴 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우리 세대를 매우 부러워하셨다. 우리는 젊고 외국어도 할 줄 알고 여기저기 다니며 시야를 넓힐 수가 있어서 좋겠다며.
그렇다. 정말 축복받은 세대이긴 하다. 부모님들에게 있어 우리의 삶은 미지의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다 우리네 부모님 덕분이 아닌가. 각 국가의 경제발전에 일조하시며 자녀 교육에 힘을 다하신 우리네 부모 세대. 그들을 위해 친구는 데려온 외국인 친구의 이야기를 열심히 통역해 드렸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나한테 중국어를 하고 부모님께 영어와 한국어를 막 하여 열심히 웃기도 했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 옆의 과일 가게에 들렀다. 처음 보는 특이한 과일이 많았다. 빨간색 배, 유럽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납작한 복숭아, 뾰족한 복숭아, 수박만 한 자몽 등. 내가 신기해하는 것들과 용과, 두리안, 홍매, 처음 보는 색과 모양의 참외 등 과일을 아주 잔뜩 샀다. 땅덩어리가 크니 각종 열대과일부터 각종 기후에서 자라는 과일을 수입이나 하우스 재배 없이도 그렇게 공수할 수가 있나 보다.
과일 쇼핑까지 한 후 드디어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에 부모님은 다른 곳에 내려드렸는데, 그곳은 두 분의 사업장 창고라고 했다. 친구와 나와 둘이 집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집을 비워주신 것인데, 나는 혹시라도 나 때문에 열악한 곳에서 지내시는 걸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친구는 그곳에 큰 방이 있으며 그곳이 집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했다. (마지막 날 저녁 그곳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곳이 집보다 좋은 것은 다행히 사실이었다.)
친구 집에는 고양이와 커다란 물고기(나중에 알고 보니 “금룡” 혹은 “아시아아로와나“) 한 마리와 역시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을 내게 내어 주고 친구는 부모님이 비워주신 안방에서 잔다고 했다. 후식으로 수박 반 통을 파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수박은 정말 달고 알차고 맛있었다. 정말 그동안 한국에서 맛있다고 먹은 수박은 수박이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친구는 한국에 먹을만한 과일이 없어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커피를 못 마셔서일까, 어젯밤 한국에서 나는 잠을 거의 못 이뤘는데 낯선 친구의 방에서는 정말 잘 잤다. 자기 전에 고양이와 약간의 사투를 벌이기는 했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는 고양이는 내게 유독 친밀감을 표시해 친구가 놀라워했는데, 그 고양이가 내가 살짝 열어 놓은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 사이로 닫지도 못하게 딱 서 있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널 좋아하지만 우리가 같이 잘 수는 없어!’ 몇 분간 사투를 벌이다 비로소 나갔을 때 창문을 겨우 닫았다. 조금 답답해도 하는 수 없이. 겨우 창문을 닫은 후로도 고양이는 몇 번이나 다시 와서 방 안을 응시하는데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친구는 아침에 방 창문을 내가 닫은 것을 보고 고양이와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도 그 문제 해결 후 정말 잘 잤다. 어젯밤 우리 집에서 잘 때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