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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Jun 22. 2024

여행의 목적

middleist의 여행

며칠 후면 대마도에 간다. 마라톤을 핑계로 시작. 부모님과 함께 효관광도 겸한 1박 2일. 외국에 나가면 이것저것 신기한 것도 많고 재이 있는 것들도 많지만. 편하지는 않다. 입국심사를 앞두고는 유독 긴장하는데, 긴장하며 내민 여권을 바라보던 담당직원이 어디론가 심각하게 전화를 건다. 경찰복장을 한 2인조가 나타나 팔짱을 잡는다.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의 말일뿐. 그 길로 사무실로 끌려가 긴 고초를 겪는다. 눈감고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이런 장면을 영화 속에서 너무 질리게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내가 거쳐간 대부분의 입국심사에서는 여권사진에 비해 지나치게 늙어버린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이 대부분이긴 했다. 더러는 ‘환영합니다’ 같은 어색한 한국말 인사를 건네기도 하면서.


 입국하고 나서도 불편함은 이어진다. 만국공통어라는 신용카드를 지갑 속에 꼭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주문을 하려면 긴장부터 된다. 한참을 고민하지만 실제로 내뱉는 말은 디스, 앤드 디스 원. 손가락까지 사용하며 메뉴를 찍고는 신용카드를 내밀면 끝. 정말로 편리한 세상이다. 드물지만 완성된 문장으로 소통하는 경우도 있다.  ‘Can I have some ~~~’이라는 문장이 제일 먼저 기억나는데, 소개팅에서 만난 교육대학교 학생이 오늘 하루종일 배우고 왔다고 웃으며 말해주던 문장이다. 뭔 처음 보자마자 저런 얘기를 할까. 웃으며 말하는 걸로 봐서는 나쁜 의도는 아니였을 것 같은데. 덕분에 저 표현은 아직도 잊지 않고, 가끔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느끼한 음식에 녹다운되었던 신혼여행에서 ‘Can I have some hot water?’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저 공손한 문장을 통해 한 주전자 가득 뜨거운 물을 구해 ‘Neo gu-ri’ 뽀글이를 만들어 먹으며 짧은 향수병을 달랬던 기억. 문장을 약간 비틀어서 ‘Where can I smoke?”라고 말을 해본 적도 있다. 흡연자이던 시절, 14시간 비행이 끝나고 나서  담배필 장소를 간절히 찾으며 본능적으로 완성된 문장.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하기는 겨우 명사 정도를 더듬더듬. 제대로 된 소통은 힘들다. 버스를 타던 지하철을 타던. 내릴 지점을 놓칠까 긴장을 놓지 못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한 코스를 더 지나친다는 것은. 공포스럽기까지 한 일일 테니.

 그래도 꾸역꾸역 해외로 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는 일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참 좋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도 도시의 골목골목을 기웃거리고, 공원에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곤 한다. 파리에서 개봉한 ‘다음 소희’ 덕분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도 해봤다. 그런 경험. 어차피 누구나 얼마 정도는 이방인인 글로벌 시대.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내가 사는 삶 속에선 나를 떨어져서 볼 수는 없으니,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그 속에서 나와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들이 주는 안도감. 그걸 찾아서 어색하고 불편한 여행을 견뎌내는 건 아닐까. 뛰어서도 갈 만한 49.5KM 거리의 여행에 대한 프리뷰가 이렇게나 거창할 일인가 싶기는 하다.

[신혼여행때 만난 한국라면은 애국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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