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에서는 효과적이었던 전략 및 프로그램이 다른 어떤 대학에서는 효과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교육기관은 생각보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유형에 따라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다르고,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도 다르다. R. Birnbaum(1988)은 이러한 고등교육기관의 종류를 5가지로 유형화하였다.
2020년대 한국의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 지방소멸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를 타개해 보고자 여러 정부지원사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 가지의 해결책이 결코 모든 대학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시공간적 맥락은 다소 다르더라도, 고등교육기관을 5가지로 유형화한 Birnbaum의 아이디어는 어떠한 대학의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Birnbaum이 제시한 고등교육기관의 5가지 유형에 따른 조직의 조정 기제, 장점과 단점을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1) 동료형(Collegial model)
첫 번째 고등교육기관 유형은 동료형(Collegial model)이다. 이 유형에 대표적인 대학은 헤리티지 대학(Heritage College)이다. 헤리티지 대학은 유대인-기독교 전통에서의 자유 교육을 강조하는 대학으로, 캠퍼스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약 1,15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고, 교수진은 80명 미만이며 관리자도 소수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이 지역 거주가가 아닌 한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며 대부분의 교직원도 캠퍼스 근처에 거주하고, 일부는 학생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교수들은 연구에 대한 부담은 없고 강의와 학생 상담이 강조된다.
이 대학에서는 지위의 차이가 강조되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상호작용한다. 즉, 대학은 구성원들의 공동체로 간주된다. 의사결정에 있어 위계가 크게 고려되지 않고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교수진들은 한 달에 한 번 공식적인 전체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교수식당이나 캠퍼스 인근에서 끊임없이 교류한다. 공통의 배경, 지속적인 교류, 오랜 전통 덕분에 헤리티지 대학은 강력하고 일관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강력한 문화는 어떠한 공식적인 규칙이나 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구성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문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헤리티지 대학은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때 기존 구성원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사람을 선발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쓴다. 만일 여기서 기존의 강력한 문화에 반하는 행동 패턴을 보이는 구성원이 나타나면, 그는 헤리티지 대학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다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고 스스로 떠나게 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헤리티지 대학만의 문화와 가치에 순응하느냐가 전제가 있다.
즉, 동료형의 주요 특징 및 장점은 동료적인 문화와 구성원 간의 친밀함, 의사소통의 유연함 등이 있지만 이는 상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들이 이미 형성하고 있는 문화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흐트러뜨릴 우려가 있는 의견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동료적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배타 및 배척이기도 하다. 이들이 인력을 보강할 때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문화와 일치하는 가치 성향을 가진 인력’을 보강하는 것은 이러한 협동적 문화를 창시하고 개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 및 기법 중 하나이다(Hall, 2011). 기존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참여시키지 않는 전략과 동전의 양면이다.
한편 이러한 동료 모형은 일정 규모 이하에서만 유효하기도 하다. 만일 헤리티지 대학이 그 규모가 5배, 10배로 커진다면 더 이상 비공식적 상호작용은 조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워질 것이고, 점차 다음으로 살펴볼 모형처럼 관료화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2) 관료형(Bureaucratic model)
