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 17년 11개월 근무를 했다. 위로는 15년 정도 차이나는 선배가 있고, 아래로도 그 정도 차이나는 후배가 있다. 딱 중간. 미드필더의 포지션이다. 직급상으로도 위로 몇 단계의 상사들을 모셔야 하는 중간관리자. 상사들의 지시를 잘 전달받아 후배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보면 하는 일이 없어 보이긴 하는데, 축구에선 모든 포지션이 다 중요하다.
창조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팀은 미드필더가 강한 경우가 많다. 축구도사라 불리는 사람 중에도 미드필더 포지션이 많다. 맨시티에 케빈 데브라이너, 리버풀의 티아고 알칸타라, 레알 마드리드의 모드리치. 박지성과 이강인도 미드필더 포지션이다. 회사의 미드필더인 중간관리자도 다양한 역량이 요구된다. 기본은 정확한 전달. 패스가 부정확하면 후배들이 몇 배로 더 뛰게 된다. 발 밑에 정확하게 배달되는 킬 패스가 슈팅의 성공률을 높인다. 다른 부서와 유관 기관, 고객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볼키핑도 해야 한다. 센터백이 숙취에 시달린다 싶은 날은 수비가담을 적극적으로 하고, 공격수가 똥볼만 차는 날에는 직접 슈팅도 해야 한다. 회사 안의 소문과, 바깥의 트렌드도 수시로 확인해서 전달해야 한다. 놀고먹지는 않고, 나름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회사에서 미드필더로 몇 년간 플레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있다. 첫 번째, 직장의 상사들도 인간이다. 회사 밖 동호회에서 만나는 편한 형님, 누님들도 그들이 속한 회사에서는 어려운 상사일 수도 있다. 상사들과 호형호제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시고, 사이사이 가벼운 대화들을 하려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그냥 일 잘하는 부하직원보다는 같이 밥도 먹어주는 후배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후배들도 일 욕심을 가지고 있다. 꼰대소리가 부끄러워 후배들과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후배들도 비전과 계획이 있고,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이렇게 대답하는 후배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야근을 해야 할 일이면 야근도 하고, 주말에 전화를 해야 할 일이면 하면 된다. 진짜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후배들도 한다. 세 번째,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을 챙기는 것이다. 술도 줄여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위아래 양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니 정신위생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핀치에 몰렸을 때 가족과 본인을 희생해 가며 일을 해결해 왔었다면 그 패턴도 바꿔야 한다. 제일 소중한 게 가족이고 그 보다 더 소중한 게 본인이다. 그나저나 18번째 시즌은 어느 팀에서 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