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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혜윰 Nov 13. 2023

미국 햄버거는 더블패티에 더블치즈

10시간의 비행 후 비몽사몽한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미국 국기였다.


'와, 내가 미국이라니'


그는 옆에서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누가 봐도 미국이 처음인 관광객이었다.


설렘도 잠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어마무시한 입국심사 대기줄이었다. 비자를 받는데만 2시간이 걸렸고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오니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LA의 하늘은 주홍빛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배고픔과 기다림에 지친 기색이었던 그의 얼굴이 점차 환해졌다.

"LA는 하늘도 예쁘다. 그렇지?"


도합 25kg의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짊어진 그가 말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네. 10년 뒤에나 올 수 있을까 싶던 미국이었는데,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게 신기해."


말없이 그의 시선 끝에 놓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작게 소망하는 건, 나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멋진 노을을 보면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작은 별을 보고 반짝이는 웃음을 지을 줄 알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낭만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오감을 지닌 사람 말이다. 무던히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그런 감각도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더 활발한 감각을 지닌 그는 무거운 가방과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탓하며 땅만 보고 걸어가던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날의 노을은 잊을 수 없이 따뜻한 빛깔을 지니고 있었다.


배고픔도 잊고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렬하고도 뜨겁게 지는 해를 뒤로하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에서야 다시 발길을 뗐다. 혹여 햄버거집이 닫았을까 봐 서둘러 길을 걸었다.


"아 맞다. 오빠, 미국 햄버거는 무조건 더블패티에 더블치즈야."


"왜?"


"육즙이 미쳤어."


나의 첫 미국버거를 떠올리며 그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꼭 더블패티에 더블치즈라고!"



멀리서 인앤아웃 간판의 빨간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더블더블을 중얼거리던 그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단숨에 도착하더니 주문 대기줄에 한자리 차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더블더블 세트 두 개 주세요. 버거에 구운 양파를 추가해 주시고 음료는 밀크쉐이크로 바꿔주세요."


주문을 후 따끈한 햄버거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림으로만 보던 햄버거를 마주한 순간이라 그런지 정적이 흘렀고 그의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은 슬로모션처럼 지나갔다. '와..'라는 말만 나지막이 내뱉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


내 질문에 그는 입안 가득 햄버거를 물고 함박웃음을 짓더니 대답했다.


"네 말이 맞네, 여기 햄버거는 더블패티에 더블치즈로 먹어야 하네."


별것 아닌 햄버거 한 입에도 행복해하는 그가 내 여행메이트라는 게 몹시 감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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