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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혜윰 Nov 15. 2023

코코의 나라, 멕시코로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법, 죽은자의 날 명절

이십 대 초반에는 여행도 시간단위로 하는 완벽한 계획주의자였다.


시간이 흐르고, 살아갈수록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계획보다는 쉼에 초점을 맞춰서 여행을 한지도 어언 5년이 지났다.


이번 배낭여행은 처음으로 떠난 장기여행이었고, 또 치안이 썩 좋지 않기로 유명한 중남미였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보려고 했지만, 한편에서 '어차피 계획 세워봤자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세운 계획은 10월 31일, 그날은 꼭 멕시코에 가서 죽은 자의 날 명절을 즐기자는 것이었다.


핼러윈보다 망자의 날이라고 불리는 축제가 더 기대되기 시작한 건 디즈니의 '코코'라는 영화를 본 이후부터였다. 죽음은 항상 무겁고 생각만 해도 서글픈, 무언의 압박과도 같았는데 멕시코라는 나라에서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국경 하나 차이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망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점이 몹시 신기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을 무렵, 코코라는 영화를 접했고 나의 내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죽음을 기리는 날을 어떻게 축제로 만들어 즐길 생각을 하지?' 의아했다. 죽음은 곧 슬픔이었던 나에게 그들의 문화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국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온 도시가 메리골드 꽃으로 인해 주황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우리가 머물 에어비엔비의 거실에도 메리골드가 가득했다. 우리를 맞이한 호스트 하보와 하보의 엄마, 휴스턴이 테이블을 꾸미고 있었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설치하는 재단(ofrendas)을 설치하는 중이라고 했다.


하보는 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이 또 다른 새로운 시작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이승에 내려와 살아있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날이 바로 망자의 날(dia de mureto)이라고 말해주었다. 10월 31일은 재단을 만들어 보고 싶은 가족들의 사진을 올려두고 11월 1일은 먼저 떠난 어린아이들을, 2일은 어른 망자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메리골드 꽃은 망자가 집까지 잘 찾아올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라고 하며 나에게 한송이를 건넸다. 녹진한 꽃내음에 기분이 좋았다.


휴스턴이 재단에 올릴 음식을 사러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무계획은 이럴 때 참 좋다. 냉큼 열쇠만 챙겨 그들을 따라나섰다. 시장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조형물로 꾸며져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하보는 메리골드 꽃, 해골모양의 설탕과자나 초콜릿(calaveras), 죽은 자의 빵(pan de muerto), 그리고 망자의 사진을 올리고 그들이 살아생전 좋아했던 음식까지 준비하면 완벽한 재단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혹시, 너도 먼저 떠난, 보고 싶은 가족이 있니? 있으면 사진 뽑아줄게 재단에 같이 올려두자."


두 달 전에 떠난 우리 강아지, 사랑이가 생각났다.


"음, 나는 강아지가 보고 싶은데, 강아지 사진도 괜찮아?"


"물론이지, 강아지가 떠난 지 얼마 안 됐구나. 많이 보고 싶겠다."


사랑이만 떠올리면 나는 눈물이 났다. 어디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살아생전 잘 못해준 것들만 생각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사랑이 사진을 잘 보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사랑이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필요한 것들을 사고 망자의 날 명절에 대한 이야기로 들으니 문득 하보에게 너무 고마웠다. 나는 단지 죽은 자의 날 퍼레이드가 궁금했고 정말로 그날을 즐기는지 호기심에 온 나라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하보네 가족을 만나 죽은 자의 날을 더 깊이 즐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장에서 사 온 것들을 올려두고 마지막으로 죽은 자를 환대하는 의미의 촛불을 켜고 나니 재단이 완성되었다. 사랑이 사진을 바라보며 조심히 오라는 말을 전했다.


죽음은 이들에게 아무래도 영원한 사랑인 것 같다. 곁에 없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단 하루라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기뻐하고 감사해하는 마음이 가득한 따뜻한 사랑 말이다. 죽음이 어쩌면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던 이승의 가족들을 만나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춤을 출 수 있는 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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