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인건가?
월요일 아침 잠에서 깨고나니 한국에서 걱정 어린 연락이 와있었다.
튀르키예에서 강진이 일어났는데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이긴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가지안테프 지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나는 아무런 진동도 느끼지 못하고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지진의 심각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피해자가 없기도 했고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 첫 날이라 다들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대감에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처음에는 Koc university에 한국인 교환학생이 나 포함 3명뿐인 줄 알고 같이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한 분이 더 계셔서 한국인 4명과 우연히 만난 파키스탄 친구까지 5명이서 학교로 갔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Koc university는 튀르키예 내에서도 굉장히 부유한 친구들만 다니는 학교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있는 West campus와 학교 본관까지의 거리가 걷기에는 좀 먼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셔틀이 있어 언제든 학교를 오갈 수 있다.
물론 비용은 무료!
오리엔테이션 첫 날 많은 설명을 들었는데 사실 모두 영어라 100%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날 이스탄불 지역에 폭풍우가 오면서 날씨가 너무 안 좋아 학교측에서도 제대로 된 오티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건,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으로 위와 같이 페인팅 시간도 갖고 인간 빙고라고 빙고판에 적힌 내용을 충족하는 친구들을 찾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한국인들 옆에서 '어떻게 하지?'하고 긴장하고 있는데 서양의 친화력이란...
눈만 마주치면 웃으면서 다가오고 이미 형성된 무리에도 쉽게 끼어들면서 모두가 친구가 되더라;;
I가 90%이상 나올정도로 파워 내향인에다가 토플 턱걸이 점수를 겨우 만족한 나로서는 말하기도 힘들고 대화를 모두 알아듣기는 더더욱 어려워서 한번 대화 나누고 1분간 쉬다 다른 무리를 찾아나서길 반복했다.
저 친구들 다들 저날 처음 만났다... 휴 파워 외향인들의 인싸력이란ㅠㅠ
초반 며칠은 지난 학기부터 Koc 대학에서 교환학생을 지내고 있는 규리라는 한국분이 계셔서 그분의 친구와 함께 한국인끼리 모두 식사를 나눴다.
근데 위 영상에도 보시다시피 이스탄불 지역에 비행기가 이륙도 착륙도 못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안 좋았어서 다음날부터 오리엔테이션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처음에는 줌으로 참여하려 했는데 별 내용이 없기도 하고 규리님이 다 설명해 주셔서 굳이 들을 필요다 없다 생각해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지 않았다ㅋㅋㅋㅋ.
-우리나라 카스, 테라와 같이 튀르키예 국민 맥주인듯 하다.
나는 술 맛을 잘 구별을 못해서... 그냥 분위기 용으로 마시고 있다.
튀르키예의 술 값은 마트 가격은 우리랑 비슷하거나 조금 싼 정도인데 술집 가격은 비싸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
우리도 점차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그 여파가 우리에게도 미치기 시작했다.
가지안테프 지역은 튀르키예 내에서도 종교적인 지역으로 이슬람 종교를 믿는 친구들이 그 지역에 많이 산다.
따라서 Koc university의 학생들이나 교직원, 관계자 분들도 가지안테프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현재 그 지역이 모두 마비가 되고 사상자가 계속해서 나오면서 튀르키예 내 모든 대학은 개강을 미루었다.
우리 학교도 처음에는 일주일 개강을 연기하였지만 정확히 언제 개강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튀르키예 국립대학들의 기숙사를 피해자들 쉼터로 이용하기로 하면서 국립대학들의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이 소식이 주말에 전해지면서 아직 학교 내에서 정확한 오피셜을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학교는 온라인+오프라인 하이브리드로 운영을 할 것 같다.
교환학생들에게 기숙사를 빼라고 말 하지 않는 걸 보면 국립대학은 아닌 건가?
튀르키예 상황에 모두가 애도하고 슬픔을 나누고 있지만 우리는 교환학생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왔기 때문에 기숙사에 틀어박혀만 있을 순 없다.
그래서 목요일, 여기 온 지 근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보았다.
튀르키예 유럽 사이드의 대표적 시내는 탁심광장으로 신시가지라고도 부른다.
관광지로 발전된 곳으로 직접 보고나니 한국의 명동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
우리가 기대하는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카이막'이다.
백종원이 방송에서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아주 핫한, 튀르키예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할 음식이 되었다.
근데 현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체 왜 카이막이 제일 유명하냐고 반문 하더라.
백종원 아저씨... 이렇게 또 사업거리를 홍보하신 건가요?라는 의문이 들 때쯤 한 입 먹었는데 와... 왜 천상의 맛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달까. 하지만 맛을 설명하라고 하면 못하겠다. 꿀도 적당히 달고 부드럽지만 완전 흐물흐물하지는 않은 한국인이 참 좋아할 맛이었다.
