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에 인문학의 바람이 불었다. 그 인문학 바람이 필자에게까지 불어왔다. 한 기업체에서 명상을 인문학과 연관 지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음~ 도대체 인문학이 뭐란 말인가? 흔히들 인문학을 문(학), (역)사, 철(학)로 문학, 역사, 철학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명상과 연결하기에는 너무 원론적인 정의이다. 인문학에 대한 이것저것을 찾아보던 중 고전평론가이자 인문학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고미숙 씨의 인문학에 대한 해석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중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명상의 핵심을 뚫고 지나가는 이야기였다.
필자 : 인문학은 인간, 시간, 공간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이 세 단어의 공통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사이 간間’으로 여러분들은 어떤 사이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가요?
청중 : 인간이요. (어느 강의나 ‘인간’이라고 100% 답한다. )
필자 : 그렇다면 성공한 분들에게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잘 활용해서 이렇게 성공하셨나요?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청중 : 시간이요?
필자 : 네 맞습니다. 시간이라고 해요. 그럼 난센스 퀴즈 드리겠습니다. 맞추면 10분 빨리 끝내 드릴게요. 이 세 가지 중에서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무엇을 잘 다스려야 부자로 살 수 있을까요?
청중 : 인간? 시간? 공간? 중간? (청중들은 빨리 끝내주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 말 대잔치가 시작된다.)
필자 : 정답은 바로 ‘공간’입니다. 땅, 아파트, 건물주. 바로 부자 되기 위해서는 부동산이 최고죠. ^^ 난센스 퀴즈였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에서 말하는 공간은 좀 다른 의미입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을 말합니다. 사람은 4차원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 중 하나는 시간이죠. 그래서 공간으로 본다면 3차원인데요. 점, 선, 면 어쩌면 인간은 한 면 밖에 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인문학적인 해석을 좀 덧붙이자면,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思考)로 이어지고, 1차원적 사고, 2차원적 사고, 3차원적 사고를 낳습니다. 오늘 좀 퀴즈가 많은데요. 그렇다면 이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차원은 몇 차원일까요?
청중 : 3차원이요? (이상하게도 거의 3차원이라고 대답을 한다. 아마도 가장 복잡한 차원이라고 생각해서 3차원이라고 하는 것 같다.)
필자 : 아닙니다. 1차원적 사고부터 이야기해볼게요. 1차원적 사고는 ‘점’ 인데요. 이 점은 쾌, 불쾌를 말합니다. 뇌로 보면 자극과 반응. 좀 단순하죠. 그래서 1차원적 사고는 기분 좋으면 방긋 웃고, 기분 나쁘면 우는 아기들의 뇌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에 머물러 있는 어른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요. 달면 달다고, 쓰면 쓰다고 다 표현하는 사람으로 외향적이면서 부정적인 사람으로 오히려 주변을 스트레스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사람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다면 정신적 건강을 위해 이사 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이민도 적극 권장해 드립니다. ^^
다음은 2차원적 사고입니다. 2차원적 사고는 바로 identity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의 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할까요? 바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갑니다. 다른 친구, 형제, 자매에 비해 ‘나는 예쁘다, 공부를 잘한다. 부자다.’를 알 수 있습니다. 2차원은 X축과 Y축의 위에 현재 나의 좌표가 찍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좌표를 연결하면 ‘선’이 생기게 되고, 그 선을 보면 기울기가 보이게 됩니다. 기울기의 각도를 통해 소위 내가 지금 제일 잘 나가는지 못 나가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늘 다른 사람들의 기울기와 비교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2차원적 사고에 머무르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차원적 사고에서 3차원적 사고로 넘어가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차원적 사고는 Z 축까지 생겨서 공중에 떠있죠? 그래서 잘 나가는지 못 나가는지 좀 헷갈려요.^^ 3차원을 3D라고 하는데요. 3D 영화관에 가 보셨어요? 2D 영화관 보다 더 생생하게 영화를 입체적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2차원적 사고로 다른 사람과 인생을 비교하느라 힘을 쏟았다면 3차원적 사고로는 자신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명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3차원적 사고로 사는 방법이 무엇일지 궁금하시죠?
청중 : 네, 빨리 알려주세요!! (조급함이 느껴진다.)
필자 : 놀랍게도 인문학자와 뇌과학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일맥 상통합니다. 3차원적 사고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문이 필요한데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내 삶에 타자(他者)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의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정할 때 나만 좋은 것이 아닌 타자도 함께 좋을 수 있는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속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때 3차원적 사고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관문은 나와 누군가를 상생할 수 있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자신의 하는 일에 ‘몰입’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어.’라고 표현하는데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몰입 장면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의 수준이라면 <안나 카레니나> 쯤은 다 읽어 보셨죠?
청중 : 황당한 웃음 (책은 너무 유명하지만 베개로 쓰기에 적합한 두께의 책으로, 이런 두께의 책이 1권도 아니라 무려 3권이나 된다.)
필자 : 책의 주인공 레빈은 새벽부터 풀베기를 하면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순간 자신은 귀족이고 함께 하는 사람이 농노라는 신분 차별의 의식도 사라진 채 노동을 통한 치유를 경험하는 이 장면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 1) 만큼이나 유명한 장면 2)입니다. 이 장면을 명상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를 말합니다. 모든 동양의 현인들이 말하는 지향점.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이미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그 자체가 자기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요술에 걸리기라 도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 > / 민음사 中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