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하게 지내기

MBTI로 보는 변화

by 러비

사업을 하면서 느낀 건,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저 작은 우물 속 개구리였는데 지금은 내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 또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지하철에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내 세상을 구성하는 배경, 말하자면 한 연극의 엑스트라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개체처럼 보인다. 물론 또 방심하는 순간 그들을 (또한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습관으로 돌아가겠지만.


한 가지, 내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바로 MBTI이다. 지금은 유행이 많이 지난 느낌이 있지만 나는 원래도 심리에 흥미가 많은 편이다. mbti는 물론 한 사람의 성격을 완벽히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료로 온라인에 올라와있는 mbti를 시기에 따라 몇 번 해봤는데, 최근에 한 mbti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전에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파격적이라고까지 느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내 mbti에 F(감정형)이 등장한 것이다. 내 mbti는 몇 년에 걸쳐 istp(대학생) -> intp -> intj(직장인) 이런 식으로 변화했는데, 이 와중에 i와 t만은 변하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결과에는 infj, infp가 나왔다. (믿기지가 않아서 각기 다른 사이트에서 두 번이나 해봤다) 내 mbti 중 I와 T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T(사고형)에서 F(감정형)으로의 변화는 뭘 뜻하는 것일까. 명상을 하고, 마음공부 같은 것들을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바꾸려고 노력하긴 했다.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내 나름의 (높은) 기준치로 평가하는 습관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볼 때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니까, 자비로움, 따뜻함이라는 게 없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나는 줄곧 그래왔고, 이 습관의 가장 큰 피해자도 바로 나였다. 나는 나에게 특히 가혹하게 평가했고, 나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고, 나를 가장 한심하게 여기고 못살게 굴었다. 게다가 나는 그러는 게 나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이며,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T라고 다 이런 시선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나는 유독 네거티브 T였다.


감정이란 게 싫었고, 사랑을 거부했고, 차라리 무생물 또는 로봇처럼 살고 싶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면에서는 항상 그렇게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겉으로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얌전한 '모범생'같은 아이였다. 도덕과 법을 곧 잘 지키는 그런 아이.


그렇게 속에 불만과 분노를 잔뜩 쌓아두면서 가면을 쓰고 자란 아이는 역풍을 맞고, 혼란이 가득한 20대를 보냈다. 하도 역풍을 맞아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하던 때야 비로소 나는 이 고해苦海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살았는지 알았고, 사람들을 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한 것도.


흔히들 F에서 T로의 변화는 흑화 한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T에서 F로의 변화는 뭘까? 사실 T이건 F이건 간에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제로의 상태, 무의 상태로 가고 싶다. 거기서는 무생물 또는 로봇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느끼면서도 자유로운 상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평화이며 풍요이며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와 화해하고 친해져야 했다. 내가 단절해 놓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며 후회했고 나에게 사과했다. 마치 아이에게 자신도 모르게 혹독하게 대하다가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사과하는 부모처럼. 나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동시에 나를 스스로 가두고 있던 장막도 조금씩 걷히면서 나는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행복함과 감사함을 조금이나마 발견하기도 했다.


예전에 나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카페에서 혼자 책 읽기', '맛있는 음식 먹기', '재즈 음악 듣기', '산책하기' 같은 어떤 특수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기분이 참을 수 없이 다운되어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나는 주로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했다. 그것 역시 소확행은 맞아서 잠시 기분이 환기됐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일시적이었고, 곧 다시 우울하거나 별로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언제나 잠깐만 맛볼 수 있는 행복. 원래 삶이라는 게 이런 것 같았다. 하지만 부자라면, 성공한다면 어쨌든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성공을 좇기 시작했다. 나만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깊은 늪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필시 내가 더 많은 발버둥을 쳤기 때문일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물에 빠졌을 때도, 정말 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이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멈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책에 나온 세 단어를 머릿속에 각인하고 다녔다. 무저항, 무판단, 무집착. 내 마음에서 어떤 발버둥이 느껴지는 순간 이 단어들이 기억나면 나는 곧 멈출 수 있게 됐다. 이미 알고도 수많은 함정에 다시 빠져버렸기 때문에, 절대 잊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내 마음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말이다.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마는 게 참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잘 아는 것처럼 쓰고 있으면서도 곧 똑같은 일상생활 속으로 빠져들면 나는 또 모든 것을 잊곤 한다. 어제도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에 명상이고 감사하기고 뭐고 다 거부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 잊음-다시 기억함을 반복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완전히 놓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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