지금까지 카이막은 'Karakoy muhallebicisi', 이 집에서만 먹었는데 이 집이 잘하는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렇게까지 맛있는 건지 이 집이 잘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 가면 한국인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계산하는 한국인 일행이 있었고, 우리가 다 먹어갈 때쯤 온 팀도 한국인이었다.
먼저 온 한국분들이 양이 적다고 1인 1카이막 하라 했는데 nice한 선택이었다.
꿀팁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고등어 케밥을 먹었다.
이 집도 저 슈퍼마리오 아저씨가 하는 집이 유명하다는데 찾느라 한참 걸렸다.
유명하다길래 줄이라도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맛집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한 가지 팁을 주면 탁심에서 다리를 건너기 전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다리를 왕복해 다시 돌아오고도 모르고 지나쳐서 빙빙 돌았다.
음식도 빨리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내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언제 되는지 알아보러 내려갔는데 때마침 다 되었다.
원래는 서빙을 해주는 것 같은데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갖고 올라 가란다;;
흠... 분명히 서빙 해주는 것 같은데
이런 비주얼로 그렇게 크진 않고 가격은 60리라이다.
한 끼 식사로는 조금 부족할 순 있지만 간식으로 먹기에는 살짝 헤비한 친구다.
맛은 고등어 자체는 한국에서 흔히 먹는 고등어 구이 맛이어서 담백한데 소스가 비린맛이 나는 굴소스 느낌이다. 셋 다 맛있게 먹었고 한국인 입맛에 안 맞기 힘든 음식이었다.
참고로 같이 간 세 명 모두가 카이막은 다시 먹고 싶다 말했고 나를 포함해 2명이 고등어 케밥은 다시 먹으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다리 건너기 전에 한 컷 찍어 보았다.
여기 온 뒤로 처음으로 햇빛을 보았는지라 모두가 들떠 있었다.
좋은 얘기만 할 수 없으니 이번에는 호갱 당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카이막과 고등어 케밥으로 배를 어느정도 채우고 나니 커피 한 잔이 하고 싶었다.
스타벅스 보다는 튀르키예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돌아다니다 호객행위에 이끌려 한 집에 들어갔다.
나는 튀르키예식 커피, 나머지 두 명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메뉴판도 안 보여주고 가격도 절대 안 말해줬다.
나는 커피를 아무리 비싸게 받아도 얼마나 비싸게 받겠어란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는데 글쎄! 하... 350리라(약 24000원)을 부르더라ㅋㅋ
참고로 이날 우리가 가장 비싸게 먹은 음식이 350리라였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되냐니까 이제야 메뉴판을 보여주더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130리라, 튀르키예 커피 90리라...
메뉴판을 보고 더이상 할 말이 없어 결제하고 나왔다.
그리고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호갱 안 당할려면 무조건 가격부터 확인하자!
먹여행 다음 행선지는 탄두리 집이었다.
어쩌다 보니 백종원 기행을하고 있는 우리였다.
튀르키예 음식이 고기 베이스여서 맛이 없을 수는 없는데 먹다보면 비슷비슷하다.
탄두리는 저 또띠아(?)를 기름에 한 번 데치는데 그래서 그런지 또띠아에서 기름내가 난다.
그 느끼함을 잡아주기 위해 레몬과 작은 고추(?)를 주는데 음... Not my style.
굳이 내 돈주고 다시 사먹을 맛은 아니었다.
먹여행의 마지막은 쾨프테였다.
나는 탄두리에서 배가 거의 찼지만 나머지 두 명은 나보다 훨씬 대식가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나를 다음 행선지로 안내했다.
쾨프테는 떡갈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식이다.
역시나 고기에 채소와 같이 나온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저 적색양배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많이 보이더라.
그리고 저 큰 고추! 저것도 웬만한 고기요리에 꼭 같이 곁들여 주더라.
쾨프테는 먹으면서 진짜 놀랐다.
맛있어서 놀란 게 아니라 너무 짜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어서 놀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 사진만 봐도 뇌가 울릴정도로 짠 맛이 느껴진다.
튀르키예 음식이 대부분 그렇듯 쾨프테도 빵과 같이 먹는데 나는 배가 너무 불러 쾨프테 만이라도 다 먹고 싶어도 쾨프테 한 입에 빵을 우걱우걱 먹을 수 밖에 없어서 결국 남겼다.
이 날 기숙사로 돌아와서 하도 소화가 안돼 소화제라도 먹을까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니 괜찮아지더라
주말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한국인들과만 어울린 것 같아 외국 친구들을 불러 탁심으로 갔다.
학교에서부터는 콜롬비아 출신에 미국 대학을 다니는 헤수스라는 친구와 함께 갔는데 역사에 관심이 정말 많고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닌 친구였다.
