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신혼여행 마지막 날, Ubud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8시부터 누웠으므로 그리 조금 자는 건 아니었다. 6시간을 충분히 잘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취침에 계속 어려움을 겪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두드러기가 몹시 심하여 잠을 잘 자지 못하였다. 길리 아이르에서 우붓으로 넘어오면서 나는 두드러기 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계속해서 가려운 부위에 바디로션이라도 바르고 버텨봤지만 계속 다시 가려웠고 무척 힘든 밤을 보냈는데, 체크아웃 전에 짐 정리를 하다가 약을 발견했고, 나는 그만 그날 밤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나 눈물이 났다. 이런 식으로 종종 눈물을 보이는 나를 남편이 아직은 귀여워해주어 다행이다.
아무튼 2시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택시를 불러 Y네 숙소로 갔다. 우리와 우연히 같은 시기에 발리에 와 있는 Y네 커플과 바투르 화산 일출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투어는 Y의 남자친구분이 우리의 축의감 명목으로 선물해 주시는 것이었다. 감사드린다.
Y네 숙소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차에 올라타자 Y는 그간 여행 스토리를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었다. 멀미를 좀 하는 나의 남편은 앞 좌석 조수석에 앉혔다. 차를 타고 어느 정도 산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프차로 갈아타게 되었다. 막상 지프에 타니 새로운 느낌에 또 재미가 있었다. 꽤 스릴도 있고 놀이기고 같았다. 남편도 그렇게 힘 좋은 차에 타 보는 것이 재미있는 듯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우리와 같은 지프차들이 수백 대 도착해 있었다. 새벽 4시 반을 막 넘고 있었던 듯한데, 이런저런 사진을 찍다 보니 금방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았다. (모두가 보는 카톡 프로필을 수영복 사진으로 할 수는 없어서... )
다시 Ubud으로 돌아와 우리는 Y네가 다른 현지 가이드들에게 추천받았다는 crispy duck을 먹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밥을 살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침 8시 반부터 우리는 오리 다리를 잡고 뜯었다. 옛날통닭 맛이었다.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우리는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시간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해프닝이 좀 이었었다. 내가 숙소 직원에게 우리를 ubud palace'에서' 데려가달라, 요청한 것을 직원은 우리를 호텔에서부터 ubud palace'로' 데려다 달라는 것으로 오해하여 나는 ubud palace 앞에서, 직원은 우리 숙소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린 것이었다. 내가 말을 틀리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빌라가 딱 4개밖에 없어 숙박객들의 출입을 거의 파악하고 있는 직원들 입장에서 우리가 오전에 나간 일이 없으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새벽탈출을 했던 것이었다.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30여분 만에 열심히 짐 정리를 했다. 숙소를 떠나는 건 매번 아쉬웠다. 짐을 맡겨 두고, 플로팅 조식과 로맨틱 디너를 결제하고, 공항까지 가는 택시비 협상을 하고 (사장님이 직접 데려다주시는 건 줄은 모르고...) 가벼운 몸으로 숙소를 다시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림을 그리러 가고 남편은 근처 카페로 갔다. 그림은... 망했다... 나름 지금까지 여행 그림 중에 그렇게 망한 적은 없었는데... 처음 해보는 바틱 기법이 나의 그림 의도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마사지를 한 번 더 받고, 저녁을 먹고,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한 번 더 먹고, 우리를 우붓에 반하게 했던 sweet orange warung에 한 번 더 가 남편이 좋아했던 음료도 한 번 더 마시고, 마침내 공항 갈 택시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은 곳은 진짜 현지 맛집이었다. 가격도 정말 현지 가격이었는데, 닭고기 구아와 밥이 15k, 그러니까 1,500원이 채 안 되는 것이었다. 메뉴 3개에, 음료에, 간식 하나까지 먹었는데도 약 5,0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는 길은 조금 험난했지만 몹시 맛있었다.
떠나올 때는 아쉬울 것도 없고, 편안한 내 집,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울의 내 집에서 발리 이야기를 쓰고자 하니 생각보다 많이 그립다. 그래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발리인가 보다. 무언가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 곳. 자유로움, 발견하는 기쁨, 성실한 현지 직원들, 그리고 아직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양파 같은 섬.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라 좋았고, 고맙고, 다행이었다. 그가 나의 부족함을 다 받아주고 인내해 주어서,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싸우지도 않고 오로지 사랑을 더 키워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