고등교육기관의 두 번째 유형은 관료형(Bureaucratic model)이다. 사실 모든 조직은 어느 정도 관료적이다. 그러나 고등교육기관에서는 관료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관료 조직에서는 위계에 따라 상급자의 결정을 따르도록 하는데, 하위 구성원들이 전문적일수록 그들의 행동을 관료적 통제로 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타 조직의 행정 직원들보다 관료적인 통제로 교수진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관료형이 통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다면, 교수진들이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에 비해서 덜 전문적인 경우이다. 관료형 기관으로 대표적으로 제시된 피플스 대학(People’s College)은 2년제 공립대학으로, 학사 과정 편입 프로그램이나 기술, 비즈니스, 보건 과학 등의 분야의 직업 교육을 제공한다. 이 대학 교수진 중에서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진의 수가 적다. 즉, 이들은 보통의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진처럼 상위의 의사결정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관료형 조직의 구성원들은 그저 표준업무지침에 따라, 조직도에 나타난 선대로 업무를 보고하고, 지시함으로써 움직인다. 따라서 특정 관료형 조직의 구성원의 역할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기가 쉽다. 신입 직원이라도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규칙과 규정이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관료형의 이러한 특성은 조직에 상당한 안정성을 부여하고, 예측 가능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표준업무지침 따위는 조직의 효율성에 오히려 가장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관료형 조직의 구성원들은 늘 해오던 일에는 익숙하지만, 처음으로 직면하는 상황에서는 큰 혼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상위 레벨의 결정과 지시를 따랐기 때문에, 혼란 상황에서 다시 상급자에게 책임을 돌릴 것이다. 이렇듯 관료제는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부 환경이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피플스 대학에는 약 5,7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한다. 이 대학의 학생들은 그들의 교육 경험을 실무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기대한다. 그들은 대부분 뚜렷한 직업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캠퍼스 내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대학에서 딱히 동료 학생들을 사귀지 않으며, 수업 외 시간에는 캠퍼스에 굳이 머물지 않는다. 교직원들 또한 계산적으로 주어진 업무에 참여하고, 노동조합의 계약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며, 개인적 불이익이나 불편을 초래할 만한 변화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3) 정치형(Political model)
고등교육기관은 종종 정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조직이란, 한 기관이 서로 다른 이익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이들이 협상하고, 타협하는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조직이다. 교육기관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구성원 그룹은 보다 특수화되고 이질화되며, 이해관계와 선호도가 다양해진다. 따라서 갈등이나 이견은 조직의 병폐이기보다는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Regional State University는 약 13,500명 정도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RSU의 교수진은 주로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연구중심대학 임용에 실패한 후 RSU로 오게 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학보다는 자신의 학문 분야나 전문 분야에 더 관심이 많다. RSU 교수진은 대학 행정직들이 취하는 조치들이 반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들을 관료적 시스템으로 통제하기에는 어려우며, 이에 따라 중앙집권적 권한은 취약해졌다.
정치적 조직에서 특정 결과를 바라는 하위 그룹은 다른 그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때로는 여러 그룹과의 연합 결성도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거래와 타협도 일어난다. 정치적 결과는 예측이 어렵다. 구성원이나 하위 그룹은 협상, 타협, 거래 과정에서 입장을 수정하기도 한다. 가끔은 누구도 의도하거나 선호하지 않은 결과가 여러 권력 다툼의 부산물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특정 사안이 논의되는 타이밍에도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RSU가 언제나 혼란과 불안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특정 그룹들이 강력하고 지배적인 연합을 결성했다면, 한동안은 이 권력이 캠퍼스의 안정을 도모한다. 또한 각 개인은 두 개 이상의 그룹에 속하기도 하는데, 즉, 여러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면서 다수의 소소한 교차적 부동의의 존재로 작용하고, 이는 조직 전체의 균형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정치적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무관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대부분의 사안에 거의 관심이 없다. 거버넌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이나 하위 그룹은 소수이다. 대부분의 사안들은 일상적인 것이고 다만 간혹 크고 본질적인 사안들이 대두되는 것이다.
4) 무정부형(Anarchical model)
조직에는 목표가 있고, 조직 리더는 조직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조직 구성원의 주요 업무는 의사결정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에 반기를 드는 시스템이 있다. 27,5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Flagship 대학에서 학생들의 생활은 면밀히 모니터링되지 않으며 학생들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생활한다. 학부 교육은 대부분 대규모 강의로 진행되거나 조교가 담당하고 교수진들은 학문적 생산성이 가장 중시된다. 박사 과정을 제외하고는 교수와 학생 간의 교류가 거의 없다.
