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이 기대되었던 2024 파리 올림픽이었는데, 그만 날짜를 착각하고 말았다. 그래도 새벽 2시에 열렸던 행사를 다음날 아침에 본 정도면. 뭐 낫 배드. 이번 개막식은 파리 시내 전체를 무대로 진행되었다. 여기에선 노래를 하고 있는데 저기에서는 배를 타고 선수단이 입장한다. 배가 지나가는 다리 위에선 장대에 올라선 사람들이 서커스를 하고, 뒤편 건물 옥상에선 관객들이 행사를 구경한다. 이 정도로 넓은 무대가 있었을까. 솔직히 처음에는 집중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쌓여가면서 점차 관람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오륜기가 반짝이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백마를 탄 기수가 입장하는 장면에 이르자 완전히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건 너무 멋있잖아. 스타디움 안에서 누가 얼마나 더 잘하나를 겨뤄왔던 그간의 올림픽들에게
'시선을 경기장 밖으로 돌리면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꽉 막힌 친구들아.'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100년이 넘게 이어진 고정관념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아무리 구겨 넣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넘치는 문화적 레거시들. 12막에 이르는 긴 구성 중에서도 그랑팔레 옥상에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던 장면이 단연 압권이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걸어 나온듯한 카리스마 넘치는 소프라노가 프랑스 국기를 오른손에 잡고 당당한 표정으로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 타국의 국가를 들으면서 이렇게나 매료당할 일인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교육받아온 시절이 무색해지던 순간. 예술은 힘이 세다. 아니면 디올이 드레스를 너무 잘 만들었을지도.
[악셀 생-시렐을 보고 저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게 감독의 의도 아닐까]
'라 마르세예즈'를 들으며 울컥했던 순간이 또 하나 있다. 그 유명한 카사블랑카의 합창 씬. 불안이 잠식한 일상의 공기 속에서 지쳐갔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누군가의 용감한 선창에 맞춰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함께 노래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점점 커지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 피가 아직 뜨거웠던 시절에 영화를 본 탓일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실제로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 중에서도 일어나 합창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그렇게 별난 취향은 아닌걸로.
[그나저나 잉그리드 버그만은 흑백화면이 무색하게 아름답군요]
'라 마르세예즈'의 가사를 찾아보면 국가로 삼기에는 과격한 단어들이 넘친다. 프랑스혁명 시기의 혁명가로 불리던 것을 그 뜻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국가로 삼았기 때문. 혁명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마침내 우리의 신념이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었다는 자긍심.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그들의 최고의 성취로 여기는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래도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눈동자를 보며 건배를. 술 마실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