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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Jun 08. 2024

낭만에 대하여

middleist의 낭만

궂은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글을 쓴다. 낭만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붙여놓고 보니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궂은비 내리던 날'로 시작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라는 가사로 마무리 되는 노래. 잃어버렸다는 것은 언젠간 있었다는 말. 한 때는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나의 낭만은 어디에 있었나.

 

가장 최근에 본 낭만적인 장면은 해외축구의 한 장면이었다. 위기의 팀에 부임해 8개의 우승컵을 안겨준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시즌도중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힌 그의 마지막 경기. 9년간의 대장정을 함께한 팬들은 마음을 담아 마지막을 축하했다. 안필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 앞에서 그가 몇 마디 인사의 말을 꺼내고, 수줍게 노래를 시작했다. 진심 담긴 떨림이 느껴지는 무반주의 노래. '아르네 슬롯, 라라 라라라' 클롭의 제스처에 맞춰 관중들도 따라 불렀다. '아르네 슬롯, 라라 라라라'. '아르네 슬롯'은 클롭에 이어 리버풀의 제22대 감독으로 내정된 감독의 이름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중계되는 EPL에는 엄청난 돈이 몰린다. 리그에서의 성적은 돈과 직결되고, 돈은 또 성적과 직결된다. 시즌 중에도 경질이 난무하는 살벌한 리그. 거기에서 9년간 정상의 위치에서 팀을 이끈 것은 기적 같은 일이고,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모습도 충분히 멋진 일인데. 후임감독도 지지해 줄 것을 본인 은퇴식에서 노래까지 불러가며 말해버리다니. 이 세상엔 없는 멋이다. 그래서 너무 낭만적이다.

[작년 즐라탄의 은퇴식도 그렇고, 축구인들에겐 낭만이 있다]

 그래서 낭만은 어디에 있을까. 아등바등해 봐도 남들처럼 이라도 살 면 다행인 게 세상인데. 매일매일 청춘을 갈아 넣고도 결국 시시하고 평범한 중년이 되어가는 게 사회라는 곳인데. 낭만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선재업고튀어'라는 드라마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몇 번의 인생을 살아도 한결같은 사랑.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다시 만나도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운명적인 사랑. So romantic. 판타지에 가까운 모습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 게 아닐까. 현실에 없는 것들이 더 로맨틱한 법.

[솔이와 선재 커플에 빠진 사람들을 수범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세상엔 없는 멋과, 판타지에 가까운 사랑에 낭만이 있다면. 요즘 귀해진 마음에도 낭만이 있지 않을까. 무거운 짐을 나눠드는 배려. 위험한 사람을 도와주는 용기. 기분 나쁜 유머보다 배려 담긴 말을 고르는 현명함. 느리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끈기. 심심하지만 선한 것들이 조용히 낭만을 만들고 있을 수도. 아직 '새삼 이 나이'는 안된 것 같으니. 낭만적으로 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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