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신혼여행 다섯째 날, Ubud
3월이 되었다! 물론 이곳에서 그런 것은 전혀 영향이 없지만...
지금은 우붓의 우리의 마지막 숙소에 와 있다. 길리에서 빠당바이 항구에 고착하자 비가 쏟아지고 있던 바람에 오는 길은 좀 험난했지만, 도착해 있는 지금 이곳은 평화 그 자체이다. 우리가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쯤 비가 잠시 잦아들더니, 다시금 비가 또 쏟아진다.
늦은 점심을 먹은 대신 저녁은 어쩔까, 하다 남편은 케이크를 테이크아웃해서 숙소에 와 먹자고 했다. 그렇게 잠시 케이크 픽업 산책을 하고 와 숙소 테라스에서 케이크를 몇 입씩 먹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맨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일기를 쓸 때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기 때문에 그렇다...ㅎㅎ)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우붓의 이 축축함이 길리 아이르에서 잔뜩 먹은 더위를 좀 식혀주고 있다.
어제 길리 아이르의 마지막 저녁, 석양이 지자마자 우리는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어두워지기 전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그 전날 길리가 어두워지면 어떻게 되는지 (가로등이 하나 없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 점차 더 맞추어지고 적응되고 있으며 둘 다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행복을 결혼 후에, 허니문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솔직히 이러한 것을 결혼 전에 이미 다 경험했더라면, 신혼여행이 이토록 행복하고 즐겁지는 못했으리라 여겨진다.
오전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미리 말을 해 두었더니 시간 맞춰 우리를 항구로 데려다줄 마차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무척이나 사나운 말이어서 짐을 올려놓자마자 우리를 두고 가버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마부가 겨우 잡아두니 내가 타려고 하는데 또 막 제멋대로 출발하려 하여 하마 타면 뒤로 고꾸라질 뻔했다! 하여간 참으로 의욕 없어 보이는 말이 있는가 하면, 이런 말도 있고 말들도 참 제각각이다.
그렇게 성질 급한 말을 타고 항구 쪽으로 와 우리가 예약한 배편 회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체크인을 했다. 항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뽕따색 바다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우리의 배를 기다렸다. 잊지 않고 멀미약도 챙겨 먹고. 배에서는 잠을 잘 잤다. 대참사가 시작될 것은 예상치 못하고...
생각보다 금방 발리 본섬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여태껏 본 적 없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빠르게 피신했고, 남편은 우리의 캐리어를 챙기느라 그 비를 홀딱 맞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의 택시를 찾는 데도 꽤 애를 먹었다. 그래도 결국엔 잘 해결되어 감사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신혼여행 중에도 떠오르는 그런 순간이었다.
배에서 충분히 잠을 청해서 그런지, 빠당바이 항구에서 우붓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는 둘 다 잠에 들지 않았는데, 대신 창밖의 발리 거리를 보며 인도네시아와 발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발리는 애초에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침공으로 인해 힌두교 승려들이 피신을 온 섬이라고 한다. 하여 '신들의 섬'이라 불리게 된 것이고, 아니나 다를까 차창 밖으로는 정말 한 집 걸러 한 집이 사원이었다.
그리고 인도네이사는 제국주의 시절 네덜란드의 통치를 무려 300년도 넘게 받았는데, 서양 국가의 시민들이 서양의 과도한 발전과 문명사회에 지쳐갈 때쯤, 네덜란드는 이 신들의 섬 발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래서 그 오래전부터 문명사회에 지친 이들, 예술가들, 그림 같은 빌라를 짓고 살고자 하는 중산층의 서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역시나 공부를 좀 하니 발리에서 목격한 이런저런 모습들이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발리에 오면 한국인 신혼여행객들로 바글바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국인은 거의 볼 수 없고 서양인들이 정말 많다. 다들 가까운 호주에서 왔겠거니 싶었는데 말을 잘 들어보면 독일인들도 꽤 있고 그 먼 스웨덴에서도 오고 그런 것 같다.
우붓 쪽으로 오니 말로만 듣던 발리의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즐비한 가게들을 구경하며 교통체증 속에서도 나름 재미가 있었는데 남편은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택시기사가 우리 숙소를 찾고, 숙소가 차가 닿지 않는 곳이라 숙소 직원들이 스쿠터로 우리를 데리러 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남편의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래도 잠시였다.
우붓의 우리의 마지막 숙소에 도착하고, 숙소 앞의 산책길로 나온 순간 우리는 이내 평화를 되찾았고, 지금까지 다녀온 Canggu, Gil Air와 비교했을 때 우붓이 가장 좋고 최고이며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숙소의 크기도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작았으나, 절대로 비좁은 건 아니었기에 오히려 우리 둘이 쓰기에 딱 편하게 알맞았다. 길리 아이르의 빌라는 정말 멋졌으나, 우린 2박 3일을 커다란 2층집에 사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깨달았다. 무얼 하나 잊으면 다시 내려갔다 오거나, 다시 올라갔다 오거나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4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점심이 아직이었다. 근처의 식당에 가보니 음식은 이제 끝났다 하여 오다가 본 표지판을 따라갔다. 이어지는 산책길에 있는 sweet oragne warung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산책길도, 식당도 얼마나 고요하고 아기자기하게 예쁜지 모른다. 우리는 또 한 번 우붓에 반하고 있었다.
이제야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서 아쉬운 시간이 든다. 아직 3일이 더 남았다. 생의 최고의 이 나날을 더욱 만끽해야지. 나의 남편을 몹시도 사랑한다. 어제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