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강의를 하게 되었다. 달리기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강의를. 아무리 생각해도 강의를 받아야 할 수준인 내가 강의라니.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아 일단 수락은 해놓고 수습 중이다. 달리기를 좋아하긴 한다. 3년이 넘는 시간을 주말이면 대회를 찾아다니고, 신상품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려 새 신발을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달리면 기분이 좋고, 달리면 건강에 좋고, 달리면 뭐 그냥 좋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달리기를 오래 하다 보니 함께하는 모임이 여럿 생겼다. 전국의 동갑내기들과 함께하는 크루도 있고, 회사에는 직접 창단하고 리드하는 모임도 있다. 메인으로는 마스터즈 최고레벨의 코치님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석 중인데 부산, 울산에서 열심히 달린다는 친구들이 제법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겨우 C팀. A 하고 B팀다음이니 딱 중간쯤 가는 실력인 셈이다. 1년을 넘게 따라다니고는 있지만. A팀 선수들 훈련량의 반도 소화 못하는 실정. 실력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기만 한다. 그러니까 뭔가 한계라는 게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1%의 차이도 쌓이면 커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씩이나. 이렇게까지 거창할 일인가]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고 훈련을 해본 적도 있었다. 3개월을 술도 줄여가며 연습을 했고, 제법 난도가 있다는 춘천 마라톤에서 3시간 29분. 원하던 목표도 달성해 봤다. 하지만 그게 전부. 춘천마라톤에서도 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고, DM정도는 주고받을만한 지인 중에서도 족히 100명은 나보다 빠른 기록을 달성했다. 그쯤 해보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여기서 10분을 더 단축하기 위해선 얼마나 달려야 할지. 얼마나 많은 날을 참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경쟁하는 달리기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패배감을 안겨줄지.
경험하는 달리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두 발로 더 많은 도시를 기억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가는 달리기. 경험과 기억은 개별적이고 유일할 테니. 하루하루의 모든 달리기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쌓여갈 것이다. 1m씩이라도 경험의 마일리지는 늘어만 갈 거니. 지지 않는 달리기를 계속하자. 그렇게 즐겁게 달려보자고.
그렇게 편해진 마음으로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과 달리기가 가진 매력을 나누고, 낯선 주자들에게 목청껏 응원도 하면서. 엉성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글도 끄적끄적. 이 정도의 삶에 대해서라면 나도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멘탈의 텐션이 풀리니, 뱃살의 텐션도 풀려버린 것 같은데. 이건 또 심각한 문제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