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신혼여행 셋째 날, Gili Air
셋째 날, Gili Air로 가는 배를 타러 6시에 알람을 맞추어 일어났다. 체크아웃을 하며 아침식사 도시락까지 받았다. 배 회사에서 보내준 택시를 타고 빠당빠당 항구로 갔다. 택시 운전사는 배 회사의 사무실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사무실에서 우리는 뱃삯을 지불한 뒤 숙소에서 받은 아침 도시락을 먹고 멀미약도 챙겨 먹고 배를 기다렸다.
금방 또 배 타러 가자는 직원을 따라 배에 올라탔다. Gili 가는 길이 험난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
Gili Air에 도착하자 우리가 예약한 빌라 직원이 배에서 내리는 곳 바로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인도하는 대로 말을 타고 빌라로 갔다. Gili Air는 친환경 섬이라 차도 오토바이도 없고, 오직 말과 자전거로만 다닐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섬이 작기도 하고.
웰컴드링크와 웰컴프룻으로 환대를 받으며 체크인을 했다.
우선 짐만 두고, 자전거를 타고 드디어 현지 식당을 찾아 미고렝과 나시고랭으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옆을 돌아다니는 닭들 사이에서! 코코넛도 음료로 마셨는데 매우 신선하고 시원했고 미고랭 맛도 좋았다. (여기가 발리 최고의 미고랭과 코코넛 맛집이었을 줄 이때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Gili Air는 발리 본섬보다 무척이나 더워서 계속 땀이 줄줄 흐른다.
점심을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Atm 찾아 삼만리를 했다. 나머지 숙소값을 현금으로 내면 3% 더 저렴하게 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찾은 Atm은 고장이었고, 섬을 완전히 가로질러 두 번째로 찾은 Atm은 아예 사라져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찾아낸 Atm은 한 번에 250만 루피아밖에 인출할 수 없었는데, 처음엔 별도 수수료가 없더니 두 번째에는 약 300원, 세 번째에는 거의 5000원의 수수료를 떼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뽑지는 않고... 무려 75장의 10만 루피아짜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너무 더워 오자마자 옷을 다 벗어버리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해가 좀 지면 다시 슬슬 나가보아야겠다. 내일의 스노클링과 마사지를 예약해 두었다.
총 9일의 휴가 중 3일째. 오래 쉬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할 일이 없어도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혹은 순수함이. 그러니까 어린아이 같거나 경륜이 있거나.
대화를 하고, 수영을 하고, 요가를 하고,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질 높은 수면을 취하고, 미식을 즐긴다.
요가 선생님은 미래에 대한 짐을 짊어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가 가장 즐겁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순간 자체가 내가 과거 어느 순간에 기대하고 기다리던 미래인걸. 상상해 온 미래가 눈앞에 그대로, 현실로 펼쳐진 때의 놀라움과 황홀함, 성취감 또한 우연히 맞닥뜨리는 순간 못지않게 기쁨을 주는 것을.
그렇게 오후의 휴식을 잠시 취하다 길리의 거리를 산책했다. 도무지 동남아 물가로 인정할 수 없는 비싼 숍들도 좀 구경하고, 시원한 것도 한 잔 했다. 앉을만한 카페를 겨우 찾았지만 이 무더위에 문을 다 활짝 열어 놓아 더위를 확 시킬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으로 길리에서의 '베스트 피자'라는 해변의 피자집으로 갔다. 다른 식당들은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어도 텅텅 비어 있던데, 그 피잣집에는 그날 길리아이르에 머무는 모든 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석양을 보려고 해변 쪽의 좌석은 다 차 있었는데, 우리도 석양을 보며 식사를 하려고 웨이팅을 조금 하니 금방 자리가 났다. 모래사장 위에 좌식탁자와 빈백을 둔 좌석이었다. 부모님들이 저녁식사를 즐기는 사이 해변에서 열심히 노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어디든지 놀이터로 만드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기반한 창의성에 감탄하며... 길리아이르는 발리 본섬보다 아이를 동반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았다.
피자가 맛있기는 했으나, 함께 시킨 뇨끼는 또 거의 남기게 됐다. 여하간 발리는 미식을 위한 여행지는 아닌 듯하다. (혹은 한국이 음식이 워낙 맛있거나...)
피자를 먹으며 나는 남편에게 꺼낸다는 얘기가... 결혼은 그저 현실이라는, 결혼에 대해 묻는 친구들에게 했던 얘기였다. 마치 취준생들이 취직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상상하지만 막상 취직을 하고 나면 매일의 출퇴근이 연속되는 고단한 현실이 시작되는 것처럼, 결혼도 똑같은 것이라고...
물론 요새는 온갖 정보에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젊은 사람들이 취업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는 등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기는 했으나, 적어도 우리에게는 다음 단계가 희망이었고 소망이었고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바였다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얘기했다.
(나는 이날 밤 자기 전 "아까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 말 취소"라고, "결혼은 환상이야."라고 정정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글쎄 길리아이르에는 좀처럼 가로등이 없어 무척이나 무서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전등을 켜고 살살 이동하고 있었다. 내일은 일찍 귀가하기로 하고, 수영 한 번, 목욕 한 번 하고는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