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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Nov 30. 2022

그들이 열광하는 아파트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쩌다 보니 투자자 4.

통로로 쓰기에는 넓고 소파와 티비를 놓기에는 턱 없이 좁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방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큰 방에는 티비와 침대를 넣었고 작은 방에는 행거를 설치했다. 소파와 장롱을 방 어딘가에 넣고 싶었지만 공간이 마땅치가 않았다.








자취하면서 사용했던 것들을 그대로 사용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샀던 냉장고와 세탁기는 단순 기능만 있는 것으로 인터넷 최저가로 구입했었다. 신혼 가전으로는 택도 없는 거였지만 작동이 잘되니 버리기 아까워 사용했는데 남 보기에 궁색해 보였을 수 있다. 난 괜찮았다.


부엌살림을 하면 할수록 뭔가 불편했다. 비싼 건 아니더라도 냄비나 그릇은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혼자 살 때와는 다르게 반찬 가짓수가 늘어났고 조리할 냄비나 음식을 담을 그릇이 부족했다. 간단하게 살 거라고 살림살이를 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불편했다. 하지만 불편함도 괜찮다 여겼다. 


엄마가 이불세트를 권했지만 필요 없다고 했다. 목화솜을 넣으면 겨울 이불이 되고 빼면 간절기 이불이 되는 한 채만 골랐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살림이 그리 간단치가 않아. 여름 홑이불도 필요하고 폭삭하니 가벼운 봄가을 이불도 있어야지 어떻게 이불을 달랑 한 채만 해가려고?"


"엄마 강원도에도 이불집 널렸어. 돈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때 돼서 필요하면 살게."







사촌 언니는 매일 같이 전화가 왔다. 


"직장 사람들은 어때? 집은 춥진 않아?"


"언니 사람들도 좋고 집도 좋고 다 좋아. 근데 택시가 안 잡혀. 출근 시간에는 바빠서 그런지 우리 동네는 배차가 안된대."


"너 면허 있었지?"


"응. 면허만 있지. 운전은 안 해봤어."


"하다 보면 다 해. 앞만 보고 직진만 잘해도 회사는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야. 언니 차 가져가."


초록색 마티즈를 언니로부터 헐 값에 넘겨받았다. 회사 마당에서 가장 볼품없었지만 초보가 긁어도 부담 없고 주행 잘되니 그것 또한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남자와 금전적인 문제로 다툴 일도 없었다. 알아서 적당히 쓰고 적당히 통장으로 모으는 생활을 했다. 이것 또한 각자 했다. 서로의 통장을 보여 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을 사람이란 걸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때까지는 지금의 나에 만족하는 인간이었다. 


당시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을 오해했었다. 


'발전하지 않아도 된다, 욕심부리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해도 된다'는 나만의 언어로 받아들였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내가 되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너무 아무것도 모른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회사 선배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걸 몰랐다. 내 신혼집은 늘 항상 그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변두리 단독주택으로 왜 갔느냐.

시댁에서는 왜 안 도와주시냐.

시댁 어른들은 무슨 일을 하시냐.

시댁 형편이 안 좋냐.

등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시부모님의 직업 빼고는 딱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었다.


남자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남자와 무슨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지, 취미생활은 무엇인지, 서로 각별하게 아끼고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들이 없었다. 그저 남자 집의 재력에 대해서만 궁금해할 뿐이었다.


이후에는 적어도 몇 평의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고 어느 동네를 골라가야 하는지 설명을 들어야 했다. 


골프장 공이 탁탁 맞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퇴근하는 그 집이 싫지 않았고 나쁘지 않았었다. 테라스에서 싱싱한 새우와 춘천 닭갈비를 구워 먹으면서 최대치의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저 나만의 행복이었다. 이런 행복에 대해 언급했지만 바로 묵살당했다.


"그래도 아파트로 갔었어야지."


나를 위한 조언은 계속됐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결국 본인들 집 자랑을 하고 있었고 아파트 브랜드로 서로의 재산 서열을 매기고 견주는 것이 암묵적으로 이뤄졌다. 


아파트 이야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독주택에 산 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그들이 열광하는 아파트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아파트를 경험하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근무를 했고 관내 이동 신청을 했다. 


남자와의 거리를 30분 단축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지만 그들로부터 더 이상 아파트 진입에 대한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는 집이 아니라 남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잔소리로 세뇌당한 나의 뇌는 무섭고 빠르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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