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하루키에 빠져서 사는 중이다. 읽지 않았던 책들을 찾아 읽고, 달리기와 글쓰기를 하고, 위스키와 칵테일도 찾아 마시면서. 음악과 요리까지는... '흠.. 하루키 씨도 나름 바쁘게 사셨군요'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그의 6번째 소설인 [댄스댄스댄스]를 즐겁게 읽었다. 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위트와 감성의 과잉이 좋았는데, 젊은 시절에 쓴 글이어서 그런지 주인공들이 술을 엄청 마신다. 반면에 30년쯤 뒤에 쓰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스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스크루는 맥주 한 병을 다 못 비운다. 역시 늙으면 술이 약해지는 것인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나이는 모두 30대 중반. 하루키는 그 시절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하여 영원히 그 나이를 살아가며 애도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뭐. 아무튼.
소설에 나오는 술 중에서 호텔 직원인 그녀가 6잔이나 마신 '블러디 메리'와 또 다른 주인공인 13세 소녀가 하와이에서 마셨던 '피나콜라다'가 인상적이었다. '블러디 메리'는 서양에선 해장술로 유명하고, '피나콜라다'는 조주기능사 실기시험 때 만들었던 칵테일이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 완벽한 독서를 위해 칵테일을 만들어 봤다. 술 마실 핑계는 아직 귀신 같이 찾는 편이다.
후추와 각종 소스를 섞은 뒤에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넣어서 만든 '블러디 메리'는 술 치고는 포만감이 있었다. 토마토 주스가 상당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복인 상태로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녀가 6잔이나 마시는 모습이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피나콜라다를 만드는 과정은 조금 복잡했다. 피나콜라다믹스와 파인애플 주스, 자른 파인애플과 화이트 럼 약간을 얼음과 함께 블렌더에 넣고 돌리면 슬러시가 된다. 칵테일 잔에 천천히 따른 후 파인애플 한 조각을 글라스 가장자리에 꽂으면 완성. 가득한 파인애플향이 하와이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인생에 별 도움은 안 되는 상식이지만 Dole 파인애플의 첫 번째 농장이 하와이에 있기도 하다.) 다른 칵테일에 비해 도수가 낮은 편이라 미성년자가 마시기에도 그나마 조금은 괜찮을지도.
[하이볼 글라스는 딱 좋은데, 칵테일 글라스는 맘에 드는걸 못찾고 있다]
올 한 해 어설프지만 하루키의 스타일을 닮아가려 애를 쓰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마음 건강에 좋고, 좋은 취향을 쌓는 것이 재미있는 인생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 이제는 하루키의 주인공들보다 10살이나 많아졌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는 평범한 삶이 거의 확정되었지만, 그래도 소설 속 칵테일을 만들어 마실 줄 아는 어른은 되었으니 뭐 나름.