Flagship 대학은 자유 교육이라는 모호한 틀 안에서 실제 커리큘럼은 주로 개별 학과와 교수진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Flagship 대학에서 '목표'는 일반적으로 일관된 교육 철학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아이디어의 느슨한 모음으로 간주된다. Flagship 대학의 커리큘럼은 가장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해 학자들이 심사숙고한 결과이기보다는 콩주머니(beanbag)와 같다. 새로운 교수진은 대학에 들어와 경력을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콩(bean)’을 추가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이 시스템은 “조직적 무정부 상태”로 설명된다. 조직 내의 모든 것들은 관련 개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이며, 이들은 각자 해결을 위한 절차와 장소를 찾아야 한다.
무정부형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상징적인 것으로 대부분 캠퍼스 생활에 미미한 영향만 미친다. 리더가 극적이고 신속한 변화를 시도한다면 이는 거의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무정부형 조직에 변화를 도모하고 싶다면, 해류를 활용하여 돛단배를 움직이듯 조직의 자연스러운 성향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충분한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민감한 사항을 우선 보류했다가 나중에 다른 문제와 결합시켜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룹 내에서 그것에 반대할만한 자들 모르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무정부형 시스템은 특히 복잡하고 격동적인 환경,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높은 수준의 기능이 갖추어져 있는 환경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고수준의 하위 단위는 중앙 집권적 환경에서보다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 통제가 덜한 환경에서 전문화된 구성원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활동에 참여하며 생산성을 높이며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
5) 사이버네틱형(Cybernetic model)
Huxley 대학을 오래 관찰해 봤다면 많은 소음과 혼란의 패턴과 신호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복잡해서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Huxley 대학은 잘 생존하고 있으며, 오히려 번창하고 있기도 하다. 매년 학생들이 입학하고, 배우고, 졸업하며 교수진들은 연구를 수행하고, 학문적 결과를 발표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럽지만, 이 조직 내에는 놀라운 규칙성이 있기도 한 것이다. 이 대학은 사이버네틱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Huxley 대학을 유지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 조절 장치”이다. 미리 설정된 온도 아래로 떨어지면 퍼니스(furnace)가 켜지고, 온도가 원하는 수준으로 돌아오면 퍼니스가 꺼짐으로써 온도가 범위 내로 유지되는 것처럼 Huxley 대학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있어 조직의 성과가 범위 내로 유지되도록 하고, 무엇인가 범위 밖으로 벗어나게 되면 조직 내 개인이나 그룹이 활성화되어 Huxley 대학을 원하는 수준으로 되돌리려 움직이게 된다.
한편 온도 조절 장치는 온도 변화에만 민감하고 다른 변화에는 무관심한 것처럼, Huxley 대학의 시스템 역시 제한적이다. 집중적인 피드백 체계 및 채널이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는 담당 리더에게 알려지지도 않으며 따라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또한 어떠한 목표 달성을 위해 취한 조치가 예상치 못한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집중적인 피드백 체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러한 결과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이렇게 제한된 목표에 대한 편협한 관심이 꼭 조직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사이버네틱형 조직의 리더를 위한 원칙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잘 작동하면 계속한다. 둘째, 잘 작동하지 않으면 그만한다. 셋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의도치 않거나 잘못된 처치나 불필요한 개입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한다.
6) 소결
지금까지 살펴본 Birnbaum의 5가지 고등교육 조직 유형별 조정 기제, 장점, 단점과 기타 사항을 표로 정리해 보면 아래 <표 1>과 같다. 기타 참고할 사항으로 대학의 규모와 교수진의 전문성 관련 정보를 정리하였는데, 대학의 규모와 구성원의 전문성은 조직 유형에 어쩌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이질적인 특성의 구성원이 많이 생기면서 더 이상 하나의 문화적 합의로 유지되고 움직이기 어렵고, 이에 위계와 표준 업무 지침이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전문성이 높은 구성원들이 많아지면 더 이상 관료제가 통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특정 규모 이상이 되면 그 내부의 움직임이 조직 자체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생각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참고문헌>
Birnbaum, R. (1988). How colleges work. National Center for Postsecondary Governance and Finance.
Hall, G. E. & Hord, S. M. (2011). 학교변화와 혁신. 서울: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