남미, 유럽 역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까지 모르는 게 없는 똑똑한 친구였다.
후에 이탈리아에서 온 알베르토라는 친구도 만났늗데 둘이 스타벅스에서 정말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는 영어를 다 잘 못하니까 좀 듣다가 호응해 주는 정도랄까...
저녁에는 다른 친구들도 합류해서 술과 음식을 먹었는데 헤수스랑 네덜란드에서 온 크리스티나라는 친구 둘이 가운데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느라 양쪽에서 아무도 이 둘을 건들이지 않았다ㅋㅋ
점심을 먹고 그랜드 바자르라고 오스만 시대에 건설된 대형 상가를 갔는데 튀르키예 전통 문양들이 눈에 띄었다.
종교적 문양도 있고 이곳에서 사면 또 호구짓을 할 것 같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에 몇 개 예쁜 거 간단히 사기에는 좋아보인다.
그리고 드디어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모스크에 갔다.
나는 종교는 안 믿지만 이런 장소에 가는 건 즐거워 한다.
뭐랄까? 나와는 다르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절실하게 기도를 하고 종교를 믿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달까?
게다가 모스크는 탁심과 그 옆에 구시가지에만 해도 여러 개가 있는데 모두다 규모가 크고 멋진 외형을 갖고 있어 사진을 찍고 구경할 맛이 났다.
한가지 흠은 무조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겨울이라 발이 얼 것 같았다.
내부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분이 와서 영어로 모스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말을 정말 빨리 하셔서 중간중간 겨우 알아들으면서 듣고 있는데 한 가지 재미난 일이 생겼다.
나와 같이 간 헤수스는 크리스쳔이었다.
목걸이로 십자가를 메고 다닐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걸 알게 된 자원봉사자 분과 종교배틀이 붙게 됐다.
말싸움을 한 건 아니지만 자원봉사자 분이 본격적으로 자리에 앉아 판까지 깔면서 이슬람 종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덕분에 한 시간 가량 모스크와 이슬람에 대해 역사교육을 받았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몇 개 기억 나는 건 없다ㅋㅋㅋㅋ.
외국인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우리 셋은 호텔로 향했다.
원래는 승엽이라는 한국인 친구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호텔을 혼자 잡은 거였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친구 한 명까지 해서 남자 세명이서 추가금을 내고 호텔에서 묵게 됐다.
씻고 나니 12시가 넘어 다른 활동은 하지 못했고 양주를 한 병 사와 술파티를 벌였다.
원래는 1시간 만에 후딱 먹고 자자는 계획이었지만 모든 계획이 그렇듯 다 마시고 3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에서도 시험 준비하면서 오랜 기간 술을 안 마셨는데 여기에 오고나니 술을 마실 기회가 더 많다.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수영장에 갔다.
나와 다른 민준이라는 친구는 수영을 못했는데 승엽이는 수영을 잘 해서 우리를 알려줬다.
어릴 때 잠깐 배우고 난 뒤 다 까먹어서 앞으로 가지도 못했는데 잠깐 배운다고 이게 또 가지긴 하더라.
꽤 오래 논 줄 알았는데 1시간 만에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 후딱 밖으로 점심을 먹었다.
수영이 에너지 소모는 진짜 큰데 배는 진짜 빨리 고파지는 것 같다.
술 먹은 다음날이라 점심을 많이 먹진 못했는데 잠깐 수영했다고 바로 꼬르륵 거리더라;;
이렇게 이곳에서의 교환학생 첫 주차가 무사히 지났다.
튀르키예 현지 상황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교환학생으로서 이번 학기를 어떻게 운영할 지 학교의 빠른 피드백이 필요하다.
아마 내일이면 오피셜로 계획이 나올듯 한데, 최악의 상황엔 한국으로 귀국할지도 모른다.
내가 튀르키예에 오자마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이스탄불 지역에는 현지인도 처음본다는 강한 폭풍우와 눈발을 경험하니 내가 나쁜 기운을 몰고 와서 이 땅이 고통받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참... 여러모로 즐기러 온 교환학생인데 괜시리 죄책감 마저도 든다.
그래도 마음이 정말 따뜻해 지는 위 사진처럼 정말 많은 한국분들이 튀르키예 재난현장에서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에 직접 오지 못해도 상관없다. 머나먼 한국에서 기부라는 선행으로 튀르키예 피해자를 돕는 이야기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교환학생들에게는 단골질문이 있다. "너 왜 튀르키예를 선택했어?"
나는 이 질문에 항상 하는 대답이 있다. "한국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거든"
70여년 전 미국,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파병을 보낸 튀르키예에 우리는 빚을 갚고 있다.
나도 교환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 할테니 이 멋진 나라가 슬픔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오길 바라본다.
(나 개강도 제발 해주고...ㅠㅠ 온라인 수업 싫어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