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풀코스를 준비하는 중이라면 폭염에도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전지훈련을 떠날 형편이 안 되는 취미러 너라면 더위에 맞서던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더위에 맞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1시간만이라도 뛰어본 사람은 알게 된다.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여름철 더위를 피해 달리기 위해서는 시간을 조정하거나 공간을 선택해야 한다. 새벽과 밤은 상대적으로 선선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여름에 해가 너무 길다. 3시간 내외의 장거리 훈련을 하기에는 어둠의 시간이 너무 짧다. 공간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그늘을 찾아 가로수길로 가거나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가 우거진 곳들은 보통 집 옆에 있지 않고, 백만 벌레대군도 매복 중이다. 온몸으로 단백질 보충할 각오는 하고 뛰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트레드밀. 인간을 지루함으로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머신.
나는 종종 기꺼운 마음으로 스스로 수형을 택한다. 폭염으로 야구경기가 취소된 오늘도 장거리 훈련을 위해 헬스장으로 향했다. 지루함에 맞서기 위한 몇 가지 팁. 제일 기본적인 것은 속도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낮은 속도에서 시작해 100미터마다 0.1씩 속도를 올린다. 다리와 호흡이 버티는 한계까지 도달하면 다시 편안한 페이스로 내려와 호흡을 잡는다. 두 시간 이상을 달리기 위해선 마라톤 영상을 보며 뛰는 것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 2시간의 벽을 돌파하는 킵초게의 영상이나, 목표로 하는 대회의 중계영상이 적당하다. 화면 속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뛰고, 피니시 라인에선 같이 손을 흔들며 환호도 해보자. 사람은 함께 뛰면 오래 달릴 수 있다. 비록 영상 속의 사람들 일지라도 함께 하면 덜 힘들다. 왜 그럴까.
과거 인류는 사냥대상이 탈진할 때까지 몰이를 해서 사냥을 했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사냥감을 놓칠 수도 있다. 반대로 무리를 멀리 벗어나 사냥감에게 홀로 다가가면 목숨을 걸고 일대일 승부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런 연유로 애초부터 인류의 DNA에 함께 뛰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함께 뛴다면 사냥에 성공할 거라는 믿음. 나 홀로 고립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함께 숨을 헐떡이는 동료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힘을 뽑아내는 신체의 시스템이 생겨버린 거다. 인간은 세포 속까지 사회적 동물인 셈. 몽상 속의 이론이지만, 사이좋게 달릴 이유는 되지 않을까. 함께 뛰면 덜 힘든 건 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